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주연 (문단 편집) === [[결정론]]과 성장 === >'''[[내면아이|난 착한 애가 아니야. 친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며칠만에 울고 관둬버렸거든.]]''' >------ >TV더빙판38화, 원작39화 이전 디지몬 시리즈와 같이 디지몬 테이머즈의 전체적인 주제는 성장이다. 소심하던 소년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오유민]], 디지몬이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파트너 디지몬이 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이를 막는 것이 자신의 이기심이자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성장한 [[곽소룡]], 데이터의 집합체인 디지몬은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믿었으나 디지몬을 점차 친구로 인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장한 [[은세나]]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초반 황주연이라는 캐릭터는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인간은 슬픈 일이 발생했을 때 크나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인 듯 하나 과거에 일어난, 그런 트라우마에 의해 그것은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는 인간에겐 족쇄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슬픈 일로부터 파생되어진 비통한 감정을 망각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러니까 망각은 미래를 향해 달려야 하는 인간을 방해하는 족쇄를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주연은 그런 역할을 하는 망각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지는 것이 당연한 슬픔의 감정 자체를 부정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며칠 울고 관둬버린 것을 자책하는 그녀의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친구나 지인의 죽음으로 발생하는 슬픔도 힘든데 하물며 가장 친밀한 가족인 부모나 자식의 죽음으로 발생하는 슬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인간은 강해질 수 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황주연이라는 캐릭터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인간의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된 [[우울증]]이나 부정적-자동적 사고, 비합리적 신념, [[PTSD]]를 지닌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와 꽤 흡사하다. 이들 모두 부정적인 감정들을 계속 마음에 묶어두려고 하고 이를 떼어내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아예 거부해버린다.] >'''우리가 수집한 황주연의 부모와는 다르다. 어째서... 어째서...''' >---- >황주연의 아버지를 분석한 데리파의 대사 그녀가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은 작중 [[데리파]]를 통해 잘 나타난다. 작중46화, 황주연의 아버지는 이때까지 딸에 대한 엄격한 모습을 버리고 자신의 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참된 아버지의 모습으로 데리파 앞에 섰다. 다시 말해 황주연의 아버지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함으로써[* 실제로 플래시백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며 말할 정도] 정신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면밀히 분석하는 데리파. 하지만, 자신이 알던 황주연의 아버지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고 "왜"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황주연의 사고 방식을 복사한 데리파는 사실상 그녀의 감정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근거로 황주연은 누군가의 변화 다른 말로는 성장을 부정하는 인물임이 확실해졌다. >'''이건 운명이니까''' >------ >46화 그녀는 어째서 성장을 부정하는 인물로 변모했을까? 작중 황주연은 "[[운명]]"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뜻한다. 다시 말해 [[결정론|운명은 이미 정해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다. 운명이라는 틀 안에 자신의 삶은 물론 종착점까지 정해졌다는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성장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이른다. 결국, 어렸을 때 얻은 ''운명''이라는 단어 하나가 인간의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그녀의 모습을 조각했다는 말이 된다.[* 간단히 말해 황주연은 어릴 적 트라우마와 이를 치유해주는 주변인이 아니라 상처에 '운명' 이라는 말로 쐐기를 박아버린 채 상처를 방치한 주변인(특히 황주연의 아버지는 그 주변인들 중에서도 만악의 근원급.)들로 인해 아직 가치관 형성이 미숙한 아이 상태에서 섣불리 결정론을 택하고 이에 따르는 비합리적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나 슬픔을 잊고 나아가야 하는 것에 스스로 제동을 걸고 그건 잘못됐다고 은연 중에 사고하는 방식으로.] >'''나는 누가 뭐래도 주연이를 구하겠어''' >------ >47화, 개심한 [[베르제브몬]]의 대사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는 틀 안에 갇힌 그녀에게 한 줄기의 빛을 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파트너 디지몬을 죽인 베르제브몬이었다. 작중 47화에서 데리파의 분석으로 봤을때 주연의 아버지처럼 베르제브몬 역시 이미 그녀의 파트너였던 레오몬을 죽인 가해자라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베르제브몬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로 인한 죄책감으로 데리파에게 붙잡힌 황주연을 구하고자 한다. 이전 힘만을 갈구했던 베르제브몬과는 다른 그의 모습을 본 황주연은 정신을 차리게 된다.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황주연의 입장에서 베르제브몬을 볼 때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녀 앞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파트너 디지몬을 죽였을 정도로 냉혹한 디지몬이 자신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베르제브몬의 정신적 성장과 황주연을 구하고자 하는 집념이 그녀를 정신차리게 한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바꿀 수 있어. 그리고 이는 누군가가 강요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야 해.''' >------ >작중 38화, 운명은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은세나의 질문에 대한 [[레나몬]]의 대답 >'''데리파, 넌 내 목소리와 기억을 빼앗았어. 난 절대 착한 애가 아니야. 레오몬의 말을, 운명을 내 마음대로 받아들였어. 하지만, 이런 나도 내일은 웃는 얼굴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어. 노력하면 착한 애가 될 수 있다고. 우리 사람도 진화할 수 있다고''' >------ >50화 결국 황주연은 레오몬이 했던 말의 참된 뜻을 알게 되었다. 죽은 레오몬을 위해 슬퍼하기보단 웃으며 내일을 볼 수 있기를. 즉, 레오몬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적인 성장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황주연에게 있어서 바꿀 수 없는 운명은 절대자같은 존재였다. 데리파는 이러한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설정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운명을 극복했다. 인간은 진화할 수 있다고, 인간은 현재를 바꿀 수 있다고, 현재가 바뀌면 미래가 바뀌고 운명도 바뀌게 될 테니까. [[코나카 치아키|작가]]는 황주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정신적 성장이 현재를 바꾸고 그것이 미래를 바꾸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개할 수 있다고. 이것이 작가가 황주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