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문표 (문단 편집) === 정치 활동 === 건국대학교 재학 시절인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선거구)|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한 [[신민당(1967년)|신민당]] [[유진오]]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치에 입문하였다. 1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낙선]]했고, 이후 [[민주당(1991년)|민주당]] 소속으로 14대 총선에 출마하나 또 낙선, 15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또 다시 낙선했다. 그 뒤 [[한나라당]]으로 16대 총선에 도전하나 또 낙선하고 만다. 기존 버전에서는 당적을 바꿨다고 되어 있었는데, 1995년의 통합민주당이 법적으로 1997년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당이라 당적 변경이라 하기는 어렵다.[* 사실 민주당계 정당 출신 인사이지만, 이 때의 합당으로 어쩌다 보니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으로 들어간 정치인들이 꽤 있다.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 의원이나 해직기자 출신 민주화운동가 [[이부영]] 의원(물론 이후에 다시 [[열린우리당]]으로 합류), [[장광근]] 등등. 제정구 의원은 1999년 작고했고, 이부영은 이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으며, 장광근은 한나라당에 남았고, 지금도 한나라당의 한참 후신인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청양군]], [[홍성군]], [[예산군]] 등 충남 내륙 [[군(행정구역)/대한민국|군]] 지역들은 민주당계 기반이 '''현재'''까지도 매우 열악하다는 것[* 특히나 예산군은 [[IMF 사태]]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보수정당이 불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 [[제15대 대선]]과 [[제19대 대선]]에서도 보수정당이 승리했을 정도로 [[민주당계 정당]]에겐 사지인 지역이다.]을 생각하면 민주당계 정당 및 그 지지자들 입장에선 아쉬울 따름. 홍문표 개인으로서도 아쉬웠던 것이 15대 총선까지는 충남에 기반이 없던 민주당 타이틀로 도전하다 보니 지역의 보수세 및 지역정당의 벽을 넘기 어려웠고, 16대 총선에서는 그래도 네임드 보수정당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역시 [[자유민주연합|강력한 지역정당]]을 넘어설 수 없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홍성군·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마침내 4번의 낙선 끝에 당선되면서 환갑이 다 되어서야 초선 의원으로써 국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 때는 탄핵 후폭풍으로 충청권 전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궤멸한 시기라, 충청권에서 유일한 한나라당 소속의 당선자이기도 했다.[* 1년 뒤 아산 재보궐에서 한나라당 [[이진구(1940)|이진구]]가 당선되어서 충청권 유일의 한나라당 의원 타이틀은 반납하게 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E000886658_STD.jpg|width=100%]]}}} ||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fff △ 18대 총선에 출마한 홍문표 후보[br],,(홍성군·예산군),,}}}''']][* 오른쪽의 인물은 과거 국무총리를 재임한 [[이회창]]. 여담으로 두 후보가 현수막을 걸었던 곳은 [[http://kko.to/O99ET7UkNq|홍성군 홍성읍 홍성천길]]에 연달아 서 있는 건물이며, 이 중 홍문표 후보의 현수막이 있었던 건물은 지금도 홍 의원의 홍성군 사무실이 건물 3층에 있다.] ||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정계에 복귀하여 [[자유선진당]]을 창당한 [[이회창]]'''이 하필 홍문표의 지역구인 홍성·예산을 선택하면서 처참한 격차로 낙선한다.[* [[홍성군]]에서는 53% 가량 득표하면서 선전했지만, [[예산군]]에서 [[이회창]]이 77% 가량을 득표하면서 완전히 밀렸다.] 사실 이회창이 딱히 홍문표를 노린 건 아니고 그냥 '''선영이 있는 예산에서 출마'''한 거였다. 이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선진당 [[서상목]]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재선 의원이 되었다. 2015년 7월, [[황진하]]가 새누리당 사무총장에 임명될 때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이한구]]의 독단적 운영에 반발해 사무총장 황진하와 함께 공천심사에 불참하는 등 [[친박]]계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다.[[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60311000312|#]]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5181_39762_1934.jpg|width=100%]]}}} ||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fff △ 당선된 홍문표 후보 ,,(홍성군·예산군),,}}}''']]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어엿한 3선 중진이 되었다. 황진하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자 사무총장 대행직을 수행하였다. 2016년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으나, 2017년 5월 2일 다른 비유승민계 의원들[* [[장제원]], [[박성중]], [[여상규]], [[박순자]], [[이진복]], [[이군현]], [[김성태]], [[김재경(1961)|김재경]], [[김학용]], [[권성동]], [[홍일표]], [[황영철]], [[정운천]].]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02/0200000000AKR20170502050700001.HTML?from=search|#]] 5월 12일, 동반 탈당한 11명의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복당 절차가 완료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E002306049_PHT.jpg|width=100%]]}}} || || '''{{{#fff △ [[자유한국당|{{{#fff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된 홍문표.