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폴레옹 전쟁/군인]][[분류:1755년 출생]][[분류:1813년 사망]][[분류:하노버 군 출신 인물]]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름을 딴 제1차 세계대전의 군함, rd1=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 other2=제2차 세계대전의 군함, rd2=샤른호르스트급 전함)] [[파일:attachment/GerhardVScharnhorst.jpg|align=center]]'''게르하르트 요한 다비트 폰 샤른호르스트(Gerhard Johann David von Scharnhorst)''' [목차] == 개요 == Gerhard Johann David von Scharnhorst ([[1755년]] [[11월 12일]] ~ [[1813년]] [[6월 28일]])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군 제도를 [[개혁]]한 군사전략가다. 이름은 [[샤른호르스트]]라고도 하고 샤른호스트라고도 하는데, [[바이에른]] 지방 발음으로는 샤른호르스트가 맞고, 좀 더 일반적인 [[독일어]]로는 샤른호스트가 맞다. 원래 [[독일어/발음|독일어 발음]]에서 모음 뒤에 오는 r은 모음을 좀 더 길게 발음해 준다. [[한국어]]에서는 독일어의 r을 '르'로 음역하는 경향이 있어 샤른호르스트라는 표기도 유명하다. == 생애 == 부농 집안 출신으로, 프로이센군 하사관으로 복무한 부친[* [[위키백과]]에서는 부농이며 하사관 출신 아버지로 써있고, [[히브리대]] 전쟁사학과 마틴 판 크레펠트의 저서《전쟁 본능》에 따르면 아버지가 프로이센군 하사관 출신으로 확실한데 [[동독]] 시절 동독군의 빈약한 역사와 전통성을 만들기 위해 영웅 만들기로 빈농 혹은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둔갑시켰다고 한다. 대장장이 출신으로 여러 곳에서 써있는 건 이 영향인 듯 함.]의 영향으로 군대에 투신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1777년 [[하노버 선제후국]]의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 내 군소국가들과의 전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 유럽의 장교들은 타국 군대에서 복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경우가 좀 다르지만 그의 제자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러시아 제국]]에서 복무한 일이 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귀족 장교들이 러시아군 진영에서 회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1801년에 프로이센에서 대령 직위와 귀족 대우를 제안하며 스카우트하여 그때부터 프로이센군에서 복무하게 된다. 1806년 나폴레옹군과 싸우다 포로가 되었으나 풀려나, 1807년에 참모총장이 된다. 이때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육군개혁안을 제출하면서, 만약 이 개혁안을 받아들인다면 참모총장의 직위와 귀족 신분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였고 둘 다 받아들여졌다.[* 이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당시 참모 회의에서 본인의 목소리가 철저히 씹히고, 해당 전투는 결국 프로이센의 대참패로 끝났던 뼈아픈 경험 때문으로 추정된다.] '''[[장군참모|근대적인 참모본부 제도]]를 세계 최초로 창시하고''', 일반 시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고 국민군대의 창설에 힘쓴 인물로서 사실상 근대적인 [[징병제]]의 시초를 닦은 사람 중 한 명이며, 후일 [[헬무트 폰 몰트케|대(大) 몰트케]]에 의해 발전된 [[임무형 전술]]의 시초를 닦은 사람이다. [[전격전]]이 소설이 된 현재 시점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국방군]] 전술전략철학인 [[기동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이래저래 전쟁사에 빠질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인물. 앙투안 앙리 조미니와 함께 포스트 나폴레옹 세대의 전략전술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인물.《[[전쟁론]]》을 집필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에게는 사관학교 시절 스승이었고, 이후 참모본부 창설을 비롯한 주요 군 개혁 정책에서도 클라우제비츠를 등용했다. 당연히《[[전쟁론]]》저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실무상으로도 대단히 유능한 인물이었다. 1813년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의 참모장으로 러시아에서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군을 추격하던 중 반격당해 전사한다. == 함명 "샤른호르스트" ==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제국]]은 그의 이름을 따서 [[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을 건조하였으며[* 총 2척으로, 제1번함은 '샤른호르스트'이고, 제2번함은 '그나이제나우'다.] [[포클랜드 해전]]에서 격침된다. 이후 [[나치 독일]]의 해군 증강 계획에 따라 제1차 세계 대전기 샤른호르스트 장갑순양함의 함명을 계승하여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이 건조된다.[* 이쪽도 똑같이 전함이 총 2척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전함들의 이름도 모두 똑같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제1번함 [[샤른호르스트(전함)|샤른호르스트]]가 침몰되었고, 같은 해 [[바렌츠해 해전]]의 패배 소식을 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대형함 폐기 명령을 내려 당시 손상을 입었던 제2번함 [[그나이제나우]]가 폐기 처분되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샤른호르스트, version=89, paragrap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