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해남도 (문단 편집) == 정리 ==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에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는 전부 폐지되고 [[이북 5도]]청에서 쓰고 있는 분단 직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가거나, 분단 직전 행정구역으로 돌아가서 대한민국 방식으로 새로운 행정구역을 짜던가 아예 제3의 행정구역으로의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하에서 설명하는 면의 배분 개념은 모두 광복 직후의 면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일단 황해남도에 속한 행정구역은 전부 구 황해도에서 출발하였다. * '''[[해주시]]'''(海州市)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해주목으로 존재했던 유서깊은 고을. [[벽성군]]에서 일부 면을 얻어서 면적을 넓혔다. * '''[[강령군]]'''(康翎郡) 조선시대 강령현이라는 독립된 고을로 존재하였으나 1909년 옹진군에 합병되었다. 1952년 구 [[벽성군]]의 남쪽 바닷가의 두 개의 면과 구 [[옹진군(황해도)|옹진군]]의 남동쪽 면 3개를 합쳐서 부활시켰다. 2지선 철도인 [[부포선]]이 이 군에서 시종착한다. 도청 소재지는 [[강령역]]에 인접해 있으며 [[부포선]]은 도 북서쪽의 [[신강령역]]에서 분기한다. 강령탈춤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 '''[[과일군]]''' 조선시대 풍천군이었던 곳이었으나 1909년 송화군에 합병되었다. 1967년 [[김일성]]이 송화군 서부의 과수농장지구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과수농장지구가 위치한 구 풍천군 지역의 대부분을 분리해서 신설됐다. 여담으로 과일군은 한반도에서 몇 안 되는 비한자어 행정구역명으로[* '과일'의 유래는 한자어 '과실(果實)'이기 때문에 순우리말은 아니다.] '''진짜로 과일이 많이 난다고 해서 과일군이다'''! 북한의 과일 생산량의 25%가 여기서 난다(…).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지나간다(구 철광선 부분). * '''[[룡연군]]'''(龍淵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장연군]]의 남서쪽 임해 4개의 면(이 중 2개는 일부분만)이 분리되었다. 지리적으로 [[해주]]에서 꽤 멀고 북한 교통의 핵심인 철도가 지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황해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과 몽금포가 여기 있다. * '''[[배천군]]'''(白川郡) [[조선총독부]]가 멋대로 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탄생했던 [[연백군]]을 다시 북한이 원래대로 연안과 배천으로 쪼개는 과정에서 동쪽 10개 면이 [[배천군]]이란 이름으로 다시 복귀했다. 한자 음으로는 '백'천인데, 원래 관용적으로 '배'천이라 불려서 예외적으로 '배'천이라 읽는다. 옛날 사람들도 헷갈렸는지 민담에도 이곳 현감에 제수받은 사람이 "제가 이번에 백천 현감으로 제수받았습니다"라고 자랑했다가 집안 어른에게 자기가 갈 고을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고 욕 먹은 이야기도 있고, [[흥선 대원군]]의 일화 중 이걸 '백천'이라고 읽었다가 대원군에게 망신당한 [[신정왕후 조씨]]의 친척 이야기가 야사에 남아 있다. [[배천선]]의 종착지. 군청 소재지 역시 [[배천선]]과 매우 가깝다. * '''[[벽성군]]'''(碧城郡) 1938년 해주군 해주읍이 부(府)로 승격되자 나머지 읍면지역을 벽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벽성군]]은 현 황해남도의 면적의 약 1/5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군이었으나, 서쪽 끝부분의 2개의 면은 [[태탄군]]에, 남쪽 2개의 면은 [[강령군]]에, 북쪽 1개의 면은 [[신천군]]에, 동쪽 6개의 면은 [[청단군]]에, 가운데 1개의 면은 [[신원군]], [[해주시]], [[청단군]]에 떼어주었다. 그런데 '''그러고도 면이 5개가 남았다.''' 군 남쪽으로 [[옹진선]]이 지나가며 군청은 [[벽성역]] 근처에 있다. * '''[[봉천군]]'''(峯泉郡) 1952년에 신설된 군. [[황해북도]] 문서에 설명된 구 [[평산군]]의 남부 나머지 1/3이 바로 이 [[봉천군]]이다. 