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성시 (문단 편집) === 지명 문제 === 수원읍이 수원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수원부(수원시)로 승격되면서, 수원군의 이름을 화성군으로 변경했는데, 이 화성이란 이름은 다름아닌 [[수원시]](구 수원읍)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水原華城)에서 따 왔다. 따라서 한자도 같다. 수원군청 이름 역시 화성군청으로 바뀌어 1970년 [[오산시|오산읍]]으로 이전할 때까지 수원시 내에 남아있었다.[* [[화성행궁]] 앞 지금의 후생병원 자리에 있었다. [[http://map.naver.com/?menu=location&mapMode=0&lat=37.2818831&lng=127.017281&dlevel=14&vrpanotype=3&vrpanoid=%2BsTUhCkjPMQm9qqnHjGebg%3D%3D&vrpanopan=1.9&vrpanotilt=-12.18&vrpanofov=40&vrpanolat=37.2818827&vrpanolng=127.0172816&street=on&vrpanosky=off&vrpanopoi=off&rpanel=n-f&enc=b64|군청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 1995년 도농통합 대상에서 배제되어 수원시와 통합되지 않았고,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화성시라는 명칭과 달리 화성이 화성시가 아닌 수원시에 있어서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정작 당사자들인 수원시민 및 화성시민 대부분은 [[무관심|이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다만 타 지역에서 출신지역을 소개할 때 동부 지역의 경우 위의 이유로 그냥 수원 산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옛 수원군 수원읍이 1949년 수원부→수원시로 분리 승격될 때, 시와 군이 분리되면 둘 중 하나의 명칭을 바꿨던 당시의 관행에 따라 수원군의 잔여 지역을 수원의 전통적인 상징이자 옛 명칭인 화성에서 이름을 따와 '화성군'으로 개칭한 데서 출발한다. 수원화성 축조 이후 수원유수부를 '화성유수부'로 개칭되어 지명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후에 다시 수원부로 격하되었다가 1895년 수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963년 수원시의 행정 구역이 대대적으로 확장되기 전까지만 해도, 당시의 화성군은 화성 성곽에 좀 더 근접한 곳(정자동, 송죽동, 조원동, 매탄동, 권선동[* 현재 [[수원버스터미널]]이 있는 곳이다.] 등)까지 관할하고 있었다. 즉 그때만 해도 화성군에서 화성 성곽을 관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볼 수는 있었다. 이것이 시 승격 이후에도 현재까지 '화성시'란 이름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수원화성이 축조되기 전의 수원읍성은 현재의 화성시 안녕동 일대에 위치했다. ([[수원대학교]]도 이 옆의 봉담읍에 있는데, 학교 명칭과는 달리 수원시가 아닌 화성시에 있지만 옛 수원읍치 일대에 들어섰고 화성시 자체가 역사적으로 수원군이란 이름으로 연원을 같이 하므로 학교 명칭이 아주 잘못된 건 아니다.) [[조선]] [[정조(조선)|정조]]가 구 수원읍치를 헐고 조성한 것이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융릉)이며, 수원화성을 축조하여 이를 새 수원읍치로 삼았다. 이 때문에 '''오늘날 수원화성은 수원시에 있고, 구 수원읍성은 화성시에 위치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 참고로 수원읍성 유적은 경기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930000,31|「수원고읍성 (水原古邑城)」, 문화재청]]] 수원시-화성군(시)의 명칭 부여 방식과 유사한 사례로 [[대구광역시|대구시-달성군]]([[달성]]은 대구시내에 위치했던 성곽), [[경주시|경주시-월성군]]([[경주 월성|월성]]은 경주에 있는 신라 왕성의 이름), [[나주시|금성시-나주군]](금성은 나주성의 별칭이자 나주의 고호)이 있다. 참고로 이들은 훗날 각각 월성군→경주군, 금성시→나주시로 명칭이 환원되었고 1995년 [[도농통합시|도농통합]] 당시 경주시, 나주군과 통합되거나 달성군이 대구광역시에 포함되어 시·군 분리의 역사를 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되었다. 타 지역과 다르게 지명이 문제가 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역사적으로 수원이나 화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옛 남양도호부 지역 또한 화성으로 불리고 있어서 '[[시흥]]'처럼 현재 행정구역이 역사적 명칭과 맞지 않는 문제도 있다. 화성이 화성군에 없는 것처럼 달성과 월성 또한 각각 달성군과 월성군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달성과 월성은 통합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화성군만은 월성군이나 금성시처럼 명칭이 '수원군'으로 환원되지도 않아 도농분리로 인해 지역 명칭과 명칭의 유래가 맞지 않는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또한 1995년 도농통합 당시 수원시(및 오산시)와도 통합되지 않은 채 2001년에는 독자적으로 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