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나키 (문단 편집) == 커리어 == 후나키는 대학 졸업 후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서 인스트럭터 활동을 하던 중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데뷔 전에 그만두었다. 이후 다시 하마구치 짐의 인스트럭터 역할을 해오다 '관절기의 귀신' [[후지와라 요시아키]]의 '''프로페셔널 레슬링 후지와라구미(藤原組)'''라는 단체에서 데뷔하여 슛 스타일의 프로레슬러로써 활동했고, 후에 격투탐정단 배틀아츠라는 단체로 이적했다. 그러다 [[루차 리브레]] 스타일이 마음에 든 그는 [[그레이트 사스케|더 그레이트 사스케]]의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이라는 단체로 이적해서 [[TAKA 미치노쿠]], [[딕 토고]] 등과 함께 KAIENTAI라는 스테이블을 결성한다. 그리고 1996년 10월 10일에 딕 토고 & Men's 테이오 & [[카즈 하야시|시류]] & 후나키 쇼이치 & TAKA 미치노쿠 vs 그란 하마다 & 그란 나니와 & 야쿠시지 마사토 & 스펠 델핀 & [[타이거 마스크(프로레슬러)#s-2.4|타이거 마스크 IV]]세 경기에 참가했는데, [[데이브 멜처]]에게서 5성 만점을 받은 한편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96년 올해의 경기 3위에 이름을 올린다. UWA라는 단체에서 U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을 지낸 적도 있다. [[WWE|WWF]]에서 활동하고 있던 TAKA 미치노쿠의 제안으로, 카이엔타이의 멤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WWF와 계약한다. 그 후로 TAKA 미치노쿠를 계속 공격하며 강제로 카이엔타이에 가입시키는 각본을 수행한다. TAKA 미치노쿠가 결국 카이엔타이에 가입한 후에 개그 악역 스테이블로 활동할 때 각본상으로 [[발 비너스]]의 성기를 자른다. 딕 토고와 Men's 테이오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TAKA 미치노쿠와 후나키는 카이엔타이라는 이름의 태그팀으로써 활동하게 된다. 그때 아무리 일본어로 떠들어도 담당성우가 TAKA 미치노쿠의 EVIL!과 후나키의 INDEE~~D만 외치는 것이 컬트적인 인기를 끈다. [[WWF 레슬매니아 2000|레슬매니아 2000]]에서 하드코어 배틀로얄에 참가해서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브래드쇼]]의 플라잉 숄더 블록을 맞고 쓰러진 [[비세라]]를 핀하며 하드코어 챔피언이 되었지만, 얼마 안 가 민 스트리트 파시의 로드니에게 핀을 당하며 타이틀을 뺐겼다. 그리고 [[WWF 언포기븐(2000)|언포기븐 2000]]에서도 하드코어 배틀로얄에 참가하지만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한다. TAKA 미치노쿠가 WWF를 떠난 후, 후나키는 솔로로 전향한다. 2002년 드래프트에서 후나키는 스맥다운으로 이적해서, 스스로 자버인 것을 인정하며 백 스테이지에서 인터뷰를 하는 스맥다운 넘버 원 아나운서 기믹으로 활동한다. 크루저웨이트 디비젼에서 활동했지만, 주로 벨로시티에서 경기를 가졌다. 그 뒤 [[울티모 드래곤]]과 자버 [[태그팀]]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으나 쥐도새도 모르는 사이에 팀이 조용히 해체된 후론 간혹 6인 태그매치에 참여하거나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을 상대로 3분이상 버티면 오래 버틴 것일만큼 쉽게 깨져오면서 별 활약이 없다가 크루져웨이트 챔피언쉽 넘버 원 컨텐더를 정하는 7인 배틀로얄에서 우승을 한 데 이어 [[WWE 아마겟돈(2004)|아마겟돈 2004]]에서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WWE)|크루저웨이트 타이틀]]을 차지한다. [[더들리 보이즈#s-3.3|스파이크 더들리]], [[차보 게레로]], [[지미 왕 양|아키오]], 눈지오 등을 상대로 자신의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을 지키다가 [[WWE 노 웨이 아웃(2005)|노 웨이 아웃 2005]]에서 [[차보 게레로]]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그 뒤로 계속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 경기에 참여하지만 타이틀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 뒤로 [[스카티 투 하티]]와 자버 태그팀으로 다니면서 잡을 해주다가 뇌진탕으로 인해 잠시 회복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로 인해 스카티와의 태그팀은 조용히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벤트성으로, 인디 단체에서 카이엔타이 DX 멤버들과 일회성으로 재결합하여 경기를 치룬다. WWE에 복귀한 후에도 자버로 활동했는데, 스맥다운 녹화와 ECW 방송 사이에 있었던 다크 매치에서 [[블라디미르 코즐로프]]를 상대로 경기를 가지다가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다시 한 번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 부상에서 복귀한 후나키는 링네임을 쿵 푸 나키로 바꾸고, 경기용 팬츠 대신 도복[* 도복의 등 부분에 반쯤 '''욱일기'''가 그려져 있으며, 타이탄트론에서도 욱일기가 나온다.]을 입고 나온다. 쿵 푸 나키를 처음 선보였을 때 [[알 트루스]]와 태그팀을 맺어 [[몬텔 본테비어스 포터|MVP]]&[[셸턴 벤자민]]을 상대했는데, MVP를 크레인 킥으로 쓰러뜨린 뒤 커버하여 승리한다. 2008년 12월 5일 스맥다운에서는 WWE 챔피언 [[에지(프로레슬러)|에지]]를 상대해서 비록 졌지만 어느 정도 선전했다. 이후 다시금 자버의 길을 걷다가 2010년 4월 22일에 방출된다. 후나키는 WWE 내의 커리어간 대부분 별 볼일 없는 자버로 활동했지만 일본 시장에서의 상품성을 평가받아 오래도록 WWE에서 활동할 수 있었으며, WWE는 극동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직함을 만들어 후나키를 임명하는 등 대우를 잘 받았다. 또 후나키가 WWE에 입성한 후부터 [[숀 마이클스]]와 친분이 두터웠던 덕도 있다.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 자신의 이름을 딴 프로레슬링 스쿨인 후나키 도조를 운영하면서 일본을 떠나 텍사스에 정착을 했는데, 후나키가 우상으로 여기는 숀 마이클스의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WWE를 떠난 뒤 후나키는 ZERO-ONE과 계약하여 그의 제자인 [[히다카 이쿠토]]와 팀을 이뤄 활동했다. 또 TNA One Night Only: World Cup of Wrestling에서 팀 인터네셔널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에서 개최된 WWE 하우스 쇼의 특별 레프리를 맡았다. [[KENTA|이타미 히데오]]의 NXT 데뷔 후 첫 인터뷰 영상에서 통역 역할로 출연하였다. [[레슬매니아 32]]부터 WWE의 일본어 해설로써 활동하는 한편 [[아스카(프로레슬러)|아스카]], [[나카무라 신스케]], 이타미 히데오 등 일본인 프로레슬러들의 WWE 적응을 돕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활약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