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관아의 부속시설 (客舍)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Jeonju_Gaeksa.jpg|width=100%]]}}}|| || 전주객사(全州客舍). [[전주]] 시내 번화가에 있는 문화재로 정식 이름은 풍패지관(豊沛之館)[* 원래 [[한고조]] 유방의 고향 및 주변 지역을 합쳐서 풍패(豊沛)라고 불렀던 것이 이후 역대 왕조 창업자들의 고향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보물 제 583호 || '''객사'''([[客]][[舍]])는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서 관아에 관련된 시설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된다. 전통적인 고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 전통건축물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세병관]]도 객사의 일종이다. 규모가 큰 만큼 일제강점기 때는 개조가 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례로 부산 [[동래구]]에 존재했던 동래 객사는 서양식 창을 달아 학교로 사용되었다.] [[나말여초]]때부터 세워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 중기까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은 건물이었다. 조선 이전에는 국가적으로 [[불교]]를 신봉해 전국에 규모 있는 [[사찰]]이 많았고 이들이 관리나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따로 객사를 지역별로 만들 이유가 적었다. 사찰은 조선시대 초기 이후에도 숙소로 많이 이용되었지만, [[숭유억불]]이 오래 지속되면서 평지의 대형 사찰은 사라지거나 일부는 객사로 개조되고,[* [[부여군]] 부여객사가 대표적으로, 주춧돌 등에서 사찰을 개조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외에 고려 멸망 후 역할을 잃은 사찰들은 [[향교]]나 [[서원]]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교통로와 거리가 있는 [[산사|산중턱의 중소규모 사찰]] 위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젠 평지의 도시에 따로 숙박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객사는 주로 [[평안도]]와 [[경상도]]에 집중되었으나 성종때 사림파를 등용한 이래로 전국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향촌에 성리학을 보편화시키기 위해 객사의 중심 건물인 정청에 궐패(闕牌)[* 한양에 있는 [[왕]]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수령]]이 왕의 지시에 따라 고을을 다스리는 의미에서 비치해 두었다.]를 안치해 삭망월 등에 망궐례를 행하기 시작했고, [[임진왜란]]을 거쳐 18세기에 들어서 보편화되었다. 수령을 비롯한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 명절,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전패(殿牌)[* 조선 임금을 상징하는 의미로 전각 전(殿) 자를 새긴 나무 패. 크기나 모양은 제사에 사용하는 위패와 거의 같았다. 중국 사신들이 올 만한 장소에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궐패(闕牌)도 만들어서 전패와 함께 배치하였으나, 그렇지 않은 곳에는 전패만 두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전패를 없애고 대한제국 황제를 상징하는 의미로 궐패만 사용하도록 했다.]를 북쪽에 안치하고 그 앞에서 절하는 망궐례(望闕禮)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또한 객사는 중앙으로부터 임금의 뜻을 받들고 내려온 사신들을 머물게 하며 접대하던 건물이기도 하였으며, 관찰사가 순시차 들르면 잔치를 벌이거나, 백성들에게 향시를 베풀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객사는 각 지방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지거나 관아와 나란히 지어지곤 하였다. 관사(館舍) · 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다. 보통 객사 건물은 건물 중앙부에 정청이라고 부르는 건물을 만들어 놓고 그 좌우에 익헌이라고 불리는 길쭉한 형태의 건축물을 연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중앙부에 두는 정청은 좌우익헌보다 약간 높이가 높았다. [[객사(드라마)]]의 객사도 이 객사이다. === 현존하는 객사건물 ===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었지만, 객사만큼은 현재까지 살아남은 비율이 많은 편이다. * 조선전기[* 전기 객사는 정청과 좌우의 익실 건물이 분리되어 있다.] * 전주 풍패지관 / [[전주 객사]] (1473년 이전) - 보물 제 583호 * 고령 가야관 / 고령객사 (1493)[* 고령객사는 1930년대에 사라졌다.] * 경주 동경관 / 경주객사 (16세기 말)[* 중앙부와 우익헌 건물이 헐리고 좌익헌만 남아 원래 위치에서 이전되었다. 때문에 건물의 형태가 한쪽은 팔작지붕인데 한쪽은 맞배지붕인 특이한 형태이다.] * 조선후기[* 후기 객사는 정청과 좌우의 익실이 합쳐져 있다.] * 통영 [[세병관]] / 통영객사 * 여수 [[진남관]] / 여수객사 * 나주 금성관 / 나주객사 * 성천 동명관 / 성천객사 * 평택 팽성읍객사 * 순창객사[* 지금은 옥천지관(玉川之館)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 --다대포객사--[* 1972년에 지금의 다대초등학교 부지에 있던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고 다대포 객사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등록을 했다. 