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교/대한민국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화교]]. 화교를 한사군의 후예라고 부르는 자들이 간혹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한사군은 한민족인 고구려인들에게 정복되어 한사군에 있던 한족들은 살해되거나 농노가 되는 선택지밖에 없었으며 지배층인 고구려인과 피지배층인 한족 농노들의 강간에 의한 사생아들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하지만 농노가된 한족들이 과연 현재까지 존재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피지배층의 경우 생존확율이 지배층보다 매우 낮기 때문 이는 고구려인들이 발해국에서 금나라 그리고 원나라의 군인들로 편입된 것과는 다른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화교라고 불린 역사적 사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 대한민국에 사는 화교는 전부 '''19세기 이후에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즉 현재 한인화교라는 사람들은 근대에 산둥성 등에서 건너온 사람들다. 다른 화교들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화교는 한반도와 가까운 [[산둥성]](山东省)지방 출신들이 많다. 대다수 화교들의 발상지라고 볼 수 있는 [[저장성]](浙江省)·[[푸젠성]](福建)·[[광둥성]](广东省)은 한국에서 멀다.[* 지금도 인천·평택·군산에서 중국을 오가는 여객선들은 산둥지역 항구 위주로 운항중이다. [[웨이하이시]](威海市), [[칭다오시]](青岛市), 옌타이시(烟台市) 등 산둥성으로 가는 항로가 많다. 산둥반도 이외에는 [[단둥시]](丹东市),[[다롄시]](大连市)([[랴오닝성]](辽宁省)), [[톈진]](天津市),[[친황다오]](秦皇岛市)([[허베이성]](河北省)), 롄윈강(连云港市)([[장쑤성]](江苏省)) 노선 뿐이다.][* 구화교들이 산둥 출신들 위주였음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 때문이고, 신화교의 경우에도 북방 출신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언급한 저장, 푸젠, 광둥 지역은 연해지역으로써 중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발달한 지역들이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딱히 한국으로 일하러 올 필요성이 적은 지역들이다. 이민을 하더라도 대부분 한국보다 더 소득이 높았던 북미, 유럽, 호주 등으로 갔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화교들은 다른 화교들과 지역적 소속감이 다르다고 하는데, 일단 언어부터 다르다. 다른 화교들은 대부분 광둥성, 푸젠성 출신이라서 광둥어, 객가어나 [[민남 방언]]을 주로 사용하는데 반해 산둥성은 [[북방 방언]]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특수했던 관계로 인해서 대부분 국적은 [[중화민국]](현재의 대만)이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진 이후엔 다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국적을 변경한 사람들도 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였고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게 하였다. 청나라는 군대 4천명을 파견했는데 이들을 따라 40여 명의 상인들이 같이 인천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나서 6000명이 되었고 1923년에는 화교들이 중국에 송금한 돈이 지금 돈으로 말하자면 100억엔이라는 많은 자금이 유출되었다. 일제는 화교들이 많은 자본을 유출하자 [[중일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여 [[만보산 사건]]을 조작하게 되었고, [[1931년 화교배척폭동|조선의 화교들은 평양을 시작으로]] [[1931년 평양화교 학살|인천·서울·부산 등지에서 200여 명이 살해당하고 폭행·강도·강간을 당하는 등 잔혹한 만행이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화교들은 중국으로 귀국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세가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의 경우 정부 규모로(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 화교가 경제적인 실권을 쥐는 것을 지속적으로 견제했다. 특히 1961년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으로 화교들의 부동산을 압수하고 소유 규모를 제한하였다. 직접적인 재산적 타격도 컸지만, 당시 화교들 중엔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하던 이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타격도 컸다. 1962년의 화폐 개혁도 실제로는 화교들이 모아온 재산을 노린 것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돈을 은행에 예치시키는 것보다 현금으로 집에 보관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이런 장롱예금들을 은행으로 끌어들여 산업화에 대한 자금으로 충당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제3공화국(드라마)]]에서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경제정책을 검토하면서 "화교들이 엄청난 현금을 숨겨두고 있다는 거야"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도 이것이 화교들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화교 어르신들 얘기 들어보면 이때 환전량이 정해져 있어서 예금 안 하고 모아둔 현금 상당수를 울며 겨자먹기로 싸게 넘겨야 했다고 한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 중국과 수교하며 완화되어가는 추세지만 여전히 제한이 있다. 