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완옹주 (문단 편집) == 평가 == 《한중록》에 [[사도세자]]는 [[화평옹주]]나 [[화협옹주]]와는 달리 화완옹주에게는 유독 냉하게 굴어 화완옹주가 오빠를 두려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완옹주는 "오빠는 왜 나에게만 그러는 걸까?" 한탄했다고. 한번은 세자가 화완옹주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내 말을 부왕이 들어주게 하라고 협박한 적도 있었고, 화완은 울며 불며 싹싹 빌고는 바로 영조에게 가서 세자가 시킨대로 완수했다. 세자로서는 이런 재주를 가지고도 자기 안위만 챙기는 화완이 꼴 보기 싫었던 듯. 아버지와 남동생의 중재에 신경을 썼던 화평옹주나 아버지에게 무시당해서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던 화협옹주와 달리 아버지의 편애를 받기만 하며 다른 가족의 아픔에는 별 신경을 안 썼기에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사도세자가 화완옹주를 밉게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한중록]]에서는 "오랫동안 둘이 한 방에 있었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모두 녹초가 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풀어헤쳐진 몰골로 함께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대체로 학자들은 만취할 정도로 술자리를 가졌던 것에 대한 기록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음란마귀]]가 낀~~ 학자들은 이 기록을 후에 화완과 사도가 영빈이씨 간병으로 한 방에 있는 걸 보고 영조가 격분해서 사도를 죽일 듯이 혼내며 내쫓았던 기록과 함께 '''두 남매의 [[근친상간]]의혹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는데(...), 주류 학계는 이런 가설에 대해 일고의 논할 가치도 없는 [[개소리]]로 여긴다[* 근데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저게 진짜라 가정해도 은근히 말이 된다는 게 함정이다. 아무리 남매 지간이어도 남녀가 한 방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다는 것도 [[남녀칠세부동석|당시 조선시대 분위기상]] 좀 이상하고, 사도세자, 화완옹주 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것도 그렇고, 화안옹주가 정조에게 집착했던 점 (자기 자식이라 생각했단 얘기) 등 영조 일가의 미스터리들이 어이없게도 전부 앞뒤가 들어 맞는다. 음란마귀 낀 희대의 개소리긴 하지만 되도 않게 뜬금없이 나온 주장은 아니란 얘기다. 헌데 왜 주류 학계가 이런 해석을 거부하느냐면, 정말로 저랬다고 보기엔 [[꽐라|주변의 내시들과 궁녀들까지 다같이 나가떨어졌다는(...)]] 기록도 같이 있기 때문이다. 괜히 [[근친상간]] 운운하는 말을 개소리 취급하는 게 아니다.]. [[사도세자]]가 여동생 화완옹주에게 아버지 일로 자주 섭섭하게 여긴 것과는 별개로, 원래는 두 남매의 관계가 상당히 친밀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양반|고위 관료]]나 왕족들의 경우라면 부부 간에도 내외하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생각한다면, 남매가 밤새도록 함께 술판을 벌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원래 [[사도세자]]가 [[화협옹주]], [[화평옹주]]나 여동생에게는 [[시스터 콤플렉스|굉장히 다정다감한 편이었다]]. 데면데면하거나 경쟁적인 현실 남매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살벌한 관계로 나오는 [[사극]]에서의 묘사와는 전혀 달랐다. 세자와 화완옹주 사이는 아마 좋을 땐 좋고 나쁠 땐 굉장히 나빴던 것 같으며, 오히려 그만큼 사도세자가 감정적으로 온기를 기대하며 의지했기에 한번씩 섭섭하게 굴 때마다 가감없이 솔직한 화를 터트리던 상대라 볼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