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준(삼국지) (문단 편집) === [[삼국전투기]] === 야구를 좋아하는 최훈 작가답게 [[이호준|이'''호준''']]으로 패러디했다. 낙가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는 팍 하는 임팩트 없이 장수하여 군 최고위에 올랐다고 서술되어 있다. 동흥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그 동안 자잘한 공은 많았지만 강렬한 임팩트가 부족해서 이제야 출연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제갈탄]]과 함께 합비에서 동흥제 공략에 들어갔는데, 제갈탄이 동흥제의 양 끝 성은 지세가 험난해 육로 진출이 어렵다고 하자 소호에 부교를 놓아 둑으로 바로 들어가는 방법을 쓰자고 제안했고 제갈탄이 이에 동의하며 부교를 놓아 나아갔다. 그렇게 한종과 환가를 시작으로 동흥제 위에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동흥제의 동성과 서성 공략에 들어가지만 예상보다 수비가 탄탄해 진도가 안 나가자 병사들을 풀어줄 겸 주연을 열었지만, [[정봉]]이 이 틈을 노려 기습을 가하자 위군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호준 본인은 적은 소수에 경무장이니 당황하지 말고 쪽수로 밀어붙이라고 하며 어떻게든 저항했지만, 그 와중에 동성의 문이 열리며 [[여거]], [[유찬(삼국지)|유찬]], [[당자(삼국지)|당자]]의 본대가 위군을 공격하였고, 결국 수만의 위군을 잃으며 패퇴하게 되었다. 이후 제갈탄과 함께 패전의 책임을 물 뻔했지만 사마사가 패전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리를 보전했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관구검]]의 난 당시 청주, 서주의 병사를 끌고 초에 주둔했다. 동흥에서의 불명예를 씻겠다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후 본인은 등장이 없고 아들들만 등장했으며, 호준 본인은 전투외편 7편에서 사망했단 사실이 언급됐다. [각주] [[분류:조위의 인물]][[분류:256년 사망]][[분류:간쑤성 출신 인물]][[분류:안정 호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