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일본의 연호)]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0%, #BD0029 20%, #BD0029 80%, #AF001F)" '''{{{#dca600 겐로쿠[br]元禄}}}'''}}} || || '''일본어''' ||[ruby(元, ruby=げん)][ruby(禄, ruby=ろく)] || || '''개막''' ||[[1688년]] [[10월 23일]] || || '''종막''' ||[[1704년]] [[4월 16일]](17년) || || '''천황''' ||[[히가시야마 덴노|히가시야마 천황]] || ||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츠나요시]] || || '''이전''' ||[[조쿄(1684년)|조쿄]](貞享) || || '''이후''' ||[[호에이]](宝永)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연호]](元号) 중 하나. 조쿄(貞享) 이후 - 호에이(宝永) 이전으로 시기는 [[1688년]] ~ [[1704년]]. == 특징 == [[에도 시대]] 중기로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가 다스린 시기. '겐로쿠 호황(1688~1707)'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가 잘 돌아가던 '''에도 시대의 [[리즈 시절]]'''이었다. 흔히 괴짜 쇼군 취급받아온 [[도쿠가와 츠나요시|츠나요시]]가 에도 시대의 리즈 시절을 다스렸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 때문에 [[현대]] 들어선 쇼군 츠나요시가 지나친 동물애호가긴 했으나, 통치술이 뒤떨어지진 않아서 겐로쿠 시대를 만든거 아니냐는 재평가도 나오고 있다. 막번(幕藩, 막부+번) 체제가 확립된 시기로서,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 이래의 무단주의가 후퇴하고 [[문치주의]]의 [[유교]], [[주자학]]의 정치이념에 기초를 둔 교화주의적인 [[정치]]가 전개되었다. 그 배경에는 [[농촌]]의 번영이 있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농촌의 상품생산과 결부된 신흥도시 상업자본이 도매상·중개상 등을 성장하게 하였으며, 이들 신흥 [[쵸닌]](町人)계층의 사회적 성장으로 쵸닌 문화가 개화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쇼군의 [[권력]]이 현저하게 강화되었고, [[학문]]·[[문화]]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풍이 조성되어 크게 발달하였다. 대외적으로도 국교는 맺지 않았지만 [[청나라]], [[네덜란드]] 상인들과는 [[나가사키]]를 통해 교역하고, [[조선]]과는 국교 정상화로 [[통신사]]를 환대하던 시기라 큰 문제가 없던 시절. 다만 내부적으론 [[겐로쿠 대지진]] 같은 재해 사고가 있던 시기긴 했다. == 기타 == 일본에서 [[음식]]의 [[맛]]을 추구하고 하루 두 끼에서 하루 세 끼를 먹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 쯤부터였다는 썰이 있다. 이 시대 [[에도]]([[도쿄도|도쿄]]) [[인구]]의 반 이상이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믿거나말거나. 만화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에선 '쇼와 겐로쿠'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 이후 [[쇼와 시대]]의 [[일본]]의 경제 성장기를 겐로쿠 시대에 비견해 한 말이다. 쉽게 말해 호황기를 뜻하는 명사처럼 겐로쿠란 말이 쓰인다는 것. 이 [[시대]]를 주제로 한 [[하츠네 미쿠]]의 [[노래]]인 [[오오에도 줄리아 나이트]]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3yyYYLyVzw|영상]]. 주요 역사적 [[사건]]으로는 [[추신구라]]로 알려진 [[겐로쿠 아코사건]]이 있다. [각주] [[분류:일본의 연호]][[분류:에도 시대]][[분류:전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