이러한 차별 때문에 상당수 화교들은 귀화를 선택해 현재 한국 사회에 동화되었다. 자기가 굳이 말 안 하면 모를 정도.[* 생김새도 비슷한데다가 '''성씨로 구분할 수 없고 이름도 한국과 비슷하게 쓰기 때문에''' 알아볼 도리가 없다. 별 생각없이 만나던 지인이 원래 화교 출신이라 놀라는 경우도 많다. 군대에서도 화교 출신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사실 대부분의 화교들은 거주국가에 대부분 동화되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도 현지 이름과 현지 언어를 쓰며 베트남의 경우에도 한국보다 더 강경한 정책에 베트남을 벗어나든지 아니면 동화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바섬]]의 경우 대부분 [[자바어]]나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며 동화가 많이 되었지만 [[수마트라섬]]이나 [[칼리만탄]]섬 등지의 화교들은 아직도 [[복건어]]를 사용하며 현지인들과 거리를 두고 있고 이에 따른 갈등도 많다. 대부분 부동산 등의 부는 화교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활동 제약 등으로 많은 화교들이 귀화를 택해 한국인이 되었다. 똑같이 [[한국어]]가 제1언어, 즉 모국어라 구별도 잘 안 되고, 대화할 때 [[중국어]]를 섞어 쓰는 사람들은 요즘은 대개 [[조선족]](한국계 중국인)들이지 화교들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화교가 얼마나 동화되었냐면 [[중국어]]도 잊어버려 화교소학에서 따로 가르쳐야 할 정도이다. 현재는 [[2011년]] 귀화자가 100,000명을 넘었을 때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출신이 79,000명이었고 [[중화민국]](대만) 국적자는 2,000명이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4969953|#]]을 참고할 것. 위의 언급이 사실과 다르다기 보단 한국 화교 사회가 1990년 이전부터 흔들렸고[* 귀화하지 않는 화교는 거진 이민을 택하거나 대만행을 택했다. 현재 20,000명 정도만이 [[중화민국]] 국적으로서 [[영주권]]자로 잔류해 있고 그나마 이들도 조금씩 귀화하는 중이다.], 그 빈자리를 최근에 한국으로 넘어온 중국인들과 [[중국]] 출신들이 메꾸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배달부]]나 [[노가다]]같은 블루 칼라는 신화교들이 점령한 업종이 되었다. 조선족은 같은 [[한민족]]으로 국적 회복이 가능하다. 2010년대 현재 대한민국의 순수 화교 인구[* 아직 귀화 안 한 [[중화민국]] 국적자로 점진적으로 귀화 중이다.]는 70,000명 정도로 나머지는 [[대만]]으로 이주하거나 [[미국]], [[호주]]로 이민 갔다. 여기서 화교는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한중 수교 이후에 들어온 중국인들은 한국 화교에 포함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중국에서 들어온 한족들을 화교로 치면 화교들의 숫자가 크게 불어나는 중이기는 하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내 거주 중국인(귀화자 제외)은 110만~120만명인데 이 중 중국조선족이 60만~70만명이다. 결국 한국에 체류하는 [[중화민국]](대만)인은 결국 크게 두 부류인데 * 국부천대 이전 중화민국에서 온 경우 * 국부천대 이후 [[대만 섬|대만]] 지구에서 온 사람들 로 나눌 수 있다. [[대만]]에서는 이 두 부류를 노교(老僑,오래된 화교), 대교(臺僑, 대만에서 온 화교)로 구분하는 듯하다. 현재 국내 화교 체류자의 인구 비율로 따지면 이 순서대로 많다. 1.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국적의 [[조선족]][* 중국 [[조선족]]은 한국에서 [[재외동포]] [[비자]]를 받기 때문에, 같은 중국 국적이어도 한국정책에 의해 [[한족]]중국인과는 비자면에서 대우가 다르다. 1.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국적자 1. [[중국 본토]] 출신의 후손이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 국적 - 일반적으로 [[한국 화교]]라고 하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대만인은 그냥 대만인, 중국인은 그냥 중국인으로 부른다. 1. [[대만 섬|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 국적 1. [[중화인민공화국|중국]] [[홍콩 특별행정구]]와 [[마카오 특별행정구]] 출신[*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특별행정구로서 [[여권]]도 따로 사용하고, [[해외]]에서도 별도의 국적코드를 부여받아 중국 국적자와는 다른 [[홍콩]] 국적과 [[마카오]] 국적으로 따로 구분된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노교들의 상당수가 한국에 [[귀화]]했거나 또는 상당수가 대만, 중국 또는 아예 외국[* 중국 산둥성이 본적이며 한국에서 나고 자란 국내 화교들에게는 중국도 대만도 낯선 땅이다. 따라서 아예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등 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 화교들이 생각보다 많다. 다만,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복건성, 광동성 조주시 출신의 화교들은 그런데로 대만으로 재이주하여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으로 다시 [[이민]]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