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성곽 출토 신라 해시계3.jpg]]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이던 1930년, [[경상북도]] [[경주시]]의 [[서라벌]] [[경주성]]터에서 출토된 6세기~7세기 경 [[신라]]시대의 [[화강암]]판 [[해시계]]. 현재 [[한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시계]] 유물로, 원본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 내용 == [[파일:경주 성곽 출토 신라 해시계1.jpg]] 복원 모습. [[http://blog.naver.com/awaterway/221490275060|사진 출처]] [[파일:경주 성곽 출토 신라 해시계2.jpg]] 1930년에 경주시 옛 [[서라벌]] [[경주성]]곽터에서 발굴된 6~7세기 해시계로, 화강암제 원형판 위에 선을 그어 시각 표시를 하였다. 유물의 반경은 약 33.4 cm, 최대 두께는 약 16.8 cm인데 현재는 자시(子時: 23~익일 01시)에서 묘시(卯時: 05~07시)까지 부분이 남았다.[[http://blog.daum.net/kinhj4801/15960804|신라에도 원방형의 해시계가 있었다]] 이 해시계는 원을 24등분하여 24방향에 24자가 새겨진 시반(時盤)과 그 주위에 8괘를 기호로 새겨 8방위를 나타내었다. 중심에 [[그림자]]가 나타날 막대기(시표)를 세웠고 밑면에 선을 그어 24등분(시반)하여 놓았으므로 햇빛 받는 면을 수평으로 놓지 않고 적도(赤道)에 평행하게 설치하였다. 시반면에 수직으로 세워진 시표는 [[북극]]을 향했다. 이와 비슷한 해시계는 훗날 [[고려]]를 통해 [[조선]]시대로 계승되었으리라 추정하지만, 현재 고려시대 해시계와 물시계 등은 문헌기록에 일절 없거니와 현존하는 유물도 없다. 인터넷 상에서는 [[https://kisslog.tistory.com/302|고려시대의 해시계]]라며 떠도는 유물들이 한두 개 정도 있으나, 실제로는 조선 세종 때 제작한 것을 현대에 복원한 물품들이다. [[http://blog.naver.com/fpcp2010/110148786875|#]]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12646&cid=60236&categoryId=60236|네이버 지식백과: 시간측정기]] 연구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해시계]]보다는 향시계(香時計)를 주로 사용했다고 추정한다. [[참나무]]에서 나는 [[버섯]]을 잿물에 삶은 뒤 가루를 내어 돌 따위에 글자 모양으로 파놓은 홈에 채워 놓은 후 여기에 불을 붙여 그 타들어가는 정도에 따라 시각을 판별했다. [[햇빛]]이 없는 밤에도 사용할 수 있었고 고즈넉한 운치를 자극하는 1회용 향을 사용하는 특성상 당시의 고려 [[귀족]]문화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신분 구별 없이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해시계와는 달리 향시계는 먹고 살기 힘든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다, 1회성인 특성상 현대까지 유물이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파일:경주 성곽 출토 신라 해시계4.jpg]] 이후 [[조선]]시대에는 [[세종(조선)|세종]] 시기에 앙부일구,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규표 등의 해시계들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역시 세종대의 원본 유물들은 현존하지 않으며 현재 내려오는 것들은 조선 후기인 17, 18세기에 이르러 복원된 것들이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2628|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해시계(─時計)]] 따라서 이 신라 해시계는 기존 [[한국]]에 현존하던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해시계 유물들보다 1천 년 더 이전부터 이미 [[한민족]]이 고도의 천문학과 시간측정 기술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 == 외부 링크 == * [[https://www.scienceall.com/신라해시계/|사이언스올 : 신라 해시계]] * [[http://anastro.kisti.re.kr/obs_instrument/time_eqiu/sundial/sundial_movie/sundial_gif.htm|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신라 해시계]] [[분류:신라의 공예]][[분류:시계]][[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