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도 (문단 편집) === 비판 === > 아비가 자식에게 무슨 친함이 있겠는가? 근본된 뜻을 논하자면 사실 [[성욕|욕정]]이 결과로 나타났을 뿐 아닌가? 자식 또한 어미에게 또한 무슨 친함이 있겠는가? 비유컨대 [[태아|병 속에 있던 물건]]을 꺼낸 것과 같을 뿐 아닌가? >《[[후한서]]》 <[[공융]]전>[* 공융은 [[공자]]의 후손이었으며 이름난 효자였다.]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어쩌다 얽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효도에>, [[마광수]][*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못내 억울하고,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세상에 내보내준 은혜를 고마와하라고 들입다 강조해대는 효 사상이 얄밉다"(마광수의 뇌구조), "어머니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경우 제일 먼저 명심해두어야 할 사항은 우선 아이가 아이 스스로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아이는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된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적으로' 아이를 기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보답을 기대한다거나 흔히 말하는 '효도(孝道)'를 바라선 안된다."(젊은 엄마들에게 주는 글), "효도에 대한 지나친 강박증은 도리어 부모를 죽일 수도 있고, 부모의 후광에 대한 비굴한 기대감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에 흠집을 내게 된다. 우리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부모의 일차적 목적은 자식 생산이 아니라 '''[[섹스]]의 쾌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고마워 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다."(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그 외에도 마광수는 가족 관계가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가족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탈가족주의)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김유식]]이 직접 정리한 [[https://gall.dcinside.com/board/lists/?id=ma_essay|마광수 교수 에세이 갤러리]] 참조.] [[법륜(승려)|법륜]]은 관련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부모는 아무리 살기 어렵더라도 자식을 스무 살까지 돌봐야 합니다. 이것은 생태적 의무이기도 하고 사회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입니다. 자연 생태계에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돌보는 게 생태적 현상은 아닌 거예요. 부모도 성인이고 자식도 성인이기 때문에, 각각 자기 개체의 보존을 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옛 은혜를 생각해서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거예요. 그런데 유교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것보다 부모를 모시는 것을 더 우위에 두고 효를 중요한 윤리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의무'''이고,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택'''에 속합니다. 선택의 문제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고, 안해도 죄가 아니라는 얘기예요. 부모가 자식을 버리면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면 칭찬받을 일,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효도를 바라볼 때 가장 중심이 되는 주장은, 효도는 부모 세대나 타인에 의해 강요될 것이 아니라 자식 스스로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막장 부모|부모가 자식을 잘 돌보지 않고 학대, 방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자식에게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라 강요하는 것은 도리어 "뻔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같은 자식 세대라도 가정환경이 다르니 남에게 참견하는 것도 [[오지랖]]일 뿐이다. '''자식은 노후 [[보험]]도 [[애완동물]]도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다.''' 창작물에서 피조물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조물주는 선역이 아닌 악역이며 현실에서도 신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피조물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강요하는 종교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부모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자식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충효사상도 얼마든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효도에 대한 예의와 가치관 차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역사가)|진수]]는 아버지 상중에 병이 나서 하녀를 시켜 환약(丸藥)을 만들게 했는데, 마침 찾아온 손님이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부모의 상중에 병이 나거나 건강을 상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서 사람들에게 불효자라고 욕을 먹었다. 