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수환 (문단 편집) === 권투선수 시절 === 1969년 5월 10일 프로 복싱에 데뷔한 그는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웨스트리지 테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상대로 네 번의 다운을 얻어내며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챔피언으로 등극하며 한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JyH4c51Dno|경기 영상]] 경기 직후 전화로 어머니에게 외친 "[[https://www.youtube.com/watch?v=ldLm9fbpEzo|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다!]]"라는 말이 매우 유명한데, 이에 어머니는 "[[김기수(권투선수)|김기수]]씨(한국 최초의 세계 챔피언) 어머니가 그렇게 부럽더니만, 평생 소원을 풀었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물론 "귀에 피는 안 나냐, (홍수환이 피가 안 난다고 하자,) 그럼 됐어." 라는 자상한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다.[* 귀국한 뒤 실제로 모친과 10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의 묘소에 방문하여 챔피언 벨트를 놓고 함께 울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740703_WBA Bantomweight_Arnold Taylor v Hong Soohwan.jpg|width=100%]]}}} || || 對 아놀드 테일러 경기 당시 오피셜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8IHFWbUTHPQ,start=198,end=238))]}}} || || {{{#fff '''대한뉴스에 방영된 1차 방어전 모습'''}}} || 1974년 12월 28일 필리핀의 [[페르난도 카바넬라]]를 상대로 1차 방어전에 성공하지만 1975년 3월 14일, 미국에서 열린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알폰소 자모라]]에게 패해 타이틀을 상실한다. 제대로 훈련은 못한 탓도 있다고 하고 경기전에 꿀을 먹어 컨디션이 엉망이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2차 방어전 당시 엄청난 KO율을 자랑하는 자모라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4라운드 KO패. 참고로, 이 때 홍수환은 현역 군인 신분이었는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_general/news/read.nhn?oid=550&aid=0000000027&redirect=false|방어전에 패배하고 귀국하자마자 영창에다 유격 훈련까지 받으며 고생했다]]. 오죽 고생을 했으면 패배한 직후 권투를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이 군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권투를 계속하는 게 낫겠다'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것을 절치부심하여, 보유하던 목욕탕을 팔면서까지 전재산을 다 모아서 1976년 10월 16일, 한국에서 리턴매치를 벌이지만 이때도 TKO로 패한다. 먼저 다운을 빼았긴 했지만 후에 그로기 상태로 몰리게 되는데 이때 심판이 카운트를 세지 않고 바로 TKO를 선언, 이 때문에 홍수환의 형이 심판판정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등 난장판이 벌어진다. (이 경기는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도 찾을수 없다. 짤막하게 그로기 상태에서 TKO가 선언되는 장면만 남아있을 뿐.) 1977년 11월 27일(현지시각 11월 26일 밤)에는 파나마 뉴파나마체육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슈퍼밴텀급) 초대 타이틀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된다. 특히 홍수환은 당시 2회 4번 다운된 뒤 3회 KO승해 `4전5기' 신화를 이루었다. [[https://youtu.be/4k_4lUQe_aI|영상 34초부터 경기 장면이 나온다.]] 한편 경기 이후 홍수환과 카라스키야는 오히려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홍수환이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연해 카라스키야를 만나러 건 적도 있고 2017년 11월 27일에는 카라스키야가 경기 40주년을 기념해 홍수환을 만나러 방한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3111102|#]] 카라스키야는 복싱을 그만둔 후 파나마에서 산 미구엘리토 시장을 거쳐 파나마 상원의원으로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카라스키야와의 일전은 전국민적인 사건이었다. 드라마틱한 승부와 당시 최고의 인기스포츠였던 권투와 맞물려 4전5기의 신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또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챔피언을 등극할 당시 등장했던 "대한국민 만세"를 다시 언급해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한국프로복싱사상 가장 극적인 세계타이틀매치 승리로 기억되며 홍수환은 그야말로 극적인 승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린애들까지도 4전5기의 모습을 따라할 정도였다. 이후 [[가사하라 유우]]를 상대로 1차 방어전에서 승리했으나, 1978년 5월 7일 한국 장충체육관에서 콜롬비아 선수인 [[리카르도 카르도나]]를 상대로 치른 2차 방어전에서 패배해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당시 버팅으로 인해 1라운드부터 눈두덩이에 피가 났는데, 당시 협회와의 다툼으로 인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경기가 속행되었다고 한다. 12라운드까지 근성으로 버티다 결국 기권패. 피가 굳어 층이 생기고 그 위로 피가 흐를정도였다고 한다. 그 경기를 마치고 사실상 은퇴 상태로 1년 이상의 공백기를 갖다가 1980년 12월 19일 [[염동균]]과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프로권투선수로서의 경력을 끝내게 된다. 참고로 경기 결과는 10라운드 무승부를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