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석 (문단 편집) == 옛날 사람들의 인식 == [[파일:4D8A8E89-3C4F-4F01-9AE9-EBA063E21AF2.jpg|width=600]] 독일 마그데부르크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게리케의 [[유니콘]]” 화석. 1672년에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 저 “유니콘” 화석을 보고 게리케가 멍청한 아마추어 박물학자 나부랭이일 것이라 상상하기 쉽겠지만, 그는 당대 유명한 석학으로 진공, 대기압, 정전기 등의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한 과학자였으며 당시 마그데부르크의 시장이기도 했다. 그가 한 실험으로, 철로 된 반구 2개를 붙이고 내부의 공기를 빼어 대기압을 측정한 실험이 유명하다.]가 [[털코뿔소]]의 화석을 발굴해 일각고래의 뿔, 털코뿔소의 두개골과 매머드의 다리로 이렇게 조립했다. 이 “유니콘”은 관찰된 현상이나 발견된 유물을 연구자 자신의 선입견에 끼워 맞추지 말 것을 경고하는 상징으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 볼 수 없는 동물들이 화석으로 남겨지기 때문에 많은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고, 신화상의 괴물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고대부터 서양에서는 150만 년 전에 멸종된 지중해 코끼리의 화석을 보고 [[사이클롭스|외눈박이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해 왔다.[* 실제로 그 화석을 보면 두개골의 콧구멍 자리가 눈구멍처럼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콥토스와 켄트 민 사람들은 [[벨렘나이트]]의 [[음경|단단하고 오똑 선 생김새]]에서 민이라는 다산신을 상상해 냈다고 한다. 중세 시대로 가면 화석은 신학의 관점과 결합되어 포유동물의 뼈는 거인뿐만 아니라 성서에 나왔던 용, 괴물, 성인의 뼈로 생각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였다. 화석이 약용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중국]]에서 [[용골#s-2]](龍骨. [[용]]의 뼈)이라는 이름으로 [[황제]]들이 많이도 달여 먹었으며 지금도 약용을 위해 화석이 많이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에서도 이 용골을 약재로 사용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시기에 용골을 약재로 다룬 기록이 가끔 나온다. 이 중에는 아마도 잘 보존된 공룡의 화석을 발견한 듯한 기록도 나온다. ‘본국 사람 임언충(任彦忠)이 일찍이 노아간(奴兒干) 등지에 들어갔다가 용이 환골(換骨)한 곳을 보았는데, 그 몸뚱이와 손발·머리·꼬리·이·뿔이 살아 있는 용이 움직이는 형상과 꼭 같았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종실록 79권, 세종 19년 11월 22일 무신 2번째 기사) 중세 서양도 마찬가지로 두족류 화석인 벨렘나이트는 악령이나 악마를 쫒아낼 부적으로 사용하거나 상처에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으며 말의 기생충을 제거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호박의 약효를 소개한 책을 보면 '''"구역질, 결석, 두통, 치통, 생리통, 출산, 페스트, 해독, 마귀 막기에 좋다."'''라고 했다. 옛날 사람들이 달여 먹은 화석의 이름들. *[[귀갑]] *[[용골]] *[[서각]] 화석의 존재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려는 시도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기는 있었다. 퇴적층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쌓인다고 여겼으며 조개 화석이 묻힌 퇴적층은 옛날에 바다였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근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발생설을 주장했는데 이 논리로 화석은 땅에서 나온 가스로 인한 결과물이다고 했고, 이 견해는 중세 시대까지 천 년 넘게 정설로 굳어진다. 13세기에 대학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문제는 그 시대가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말하는 시대였다. 17세기, 즉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면 화석에 관한 각종 이론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작은 씨앗이 땅속에서 말라 죽은 것이 화석이라는 학자가 있었고, 악마가 생명 창조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흔적이 화석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슬람 학자들이 들고 온 그리스 책자가 전파된 시기도 이때였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연 발생설에 대해 부정하고 퇴적 현상으로 화석이 만들어졌다는 설을 펼쳤다. 17세기 후반에 가면 해부학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때 [[코끼리]]의 뼈와 거인의 뼈라 여겼던 물건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람들은 멸종된 코끼리의 