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완옹주 (문단 편집) === 묘사 === 흔히 각종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화완옹주가 정치적인 이유로 오빠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사도세자 사후에는 조카 정조와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화완옹주의 시가(媤家)는 [[소론]]파[* 흔히 [[노론]]파로 알려졌지만, 화완옹주의 시가는 엄연한 [[소론]]이었다.]였으며 사도세자와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시누이 화완옹주를 '''정처'''[* 鄭妻. '정씨의 처'라는 뜻으로 [[옹주]]에서 폐해진 뒤 이런 호칭으로 불렸다.]라 칭하며 싫어했던[* 정확히는 이때 화완옹주는 이미 작위를 박탈당해 '정처'가 공식 명칭이었으므로 이렇게 불렀다는 것만 가지고는 혜경궁이 그를 싫어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화완에 대해 '괴이한 여편네', '흉악했다', '이간질했다'라는 직접적인 표현도 반복해서 썼다. 정리하자면 호칭은 저게 당시 공식적인 호칭이니까 그렇게 쓴 거고, 호칭과는 별개로 혜경궁이 화완을 싫어했던 건 맞다. 그래도 화완옹주를 나쁘게 쓰려면 좋지 않은 일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화완이 사도세자에게 도움을 준 부분이 있었다고 쓰기도 한 걸 보면 혜경궁은 자기 나름대로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쓰려 노력한 것으로 보이며 공식 명칭인 '정처'라고 부른 것도 오히려 그 일환이었을 수 있다.] [[혜경궁 홍씨]]도 그 점만은 명확히 했다. 하지만 《영조실록》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으나, 정조의 왕위 계승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에서 정조가 홍인한-정후겸의 연합 정권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자 홍인한과 정후겸은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방해했고, 화완옹주도 정조에게 "주상께서 정정하신데 마땅히 대리청정의 명을 사양하는 것이 옳다."고 옆에서 부추겼다. 주도적으로 정조를 공격했던건 홍인한과 정후겸이었고, 화완옹주는 정조에게 크게 척을 지지 않았지만 영조가 총애하는 적법한 후계자에게 반기를 든 것은 너무 무모한 행동이었다. 결국 정조는 성공적으로 왕위를 계승했고, 홍인한과 정후겸은 모조리 숙청되었으며 화완옹주는 연관되어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