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儉]]'''}}} || {{{+5 '''[[而]]'''}}} || {{{+5 '''[[不]]'''}}} || {{{+5 '''[[陋]]'''}}} || {{{+5 '''[[華]]'''}}} || {{{+5 '''[[而]]'''}}} || {{{+5 '''[[不]]'''}}} || {{{+5 '''[[侈]]'''}}} || || 검소할 검 || 말이을 이 || 아닐 불 || 더러울 루 || 빛날 화 || 말이을 이 || 아닐 불 || 사치할 치 || == 개요 ==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조선경국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로, [[백제]]와 [[조선]]의 미(美)를 상징하는 말. 한자 그대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華而不侈)는 의미를 갖고있다. == 상세 == [[고려]] 중기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온조왕]]의 궁궐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이 있다. > [[기원전 4년|15년]] 봄 정월에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 十五年, 春正月, 作新宫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제1 시조 온조왕편 [[백제]]를 세운 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를 옮기며[* 이때 온조가 옮긴 도성이 어디인지에 대한 의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대체로 [[하북위례성]]에서 [[하남위례성]]으로 옮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며, 온조왕이 아닌 [[책계왕]], [[비류왕]], [[초고왕]] 등의 기록이 온조왕 때로 소급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새로 성과 궁궐을 쌓을 때 나온 기사로, 백제 건축에 대한 평을 하고 있으나 삼국사기 이전의 출전은 알 수 없다. [[조선경국전]]에서 [[정도전]]은 삼국사기의 위 기사를 인용하며 궁궐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잃는다. 너무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일 수 없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미(美)이다. 검소한 것은 덕과 같고, 사치스러운 것은 악(惡) 중에서도 큰 것이다. 사치스러운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다. >宮苑之制, 侈則必至勞民傷財. 陋則無以示尊嚴於朝廷也. '''儉而不至於陋, 麗而不至於侈''', 斯爲美矣. 然儉 德之共也, 侈 惡之大也. 與其侈也 寧儉. >---- >『[[조선경국전]]』 6. 공전 中 궁원, [[정도전]] == 둘러보기 == [[분류:유교]][[분류:한자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