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보물)] [[파일: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1.jpg]] [목차] == 개요 == 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삼국시대]] 6세기 말~7세기 초에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남산(경주)|남산]]에서 만들어진 [[신라]]의 석조 마애여래좌상. 현재 경북 경주시 인왕동 산56번지에 있고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 [youtube(ao1C6orQqno)] || 불감 높이 3 m, 불신 높이 1.42 m. 흔히 '경주 할매 부처', '아지매 부처'라고 친근하게 많이 부른다. 6~7세기 경에 [[경주시]] 남산 북쪽 기슭에 감실(龕室)을 파고 만든 [[신라]]의 석조불상으로, 불감은 높이 약 3 m, 너비 3.8 m 바위 면에 깊이 1 m, 높이 1.42 m 규모로 단면이 [[삼각형]]에 가깝다. [[한반도]]에서 감실을 파고 석조를 고부조로 새긴 최초의 [[불상]]이다. [[신라]]에는 산을 경배하고 신앙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삼국시대]] 국도 경주를 중심으로 했던 삼산사상(三山思想)이나, [[삼국통일]] 이후 국력의 팽창과 함께 더욱 확대되었던 오악사상(五嶽思想)은 신라인들의 정신적 구심체였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문화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산(경주)|남산]]은 삼산(三山)과 오악(五嶽) 못지않게 신성시되었던 장소로, 이 불상은 남산에 만들어진 수많은 신라시대의 부처상 중 매우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초기형이며, 불상의 제작연대는 대략 6세기 말로 추정한다.[[https://ko.wikipedia.org/wiki/신라의_조각|한국어 위키백과 : 신라의 조각]] 이 석불좌상은 높이 3m, 폭 4m 정도 되는 바위에 감실을 파고 그 안에 고부조로 새긴 것인데, 감실은 입구가 아치형으로 되었고 석굴의 형태를 취했다. [[단석산]]의 [[석굴사원]], [[제2석굴암]]이라 부르는 군위 삼존불과 함께 신라시대 석굴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지금은 굴만 남았지만 주변 상황이나 가구 흔적 등으로 미루어 [[신라]]시대 당시에는 아름답게 만들어진 목조 전실이 있었던 듯하다. [[파일: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2.jpg]]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귀까지 덮어쓴 것 같은 모습이고 또한 작은 육계가 솟아 있는데 마치 [[아주머니]]들이 머리를 틀어 올린 것 같은 모습이며 약간 숙인 둥근 얼굴과 살짝 부은 듯한 눈, 깊게 파인 입가의 미소 등이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 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있다.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고 두 손은 옷소매 속에 들어가 있다. [[광배]]는 없으며 목에 삼도도 표현되지 않았다. [[파일: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3.jpg]]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5099|사진 출처: 법보신문 - 남산감실상과 낭산마애삼존상]] '고대한국의 여신신앙과 현존여신상에 대해(古代韓の女神信仰と現存女神像について)' 논문에 따르면 이 불상은 일종의 여신상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여신상인 교토 마쯔오타이샤(松尾大社)의 목조여신좌상과 완전히 똑같은 도상을 가지고 있으며,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과거 [[신라]]에서 믿었던 삼산신은 호국신인 동시에 모두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삼산신 뿐 아니라 다른 산악신들도 전부 여신이었는데, [[삼국유사]] [[선도성모]](仙挑聖母)조를 보면 소사(小祀)의 산신이 “신모(神母)가 이 산에 오래 살고 계시며 나라를 진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서악 산신인 신모 또한 호국여신이었음을 알 수 있고, 이 밖에도 치술령신인 치술신모, 영축산신인 [[변재천]]녀, [[지리산]]신인 성모천왕(로고할멈), [[가야산]]신인 [[정견모주]] 등이 모두 여신이었다. 이에 따라 초창기 신라의 성스러운 산 중에 하나인 남산에 상을 처음 조성할 때 남성불보다 먼저 여신상을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왕즉불 사상에 의거해서 실제 [[선덕여왕]]의 얼굴이 본존불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http://www.kjdaily.com/print.php?aid=1495100618408574162|#]]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여신상인 위의 마쯔오타이샤의 여신상은 9세기 경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그보다 약 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이 신라 여신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 불상 중에서 바위를 깎아 불감을 만들고 정벽을 마애 기법으로 처리하여 불상을 봉안한 유일한 예이며,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6817&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0483&cid=40942&categoryId=37713|두산백과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https://ko.wikipedia.org/wiki/경주_남산_불곡_마애여래좌상|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4851&cid=42840&categoryId=42846|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부처골 감실석불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4917&cid=42840&categoryId=42846|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15223&cid=50392&categoryId=50392|대한민국 여행사전 : 경주 남산 불곡석불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5458&cid=46705&categoryId=46705|미술백과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29819&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17530&cid=63540&categoryId=63560|이미지 라이브러리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보물 제198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1980000,37&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신라의 공예]][[분류:경상북도의 불상]][[분류:마애불]][[분류:좌불상]][[분류:석굴사원]][[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