이후에 모친이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낙양에 안장했는데, 이는 고인을 고향 땅에 장사지내는 풍습에 어긋나는 일이 었기 때문에 또 다시 불효자라고 욕을 먹고는 파면당했기도 하였다. 이렇듯 효는 부모에 대한 감사가 기본적이기 때문에 자식에게도 효를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필요한데, 무조건적으로 효를 해야 한다는 발상은 상처받은 자식들을 무시한 채 자녀의 책임만 강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도리어 이 효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처받은 가정들이 사회 곳곳에 곪아있는 경우가 현대에 매우 많다. 이기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효 사상 역시 표면적으로만 따르기만 하고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치는 [[독거노인]]들이 증가하는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이며, 효의 강조는 역설적으로 부모에게 받은 비정상적인 교육법을 [[대물림]]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동 학대]]범 태반이 피학 경험이 있다. 결국 효를 귀히 여기는 문화가 일종의 권리로 작용하여 부모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이들의 도주로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慈) 마음이 있어야 효가 뒤따라오는 법이며, 효 만큼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도 무척 중요하다. 효도에 대한 강조가 물질적인 부양에 대한 강조를 낳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속물화와 보수화에 기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효를 강조하면 할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부모의 허영심을 충족해주고 용돈을 많이 줄 수 있어 효를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하할 때 "너의 부모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냐." 같은 비난은 한국에서 굉장히 흔하다. 결국 자신이 돈이 필요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 도덕적 의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또 이는 단순히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자의 [[논어]]에도 "효의 끝, 즉, 완성은 입신하여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빛내어 부모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입신양명이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결국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최근에는 자식 세대(소위 2030) 사이에서 [[86세대 책임론|86세대~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적대감, 혐오]]와 함께 효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는 건 물론 단순 취업조차 어려워지는 [[청년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모 세대로부터 학업, 취업, 독립, 부모에 대한 경제적 부양 등으로 대표되는 효에 대한 압박감을 지속적으로 받다보니 효에 대해 점점 부정적으로 시각이 변화하고 있는 것. 이전과 달리 경제적 눈높이는 높아진 반면 핵가족화되면서 부양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더 커진 데다, [[N포 세대]]라 불릴 정도로 결혼, 출산을 포함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세대 입장에서 효도가 자신에게 무슨 의미냐는 타산적 생각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효도는 다른 호혜적 관습과 마찬가지로 [[연금]]처럼 그것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으로 기대되기에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고갈 위기와 함께 자식 세대가 번식 본능 자체를 포기하면서 미래를 어둡게 보는 풍조가 형성되었고, 효도 또한 투자 가치를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2017년에 올라온 [[https://m.clien.net/service/board/park/11010918|클리앙의 글]]의 댓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부모에게 거액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찬반이 있었으나, 출산율이 0.7이하로 내려간 현시점에서는 부모자식간 일방적인 금전거래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는 한번 직장을 잡으면 평생 먹고 살거나, 경지만 있다면 평생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농경 사회였고, 자식이 경제력을 잃을 때쯤엔 부모가 사망하여 부양 의무를 덜 수 있던 때는 큰 상관이 없었다.[* 설령 부모가 사망하지 않아도 자식의 자식, 즉, [[손자]]가 부양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손자 입장에서는 부양이 따블로 늘긴 하는데 (손자 입장에서는) 조부모가 수명이 초월적으로 많지 않은 이상은 살더라도 얼마 못 가 사망하고 어차피 살아도 둘 다 살기보다는 둘 중 하나만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직장 은퇴 후에도 20년 이상 생존하게 된 것이 현재 상황이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젊은층의 인구 감소로 인한 부양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이런 효 사상에 기대는 국가 정책에 더욱 반감을 갖게 만든다. 