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완옹주 (문단 편집) === 유배 === 즉위 과정에서 정조와 척을 진 것은 사실이기에 정조 즉위 직후 화완옹주 역시 [[양자]] [[정후겸]], 비슷한 혐의를 받은 [[홍인한]] 등과 함께 죄인으로 몰려 탄핵당했다. 실제로 본인도 "[[영조|아바마마]]가 저렇게 정정한데 [[대리청정]]이 웬 말이냐?!"며 대리청정을 반대한 전력이 있으니 탄핵은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논의 끝에 [[옹주]]의 신분을 잃고 서인으로 강등당해 [[강화도]] [[교동도|교동]]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후 뭍으로 옮겨져 [[파주시|파주]]로 이배되었다. 귀양지에서 양자인 정후겸은 [[사약#s-1|사약]]을 받았지만 화완옹주는 여러 차례 대신들의 처벌 요구에도 정조가 이를 듣지 않았기에 계속 유형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