최근인 2020년에 와서야 이 건물이 다대포객사가 아니라 다대포 관아의 동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다대진 객사는 1904년 다대포사립실용학교 개설 전인 1900년에 이미 철거된 상태였다고 한다.[[https://imnews.imbc.com/news/2020/culture/article/5861351_32654.html|#]] 현재는 "다대진 동헌"으로 등록.] * --흥덕객사--[* 고창군 흥덕면에 소재한 건물로 이곳 역시 1993년 해체복원 과정에서 "순조 7년(1807년)에 이건된 동헌"이라는 상량문이 나오면서 객사가 아니라 동헌 건물임이 확인됐다.] 그외 객사에 딸린 누(樓)로는 밀양객사의 영남루와 제천객사의 한벽루, 성천객사의 강선루, 안변객사의 가학루가 있다. === [[전주 객사길]] === [[전주시]] 객사가 유명한 이유는 [[전주 객사길]]이 유흥가이자 구 도심, 시내이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의 [[충장로(광주)|충장로]]와 비슷한 분위기와 포지션의 시내. 옷가게와 [[NC백화점#s-2.2|NC백화점]] , 맛집, 레스토랑들이 입점해 있다. 전주에서 '시내 가자' 라는 뜻은 객사에 가자는 뜻.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객지에서 죽음 (客死)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두한은 쓰러졌다.gif|width=100%]]}}}|| || [[1972년 11월 21일|'''이 분야의 전설''']][* 야인시대 한정으로, 실제 김두한은 자택에서 숨졌다.] || '''객사'''([[客]][[死]])는 [[집]]이나 [[병원]], [[양로원]]처럼 [[죽음]]을 염두에 둔 장소가 아닌[* 과거 아주 보수적인 집에서는 병원에서 죽는 것도 좋지 않게 생각했으나 현재는 오히려 집에서 죽으면 일단은 변사 사건으로 되어 유족들이 경찰 및 소방 당국에게 범죄 혐의 등을 의심받아(가족을 살해하는 사건도 빈번하기 때문에) 간단하게라도 조사를 받아야 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지기 때문에 집에서 지내다가도 임종 전에는 병원으로 다시 옮겨 병원에서 임종을 맞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아져 지금은 병원에서 죽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길거리 같은 외지나 감옥, 군부대 등 외부 장소에 나가있다가 병이나 사고 등으로 갑작스럽게 급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심혈관계 질환처럼 건강 상태와 악화 상태의 격차가 심한 병증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 과거 농경사회에선 [[역마살]]이란 말마따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불행히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죽기까지 한다는거니 객사는 죽음 가운데서도 [[자살]]과 더불어 매우 불행한 죽음으로 간주되었다. 객사할 팔자란 말도 있듯 단어 자체가 약간 불운, 저주의 의미도 있다.[* "나가 죽어라", "나가 뒈져라"란 표현 역시 이 객사 저주와 연관이 되는 욕설이다. 지금이야 사회가 바뀌어서 별로 심한 욕 같이는 안 들리겠지만.] 미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친지 얼굴도 못 본채 죽기 때문에 미련이 남아 죽어서도 악령이 되기 쉽다고 한다. 다만 객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외지에서 죽는 것도 억울한데 악령 드립까지 치니 상당히 불쾌할듯. [[타살]]된 경우는 객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애초에 타살이라는게 외지에서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데다 방식도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행한 죽음이란 점에선 도긴개긴이긴 하다만. === 사례 === * [[이백(시인)|이백]]: 방랑 생활 도중 이양빙의 집에서 사망했다. * [[두보]]: 방랑 생활 도중 동정호를 지나던 배 안에서 병사했다. * [[김삿갓]]: 방랑 생활 도중 지인의 집에서 사망했다. * [[이색(고려)|이색]]: 이천의 어느 나루터에서 배를 타려다 숨을 거두었다. * [[허엽]]: 집에 돌아오다가 경상도 상주 객관에서 숨을 거두었다. * [[톨스토이]]: 열차를 타러 간 역에서 쓰러져 역장실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 [[유진 오닐]]: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었다. * [[다케다 소가쿠]]: 평생을 떠돌다 객사했다. * [[크리스 맥캔들리스]]: 촉망받던 우등생이었다가 야생에서의 삶을 동경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비참하게 객사했다. * [[신익희]]: 열차 안에서 죽었다. * [[김일성]]: 남북정상회담 숙소로 쓰일 묘향산 특각을 둘러보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 [[김정일]]: 열차 안에서 죽었다. * [[진시황]]: 전국 순행 도중 병사했다. * [[아베 신조]]: [[아베 신조 피살 사건|길거리 유세 도중 총격에 피살되었다.]] * [[이율곡]]: 대사동에서 과로로 병사했다. * [[이행]]: 유배지에서 병사했다. * [[살류트 1호|소유즈 11호 비행사들]]: 재진입 도중 밸브가 열려 우주에서 죽었다. * [[심정]]: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 [[유재하]]: 자신의 가수 데뷔앨범을 내고 얼마 안 지나 동창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차 안에서 교통사고로 객사했다. * [[의안대군(이방석)|의안대군]]: 자신의 동복형 [[무안대군]]과 함께 귀양길에서 살해되었다. * [[무안대군]]: 자신의 동생 [[의안대군(이방석)|의안대군]]과 함께 귀양길에서 살해되었다. * [[서세원]]: [[캄보디아]]의 의료센터에서 링거 주사를 맞다가 쇼크사했다. === 객사의 유형 === * [[동사]] * [[사고사]] * [[병사]] [[분류:동음이의어]][[분류:한국의 전통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