[br]앞의 인물은 [[홍준표|{{{#fff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fff 김성태 원내대표}}}]]}}}''' || 2017년 7월 6일 부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 이후부터 [[친홍]]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이 대패를 당하면서,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홍준표 대표가 다시 당의 비주류로 밀려나면서 본인도 지역구 당협위원장 자리를 박탈당하는 등 보복 아닌 보복을 당했다. 2019년 교통위원장 자리를 이어 받을 예정이었으나, [[박순자]] 의원이 갑자기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결국 교육위원장 자리를 이어 받았다. 이는 홍 의원과 박 의원 둘 다 제각기 [[지역구]]들에 가장 중요한 교통 현안이 있어서였는데, 각각 [[서해선]] 서울 직결 문제, [[신안산선]] 착공 문제였다. 결국 박 의원은 위원장 자리를 당 징계까지 받아가며 지켜내 신안산선 착공을 추진했고, 홍 의원은 국회 토론이나 국토부 항의를 통해 서울 직결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결국엔 윈윈으로 끝이 났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00226000611_0.jpg|width=100%]]}}} || || '''{{{#fff △ 교육위원장에 선출된 홍문표 의원}}}''' || 2020년 지역구 최대 현안인 [[혁신도시]] 문제를 마침내 해결해냈다. 대표 발의한 균형발전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드디어 설치 근거가 생긴 것. 예상대로 21대 총선 재출마를 선언했다. [[컷오프]] 될거라는 둥, 타 후보가 전략공천될 거라는 등 별별 소문들이 있었지만, 결국 경선에서 승리하며 공천을 받아내어, [[더불어민주당]] 김학민 후보를 누르고 4선 의원이 되었다. 21대 국회 [[미래통합당]] 최고령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건 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29097_236363_144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12304382.jpg|width=100%]]}}} ||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fff △ 4선에 도전하는 홍문표 후보 ,,(홍성군·예산군),,}}}''']] || [[이완구|'''{{{#fff △ 홍문표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이완구 전 총리}}}''']] || 2021년 4월 22일, 마침내 내포신도시 혁신도시 지정과 함께 지역 양대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서해선]] - [[경부선]] 직결 사업이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포함 되면서 [[홍성역]] ~ [[서울역]] 50분 이내 직결이 성사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5306556|홍문표, 서해선-경부고속철 연결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환영’]]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洪文杓.jpg|width=100%]]}}} || ||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fff △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문표}}}''']] || [[2021년 재보궐선거]] 압승 직후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예비경선을 4위로 통과하였다. [[5월 3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당 대표 후보들과 날선 토론을 이어갔는데, [[조경태]], [[이준석]]과 함께 외부 인사를 영입하든 말든 당이 바뀌는 것이 먼저라고 이야기했다. 후보의 특출난 공약으로는 공정한 경선방식을 만들기 위해 외부 전문가와 단체의 도움을 받겠다고 이야기한 것, 그리고 청년청 설치로 청년정책을 담당시키고 노인복지청 설치로 노인복지를 증진하고 노년층 표심도 끌어올 명분을 만들자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준석]]에게 [[유승민]]과의 관계를 직접 질문해서 깔끔하게 해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서 시청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르신#s-1|존경받을 만한 어른]]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중진 의원들인 [[나경원]]과 [[주호영]]이 [[꼰대]]라며 [[시청자]]들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은 것과 대비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소리가 너무 차분하고 '노인복지청' 공약을 설명할 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불필요한 사항들까지 일일이 언급해서 마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는 것 같았다는 악평도 있었다. [[6월 1일]] [[MBN]] 토론회에 참여했는데, 주도권 토론 시간에 주어진 7분 30초 중 3분 가까이를 연설하듯이 발언하는데 사용해서(…) [[백운기|사회자]]가 개입하기까지 했다. 이어진 토론회들에서 ''' 당이 자강을 해야 한다 , 운동장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선수를 초청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일이다 ''' , ''' 우리 정치인끼리 그저 물어뜯는 것은 보고있기 힘들다'''라는 옳은 말들을 남겼으며, 국민의 복지, 예산 처리, 당 조직 정비, 여성의 사회 참여 등 21세기 핵심의제들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보여주었다. 전당대회 결과 당대표 출마자 5명 중에서 5위. 즉, '''꼴찌'''를 기록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재보궐 압승 결과]]에 편승한 [[세대교체#s-1|세대교체]] 바람에 휩쓸린 것으로 보인다. 2023년 8월 9일 현재 국민의힘 충남도당위원장과 지역구인 홍성·예산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