예전에는 평천군(平川郡)이었으나 1990년에 개칭하였다. * '''[[삼천군]]'''(三泉郡) 조선시대 문화현(文化縣)이라는 독립된 고을로 존재혔으나 1909년 신천군에 합병되었다. 문화 유씨(文化 柳氏)의 문화가 바로 이 동네다. 1952년 구 [[신천군]]의 서쪽 4개 면(2개는 일부분)과 구 [[송화군]]의 동남쪽 면 3개(1개는 일부분)을 잘라서 신설하였다. 군의 중심부는 [[은률선]]이 관통한다. * '''[[송화군]]'''(松禾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송화군]]의 서쪽 6개 면을 [[과일군]]에, 동쪽 3개 면을 [[삼천군]]에 나눠주고 남은 가운데 3개 면이 현 [[송화군]]이다. [[삼천군]]과 마찬가지로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관통한다. * '''[[신원군]]'''(新院郡) 1952년 [[재령군]]의 남쪽 6개 면을 잘라서 독립시켰다. 군 중심부를 [[황해청년선]]이 지나간다. * '''[[신천군]]'''(信川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신천군]]의 북쪽 3개 면은 [[안악군]]에, 서쪽 3개 면은 [[삼천군]]에 떼어주고 남은 8개의 면에 [[벽성군]]의 면 1개를 얻어서 개편된 행정구역. 역시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관통한다. [[신천·재령군 봉기|신천군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 '''[[안악군]]'''(安岳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안악군]]의 북쪽 절반을 [[은천군]]으로 할양해 주고 [[신천군]]에서 3개의 면을 받아서 현재의 [[안악군]]이 되었다. 그나마 도로망은 [[태탄군]]이나 [[룡연군]]보다는 훨씬 낫다. * '''[[연안군]]'''(延安郡)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해서 만들어 놓았던 [[연백군]]을 다시 연안과 배천으로 복구시키면서 구 연백군 서부 8개 면을 원래대로 [[연안군]]으로 다시 분리했다. 군 중심부를 [[배천선]]이 통과한다. * '''[[옹진군(황해도)|옹진군]]'''(甕津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옹진군(황해도)|옹진군]]의 서쪽 5개 면. 도청 소재지가 동쪽에 치우쳐 있고 [[해주시]]에서 은근히 먼 관계로 접근성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한국 전쟁 휴전 당시 여러 개의 섬이 남북을 왔다갔다한 관계로 당시에 가장 변동이 심했던 행정구역. * '''[[은률군]]'''(殷栗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1895년부터 1909년까지는 군의 일부가 장련군(장연군이 아니다)으로 분리되었던 적이 있다. 남부의 1개 면의 일부를 [[송화군]]에 떼어준 것을 빼면 거의 변한 게 없다. [[은률선]]의 종착지. 유명한 [[서해갑문]]이 여기에 있다. * '''[[은천군]]'''(銀泉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안악군]]의 북부가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남포시]]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 '''[[장연군]]'''(長淵郡) 고구려 때부터 장연군으로 불렸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원을 갖는다. [[태탄군]]에 2개, [[룡연군]]에 4개를 떼어 주고 남은 4개의 면을 [[장연군]]이라 칭한다. [[장연선]]의 종점이며 [[장연역]]에서 군청 소재지까지는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다. * '''[[재령군]]'''(載寧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신원군]]에 일부를 떼어주고 남북으로 길게 남은 7개의 면이 현재의 [[재령군]]이다. 손꼽히는 곡창이라고. [[은률선]]이 지나간다. * '''[[청단군]]'''(靑丹郡) 1952년에 신설된 군. [[벽성군]]의 동쪽 6개 면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배천선]]이 군의 남부를 통과하며 규모가 큰 저수지가 있는 것이 특징. 여담으로 한자만 놓고 보면 [[고스톱]]의 그 [[청단]] 맞다(…). * '''[[태탄군]]'''(苔灘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벽성군]]의 2개의 면과 [[장연군]]의 1개의 면을 조합하여 신설되었다. 하지만 그뿐. 접근성은 [[룡연군]] 못지않게 나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