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석을 좀 더 과학적으로 보게 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종의 멸종이라는 개념은 신이 완벽한 생물을 창조했다는 천지창조의 관념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나마 육상 동물은 [[대홍수]]설이라는 이론으로 설명은 가능하지만, [[암모나이트]]와 같은 [[바다]]에서 살았던 것 같은 생물이 현재 안 보인다는 사실은 대홍수설로는 설명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동안 발굴된 화석 중에 '''인간 화석'''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당대에 [[인간]] 화석이 안 나왔다는 얘기지, [[지질학]] 및 [[고생물학]]이 발전해 가면서 이제는 인류 화석 같은 것도 발굴되고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발굴한 인간 화석만 해도 큰 물류 창고 몇 개분은 될 정도다.] 이러한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각종 설이 나왔는데 [[홍수]]가 언제 생겼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대피라미드가 건설되기 250년 전에 홍수가 일어났다고 주장을 했으며, 퇴적층을 살펴보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홍수설뿐만이 아닌 또 다른 요인이 멸종을 불러왔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열대 지방에서 살았을 동물이 [[유럽]]에 화석으로 발견되는 것을 보고 [[지구]]의 기후가 변해서 그렇다는 설, 한니발이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은 것처럼 강제적으로 끌려와서 죽은 거라는 설도 제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뷔퐁이라는 사람은 조금 더 대담한 가설을 주장했는데 지구의 나이는 7만 5000년쯤 되며 6기의 지질학적인 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다른 생물들이 각각 다른 시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며 사라진 이유는 적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인간은 제일 최근에 나왔다고 주장을 했다. 그리고 홍수는 지구의 역사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며 바다의 작용과 물의 침식이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지구의 나이에 대한 오류와 [[진화론]]과 [[판 구조론]]의 누락 정도만 빼면 현대의 시각과 별반 다른 게 없는 대단히 훌륭한 가설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당시 신학자들에게 '''개까였다.''' 당대 통념과 신학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은 물론 당시로서는 이를 뒷받침할 제대로 된 근거가 딱히 없었기도 하다. 국왕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검열을 피해서 출판이 가능했다고. 같은 시기에 [[카를 폰 린네]]는 종의 분류법을 개발해서 화석화된 생물들은 독자적인 속, 종명을 갖게 되어 [[생물학]]의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프랑스 혁명]] 시기 퀴비에는 고생물학에 혁명적인 업적을 세우게 되는데 바로 비교 해부학이라는 학문을 연 점이다. 퀴비에는 모든 생물은 하나의 통합을 이루며 연결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통해 기관 하나를 알게 되면 나머지 기관에 대해 알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뼈만 남은 동물의 실제 모습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이빨]] 하나만 가지고도 동물의 전체상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퀴비에는 멸종에 관해 지구에서 대이변이 일어나서 새로운 동물상이 나타난다는 견해를 취했다. 다만 종은 불변한다는 견해를 견지했다. 한참 후인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다윈의 [[자연 선택]]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로 진화를 설명했으며, 화석과 진화에 관한 이론은 비로소 우리가 아는 형태에 가까워졌다. 종교계도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다가[* 다만 오해와는 달리 대부분의 주류 [[기독교]] 교단에서는 [[창조설]]을 과학이라고 우기지는 않았다. 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굳이 표현하자면 신중론에 가깝다. 물론 이건 각 종교계의 공식적인 입장이었고, 신자 개개인 단위에서는 다윈에 대한 적개심이 만연했다.] 20세기 중반 [[가톨릭]]에서 [[비오 12세]]의 회칙 <인류>가[*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발표되는 등 대부분의 종교계는 적어도 생물학에 대한 막연한 비판에서는 벗어났다. 사실 [[창조과학]] 운운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 등의 사례가 특수한 것이다. 이들 국가에선 개신교 중에서도 특히 근본주의 교파가 매우 강세를 이루고, 개중에도 사이비 수준의 극단적인 반세속주의 입장이 상당수 두드러지는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