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이트채플 (문단 편집) == 영국의 지명 == {{{+2 '''Whitechapel'''}}} ||<|3> [[파일:external/whitechapeljack.com/1888_whitechapel_london_murder_map.jpg|width=500]] || [[파일:external/www.mernick.org.uk/whitboul.jpg|width=300]] || |||| 1894년의 화이트 채플 거리 그림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hitechapel_High_Street_1905.jpg|width=300]]|| || [[잭 더 리퍼]]의 살해현장으로 보는 당시의 화이트채플 지도 || 1905년 화이트채플 거리 || [[영국]] [[런던]] 타워햄리츠 자치구에 위치한 동네로, 런던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잭 더 리퍼]]의 연쇄살인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대에도 주로 말레이시아계 영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혼재하는 지역이지만, 16세기 후반부터 경찰을 포함한 공권력의 통제는 거의 미치지 않았으며, 가죽공장이나 양조장, 정육점 등이 모여 있었다. 때문에 17세기 이후에는 거대한 [[빈민가]]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아일랜드계와 유대계 등을 포함한 외부 이민자들도 정착을 시작했고, 매춘업소도 증가해서 19세기말에는 1200여명의 매춘부와 60여개의 매춘업소가 존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잭 더 리퍼가 그처럼 활개를 치면서 희생자를 골라잡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잭 더 리퍼 사건이 남긴 몇 안되는 긍정적인 영향 중 하나도 이 사건을 통해 화이트채플 빈민가의 모습이 비로소 영국 사회에 알려지게 되고, 이로 인해 빈민 구제의 계기가 된 것이다. 흔히 [[엘리펀트 맨]]이라고 잘 알려진 [[조셉 메릭]]이 살았던 것도 이곳 화이트 채플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대표적인 런던의 빈민가로 유명했던 화이트채플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의 피해를 직격으로 입으면서 그 흔적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현대에 와서는 아시아인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