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복 (문단 편집) == 개요 == '[[오랑캐]][* [[우량카이]](Урианхай) 뿐 아니라 이민족 전반을 가리켜 멸칭하는 뜻을 지닌 '오랑캐'.] 옷'이라고 하여 [[한나라]] [[한족]]의 [[한푸]]와 대비시키는 뜻을 지닌 단어. [[중국]]에서 다른 주변 국가들의 복식을 가리키던 말로, 초기 '호(胡)'라는 개념은 농경민족인 한족이 유목민족, 기마민족인 이민족들을 가리키는 뜻이었다. 처음에 胡는 [[흉노]]를 뜻하는 말이었기에 흉노족의 복식을 호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점차 흉노가 세력을 확장시키자 자연스럽게 북방 및 서방 이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어 호복 역시 이민족들의 복식 전반을 뜻하는 말로 자리잡았다. {{{#!folding [ 《자치통감》 3권 <주기> ] ||(상략) 與肥義謀胡服騎射以教百姓曰(여비의모호복기사이교백성왈) 비의(肥義)와 더불어 호족(胡族)들의 옷을 입고 말을 타며 활쏘는 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것을 도모하며 말하였다. 愚者所笑(우자소소) 賢者察焉(현자찰언) "어리석은 사람이 웃는 바는, 현명한 사람이 잘 살펴 본다. 雖驅世以笑我(수구세이소아) 비록 세상을 몰아 붙여서 나를 비웃는다고 할지라도, 胡地中山(호지중산) 吾必有之(오필유지) 호(胡) 땅의 중산(中山)은, 내가 반드시 이를 소유할 것이다" 遂胡服(수호복) 마침내 오랑캐 복장인 호복(胡服)을 하였는데, 國人皆不欲(국인개불욕) 나라 사람들이 모두 원하지 않자, 公子成稱疾不朝(공자성칭질부조) 공자(公子) 조성(趙成)은 병을 핑계대고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王使人請之曰(왕사인청지왈) 왕이 사람을 시켜서 그를 청하면서 말하였다. (중략) 先君丑之(선군축지) 먼저 가신 주군께서 이를 부끄럽게 여겼으니, 故寡人變服騎射(고과인변복기사) 그러므로 과인이 호복으로 바꾸고 말을 타고 활쏘기에 좋게 하여, 欲以備四境之難(욕이비사경지난) 사방의 경계선에서의 어려움을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며, 報中山之怨(보중산지원) 중산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而叔順中國之俗(이숙순중국지속) 숙부께서는 중국의 풍속에 순응하시고, 惡變服之名(악변복지명) 복장을 바꾼다는 명분을 싫어하여서, 以忘鄗事之丑(이망호사지축) 호(鄗)에서 일어났던 부끄러움을 잊는 것이니, 非寡人之所望也(비과인지소망야) 이것은 과인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公子成聽命(공자성청명) 乃賜胡服(내사호복) 공자 조성이 이 명을 들으니, 이에 오랑캐 복장인 호복을 하사하였고, 明日服而朝(명일복이조) 다음 날 입고서 조회에 나왔다. 於是始出胡服令(어시시출호복령) 에 비로소 ‘호복령(胡服令)’을 내리고, 而招騎射焉(이초기사언) 말을 타며 활쏘는 사람을 초대하였다.|| }}} 역사적으로 '호복'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사례는 《[[자치통감]]》에서 [[조무령왕]]이 기원전 307년, 오랑캐의 '바지'를 중국에 도입하도록 호복령을 내린 것이다. 원래 한푸는 남방계 복식이라 치마만 입었었다. 조무령왕의 호복령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http://www.snilbo.co.kr/10256|무령왕의 호복령]] 호복은 크게 [[스키타이]], [[훈족]], [[아바르]], [[흉노]], [[선비족]], [[몽골족]], [[돌궐]], [[강족]], [[퉁구스]] 등을 위시한 서북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유목/세계의 유목민족|유목민족]] 옷을 칭한다. 기준을 더 넓게 잡을 경우 [[한복]]과 [[기모노]] 역시 호복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특히 [[한복]]같은 경우는 애초에 처음부터 북방계 호복이 근간인데, 대표적으로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예맥족]]의 [[삼국시대]] 복식이 그렇다. 한복이 한푸의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는 기본 한복과 별개 카테고리에서 공존해 온 '관복'들 위주로 해당하는 사항이며[* 그러나 [[단령]]같은 대표적인 관복 역시 엄밀히 말하면 [[서역]]에서 유래한 호복의 한 종류이다.], 저고리+바지(치마) 구성인 '기본 한복'은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큰 겉고름이 생겼다는 점 외엔 초기의 고유한 호복 형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기모노]]의 경우 고대에는 [[백제]] 옷을 입었다는 기록과 함께 다카마쓰 고분 벽화 등으로 한복의 영향을 받아 상의와 하의가 분리된 구조였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에도 막부]] 시대 이후부터의 복식은 원피스 형태로 입는 진(秦)나라~한(漢)나라 시대 [[한푸]]와 닮은 구조가 되었고 고온다습한 일본열도의 기후에 맞게 변형되면서 [[하카마]]처럼 바지의 통이 넓어지거나 소매와 겨드랑이 부분에 트임이 생기는 등 남방계 복식과 더 가까운 형태를 띄게 되었다. [[나무위키]]에서 [[한복]]이나 [[기모노]]의 근간으로 호복을 설명할 때는 알타이계 호복을 뜻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