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대용 (문단 편집) == 여담 == * [[한성부]]에 들어갈 때 홍대용은 말을 타고 당시 선진 문물이었던 [[선글라스]](오수경)를 쓴 채 양금을 가지고 들어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의 양금은 [[남양 홍씨]] 가문에 대대로 전수되었는데 조선 말 [[대구광역시|대구도호부]] 사람인 서찬규가 홍대용의 고향인 [[천안시|천안군]]을 지날 적에 아주 청량하고 맑은 금속 악기의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홍대용의 [[후손]]이 연주하던 하프시코드 소리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젊은 시절에 예송논쟁을 벌인 [[송시열]]을 비판하는 글을 지어 스승 김원행과 사이가 소원해 진 적이 있다. * 현대 기준으로하면 [[인싸]]성향의 선비였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들은 이서구(李書九)와 함께 한학 4가(漢學四家)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여기서 이서구를 빼고 [[서이수]]를 넣으면 당대 서얼출신 4검서가 되고 이들과 후배인 [[정약용]]을 모두 넣으면 1780년대 후반과 1790년대 초반 시절 조선 정조 시대 중기의 6대 문장가(六大 文章家)로도 일컬어진다.] 등 당대 [[서얼]] 출신이지만 능력은 출중했던 이들이나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과거에 못붙은 백수였던 [[박지원]] 등과 친밀한 관계였는데 이들보다 나이가 10살 가량 많아 모임 중에서도 고문의 역할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박지원보다도 6살 위이다.] 이들 외에도 이서구(李書九) 원중거(元重擧), [[백동수]], [[청성잡기|성대중]][* 다만 성대중의 경우 두 사람이 동년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만난적은 없다. 성대중이 생전의 홍대용을 만나지 못한것을 아쉬워 하면서 적은 글도 있을 정도.], 이희관(李羲觀), 윤가기(尹可基) 등이 이 모임에 어울렸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에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539903&cid=48634&categoryId=48634|백탑파]], 혹은 [[북학파]]로 불리는 학자들이다. 다만 홍대용은 천안에 살고 다른 이들은 지금의 [[종로2가]] [[탑골공원]] 인근에 살았기 때문에 실제 좌장은 박지원이었다. 하여튼 이들은 '백탑동인'이라는 일종의 동호회를 결성하여, 사람들과 자주 만나 시문과 학문에 관해 논의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주위에 큰 영향을 미쳐 그들의 글을 소위 검서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들의 시는 형식주의에 빠진 당시의 시와는 달리 간결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들이 나중에 검서관이 되었으므로 검서체라 불리었다고 한다. * 그 성향은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을때도 드러났는데 청나라 고위관료였던 서성맹이 청나라 관료를 업신여기는 조선 관료들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 궁에서 나가지 못하게하고 억압했을때, 홍대용이 나서서 직접 대면하여 정중하게 대하자 서성맹은 인품에 감격하여 흔쾌히 궁 밖을 나가 사신단이 성 내부를 유람하는 것에 대해서 허용했다고 한다. 인품이 어찌나 훌륭했는지 유람중에 만난 청나라 선비였던 엄성과 반정균이란 인물은 홍대용을 두고 "중국에서조차 얻지못한 진정한 친구를 조선에서 만나게 되었다." 라고 평했다. 엄성과도 우연히 만난 이후로 급격히 친해져 그의 집에 초대까지 되었는데 엄성의 아들인 엄앙은 어린시절 홍대용을 만났을때의 인상이 워낙 깊었는지 홍대용을 '큰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이들은 청나라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우연히 들렀던 선비들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중국 부호 중에서도 가장 부자였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났던 홍대용의 비장이 고향 친구의 부탁으로 청나라 안경과 오수경(선글라스)을 사려고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에 가격 흥정에 자신이 없었던 탓에 안경을 쓰고다니던 행인에게 다가가 쓰고있는 안경을 사겠다고 말하자 돈도 받지 않고 흔쾌히 내어줬다고. 그가 홍대용과 일행에게 이 일을 전해주자 홍대용이 비장의 사례도 할겸 비싼 안경을 그냥 내어준 사람이 궁금해서 시내를 유람하던 중에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또다시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누구든 만나면 금방 친밀해지는 탓에 [[임용한]]과 같은 역사학자는 우스갯소리로 그의 친화력은 '미스테리'같다고 평한다. 홍대용은 우연히 청나라 친구들을 만났던 일화를 <회우기>라는 책으로 기록하였고 그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