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덴노)] [include(틀:역대 일본 상황)]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Tenn%C5%8D_Kazan_thumb.jpg]] || || '''[[시호]]''' ||가잔 덴노(花山 天皇, 화산 천황)|| || '''[[휘]]''' ||모로사다(師貞))|| || '''[[왕릉|능호]]''' ||가미야노호토리능(紙屋川上陵)|| || '''생몰''' ||968년 11월 29일 ~ 1008년 3월 17일|| || '''재위''' ||984년 11월 5일 ~ 986년 7월 31일|| || '''[[연호]]''' ||칸와(寛和)|| || '''황거''' ||헤이안쿄(平安京)|| [목차] == 개요 == 일본의 제65대 천황. 이름은 모로사다(師貞)로 [[레이제이 덴노]]의 장남이었다. == 생애 == === 덴노가 되기 이전 === 969년 숙부인 [[엔유 덴노]]가 11세에 즉위하자 그는 2세의 아주 어린 나이로 [[황태자]]가 되었다. 엔유 덴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한 탓에 후지와라씨가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결국 엔유 덴노는 세력 다툼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한 채 덴노의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984년, 엔유 덴노의 뒤를 이어 마침내 가잔 덴노가 16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 정쟁의 시기 === 가잔 덴노가 즉위한 후에도 덴노를 보좌하는 최고 지위인 [[관백]](칸파쿠)에 있었던 '''후지와라노 요리타다'''가 전대에 이어 [[국가]]의 [[정무]]를 담당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외숙부였던 '''후지와라노 요시카네'''가 쥐고 있었다. 결국 후지와라노 요시카네는 가잔 덴노의 측근이었던 '''후지와라노 코레시게'''와 함께 국정을 장악했다. 한편 가잔 덴노가 가장 아꼈던 측실이었던 후지와라노 요시코가 죽자, '''후지와라노 카네이에'''는 덴노의 슬픔을 이용하여 출가를 권했다. 이는 당시 [[황태자]]였던 자신의 외손자 야스히토 친왕(후에 [[이치조 덴노]])을 덴노로 즉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가잔 덴노는 즉위 1년 10개월여 만인 986년에 황태자에게 덴노의 자리를 물려주고, 가잔지(花山寺)에 머물며 출가했다. 이후 [[부처]]의 가르침을 좇아 수행하며 생활하다가 1008년, 41세 나이로 붕어했다. == 기타 == 일본 고유 형식의 시가인 와카 등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습유와카집》(拾遺和歌集)의 지은이로 알려져 있다. == 가족관계 == * 뇨고(女御): 고키덴노 뇨고(弘徽殿女御) 후지와라노 요시코(藤原 忯子) (?~985) - 후지와라노 다메미쓰(藤原為光)의 딸 * 뇨고(女御): 호리카와노 뇨고(堀河女御) 후지와라노 요시코(藤原 姚子) (971~989) - 후지와라노 아사테루(藤原朝光)의 딸 * 뇨고(女御): 요시코 내친왕(婉子 女王) (972~998) - 다메히라친왕(為平親王)의 딸 * 뇨고(女御): 조쿄덴노 뇨고(承香殿女御) 후지와라노 다다코(藤原諟子) (957~1035) - 후지와라노 요리타다(藤原 頼忠)의 딸 * 궁인(宮人): 시고호(四御方) 후지와라노 다케코(藤原 儼子) - 후지와라노 다메미쓰(藤原為光)의 딸 * 궁인(宮人): 헤이시(平氏) (968~1028) - 타이라노 스케유키(平祐之)의 딸 제1황자: 기요히토 친왕(清仁 親王) (?~1030) - 63대 [[레이제이 덴노]]의 양자 * 궁인(宮人): 타이라노 히라코(平 平子) - 타이라노 스케타다(平祐忠)와 궁인 헤이시의 딸 제2황자: 아키나리 친왕(昭登 親王) (998~1028) - 레이제이 덴노의 양자 [[분류:천황]][[분류:일본 상황]][[분류:968년 출생]][[분류:1008년 사망]][[분류:교토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