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구려의 왕태자]] [[분류: 고구려의 인물]] [[분류:조공·책봉 사절]] [목차] == [[고구려]]의 인물 == === [[모본왕]]의 태자 === [include(틀:역대 고구려 태자)] [include(틀:고구려의 왕자)] [include(틀:고구려 왕실)] 高翊 제5대 [[모본왕]]의 태자. 생몰년도 미상. 모본왕 원년인 48년 10월에 '왕자 익을 태자로 세웠다'라는 기록이 직접적인 언급의 전부. 모본왕의 가족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해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부왕인 모본왕이 암살된 후 고익의 처분은 삼국사기 태조대왕조에 '모본왕이 돌아가셨을 때 태자(고익)가 못나고 어리석어 나라를 맡기가 부족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궁(태조대왕)을 환영하며 모본왕에 이어 임금으로 세웠다.'라고 능력 부족으로 태조대왕에게 왕위를 뺏긴 것으로 나온다. === [[장수왕]] 시기의 관료 === 高翼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관료. 관직은 장사(長史). [[송서]]에 따르면 [[413년]] [[동진]]으로 파견되어 표(表)를 올리고 붉은 털과 흰 털이 섞인 자맥마를 바쳤다고 한다. [[안제(동진)]] 사마덕종에게 장수왕을 고구려왕낙안군공(高句麗王樂安郡公)에 봉하는 칙서를 받아 고구려로 돌아갔다. 413년은 [[광개토대왕]]이 사망하고 [[장수왕]]이 즉위했으니 고익은 광개토대왕의 사망과 장수왕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 == [[북위]] 시기의 정치가 == ? - 530년 효장제 말에 갈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발해태수에 임명되었다. 반란이 확대되자 부민들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와 제수에서 공간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