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洋]][[社]]''' (げんようしゃ) [[파일:external/npodga.asia/e4997dc151d97d17a98c32a52b464742.jpg]] [목차] == 개요 == [[일본]] [[우익]]의 원류([[原]][[流]])라고 평가받는 결사단체. [[1881년]] [[메이지 유신]]에 의해 몰락한 [[사무라이|무사계급]] 출신들을 규합해 조직했다. 처음에는 [[국회]] 개설운동에 참가하는 등 [[민족주의]]·[[민권 운동]]을 내걸었으나, 차츰 [[도야마 미쓰루]]를 중심으로 [[아시아주의]]를 표방하는 [[국수주의]] 단체로 변모해 갔다. == 상세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에는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며 [[일본군|군]]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하부조직으로는 [[이용구]]와 함께 한일합방운동을 전개한 [[흑룡회]]([[黑]][[龍]][[會]])가 있다.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일제 정치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패전 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위험단체로 판단하고 강제해산시켰다. [[1895년]] [[10월 8일]] 이 단체 소속의 토우 카츠아키라는 [[낭인]]이 [[경복궁]]에 침입,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저질렀다. 그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48명의 낭인 중의 한명으로 명성황후를 2번째로 베어 마지막 숨을 끊었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일본 공사였던 [[미우라 고로]]는 겐요사 회원 출신으로 [[명성황후]] 시해를 직접 계획한 인물이며, [[일본 정부]]가 직접 시해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사조직인 겐요사의 낭인 3인을 직접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48명은 일본 사법당국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2년간의 복역 후 전원 석방됐다. 겐요사는 [[러일전쟁]] 때는 만주의군을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하는 등 [[정치]]·[[전쟁]]·[[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분류:일본 제국]][[분류:일본 내셔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