그 외에도 교육열에 불타 최대한 부족함 없이 열성적으로 지원하려는 부모는 많지만, 그만큼 인격적·정서적으로는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자녀의 성적은 잘 알아도 정작 자녀의 반 번호는 모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과거에는 교육이랄 것도 없이 방목하듯 키웠지만, 대신 그만큼 요구하는 눈높이나 기대도 낮았고 자립심과 모험심도 형성되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큼 무능하지 않고서야 취업이나 창업이 쉬웠던 [[베이비 붐 세대]]의 호경기가 아닌, 계층간 이동이 매우 경색된 [[레드 오션]]의 불경기이며, 어린 시절부터 겪는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부모의 어설픈 통제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꿈 없이 좌절하는 젊은이가 많은 실정이다. 이런 이들에게 아무런 경제적 이득과 반대급부 없는 효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 [[세대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서 [[존속살해]][* 존속살해는 용어로 쓰이며 가중처벌되는 반면 [[비속살해]]라는 말은 생소하며 법적으로 그냥 일반적인 살인으로 취급되는 것, 비속살해 후 자살을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은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등 존속 대상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는 중이다. 이를 종합하자면 '''효도는 [[금수저]]가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자기가 금수저의 2세라고 해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잘 안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사실 금수저는 태어나서부터 물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는 풍부하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사랑과 믿음과 희망과 소망 등 관심을 많이 받고 다른 가정집 자식들과 다르게 부족함 없이 제대로 잘 성장해서 이런 좋은 환경을 부여한 부모님께 반드시 효도해야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금수저들은 자신들이 직접 부모에게 엄청나게 감사함을 느껴 효도를 철저히 잘 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또 금수저는 기본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막대한 재산은 언젠가 남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는데 자기 자식이라도 패륜을 일삼는 자식이라면 썩 달갑지 않을 것이다. 또 집안에 형제자매가 여럿 있다면 서로간에 경쟁자가 되어 눈에 더 잘 띄이기 위해서라도 경쟁적으로 부모의 마음에 들도록 효도할 수 밖에 없다.하지만 그것을 효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진정한 사랑이 없는 행동이 효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을 위한 행위일뿐. 사실상 그들의 부모는 이미 재물적으로 부족함이 없기에 정신적, 애정적 효를 원할 지도 모른다. 그것이 없다는 것은 효일 수 없을 것이다. 효 또한 받는 이가 판단할 일이지 주는 이의 행동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반대로 [[흙수저]]는 자기 혼자 먹고 사는 것도 상당히 힘들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할 여유조차 되지 않을뿐더러 자신도 원치 않게 태어났는데 괜히 억울하게 태어나게 만든 장본인인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며 서로 찢어져서 따로 살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다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게 대체로 본인이 흙수저에서 넉넉하게 먹고 살만큼 성공을 하게 되면 그래도 어려운 환경에서 못난 자신을 이렇게까지 키워주셨기 때문에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며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대표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차지철]] 등이 있다. 아예 차지철의 경우엔 차지철의 어머니가 내 아들이 나쁜짓을 했다는건 아는데 그래도 나한텐 효자였다고 회고했을 정도. 다만 차지철의 경우엔 그럴만도 한게 어린시절에 차지철은 이복형제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래서 어머니와는 달리 형제자매들은 차지철이 출세한 후 이를 알고 엉겨붙으려고 하자 냉혹하게 내쳐버렸다.] 여기서 차지철을 지켜준건 차지철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사회에서 객관적인 기준의 성공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흙수저를 벗어나지 못한) 부모와 헤어져 따로 사는 경우가 많다.] 또한 효도가 사회의 도덕률과 충돌할 때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도둑질을 하는 것을 목격한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것은 비도덕적인가? 효도를 중시하는 유교적 관점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설령 부모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자녀는 이를 숨겨줘야 마땅하다고 대답한다.'''[* 이는 [[공자]]가 한 발언에서도 드러나는데 제자가 [[순(삼황오제)|순]]의 아버지가 살인을 했고 그것을 순이 알았다면 어찌 해야하냐고 묻자 공자는 그렇다면 '''"왕위를 버리고 아버지와 함께 멀리 도망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유로 조선시대까지의 유교의 영향과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받은 영향인지 법적으로 [[변질된 유교적 전통|형사소송법 제224조, 235조를 통해 자녀가 부모를 고소, 고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살인, [[성폭행]], [[가정폭력]]은 신고가 가능하다.] 현대에 들어 부각되는 아동학대나 과잉체벌 등의 이유로 위헌논란이 크지만 아직까지 논의된 바는 적은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