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77년 범죄]][[분류:제4공화국/사건사고]][[분류:절도사건]]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1977년]] [[1월 18일]] [[고속버스 서울경부-부산|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금호고속|광주고속]] [[고속버스]] 화물칸에 실은 송금함에 들어 있던 광주고속 부산영업소의 수입금을 [[도난]]당한 사건. == 사건 발생 == 1월 18일, ([[직할시|정부직할]])[* 사건 당시에는 [[경상남도]]에서 독립 분할된 정부직할 부산시였지만 공공연히 [[직할시]]로 불리기도 했다. 1981년 정식 [[직할시]]로 승격되었다.][[부산광역시|부산시]] [[동구(부산광역시)|동구]] [[범일동]] 소재 [[부산종합버스터미널|부산고속버스터미널]][* 현 [[남포동(부산)|남포동]] 일대인 [[충무동(부산)|충무동]]에 최초로 터미널이 개설되었지만 교통정체 등의 이유로 당시 공장지대이자 나름 외곽 지역이었던 범일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범일동 일대도 개발되면서 교통난이 심각해지자 [[서울특별시|서울]]처럼 터미널 분산을 추진하였다. 1980년 경 고속버스 부문은 동래 쪽으로 옮겨 부산고속터미널이 되었고 시외버스 부문은 두 군데로 쪼개어 동부권 노선은 현재의 [[명륜역]] 일대의 부산동부시외터미널, 서부권 노선은 [[사상역]] 일대의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범일동에서 옮겨간 곳도 딱히 외곽 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부 교통난을 유발하였다. 애초에 [[동래구|동래]] [[동래온천|일대]]는 부산의 대표적인 [[부도심]]이었고 서부터미널 이전지 역시 터미널이 이전하기 전에도 나름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나마 서부터미널은 고속도로 접근성이 워낙 좋아 살아남았지만 고속터미널과 동부시외터미널은 여러 모로 여건이 최악이라 결국 2000년대 초반 [[청룡노포동|노포동]]으로 통합,이전되었다.] 오전 10시 50분 서울로 출발하는 전남 5바 1689호 [[메르세데스-벤츠 O303|고속버스]] 화물칸에 광주고속 부산영업소 직원이 여느 때처럼 서울 본사로 보낼 전날 수입금 2백 22만 4천원[* 2023년 7월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천 1백 80만원 정도다.]이 든 철제 송금함을 실었고 버스는 약 6시간 후인 오후 4시 30분 경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8C%80%EB%AC%B8%EA%B3%A0%EC%86%8D%EB%B2%84%EC%8A%A4%ED%84%B0%EB%AF%B8%EB%84%90|동대문고속버스터미널]][* 이 무렵 서울의 고속버스 터미널은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 [[서울역]], [[을지로]], [[용산구|용산]] 등지에 각 버스 회사 별로 흩어져 있었다. 이후 [[경부고속도로|경부]], [[호남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열차와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도심지의 극심한 교통 정체가 유발되면서 터미널 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동대문터미널과 서울역터미널에 있었던 장거리 노선들은 당시 서울 외곽 지역이었던 [[반포동]]에 신축한 [[서울고속버스터미널|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통합했다. 서울역터미널에 있었던 의정부, 문산 등 단거리 수도권 서북부 노선들은 홍제동터미널로 1차 이전한 후 다시 불광동으로 이전해 서울서부터미널이 되었다. [[용산시외버스터미널|용산터미널]]은 [[서초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의 [[서울남부터미널]]이 되었다.][* 을지로 터미널 등은 먼저 도로 정체로 인해 그 당시 나름 외곽지였던 [[마장동]]으로 이전하여 [[동마장터미널]]이 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서울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마장동 역시 번화가로 확장되면서 결국 동마장터미널은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로 분산 배치되었다. 동마장터미널만 분리된 이유는 당시 1일 최대 이용객수가 3만명을 넘을 정도로 상당했고 노선망도 다양했는데 이미 강북 지역은 서울 팽창으로 인해 이 인원들을 모두 수용할 정도로 큰 단일부지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에 도착하여 광주고속 서울영업소에서 송금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현금 12만 4천원만 남아 있고 송금함의 [[자물쇠]]가 공구로 뜯겨진 흔적을 발견한 직원들은 부산영업소 측에 전화를 걸어 수입금이 얼마였는지 확인한 후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에 도난 사실을 신고하면서 [[수사(법률)|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해당 버스의 화물칸을 [[수색]]하여 [[담배]]꽁초와 타고 남은 [[성냥]]개피를 발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이 화물칸에 숨어들어 송금함을 뜯고 현금을 절취했으며 버스에 송금함을 실어 보낸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전직 [[운전 기사|운전기사]]나 직원이 범인일 것으로 추측하여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 범인 체포 == || [[파일:광주고속버스송금함절취1.jpg|width=100%]] || || 좌측부터 범인 이봉안, 우영숙 || || [[파일:광주고속버스송금함절취2.jpg|width=100%]] || || 범인 이봉안이 트렁크에 숨는 것을 재현하는 장면 || 결국 사건 발생 10일 만인 [[1월 28일]] [[부산동부경찰서]]는 전직 버스 운전기사 '''이봉안'''(당시 59세)[* 1918년생]과 그의 아내 '''우영숙'''(당시 39세)[* 1938년생. 최초 보도에는 '''구영숙'''으로 나왔지만 나중에 정정되었다.]을 [[특수절도]] 혐의로 체포하여 다음날인 1월 29일 [[구속(형사절차)|구속기소]] 하고 범행에 쓰인 가로 83cm, 세로 44cm, 높이 39cm의 [[알루미늄]] 제 대형 [[트렁크#s-3|트렁크]]와 훔친 현금 중 쓰고 남은 1백 67만원을 압수하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77013000239107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7-01-30&officeId=00023&pageNo=7&printNo=17175&publishType=00010|당시 사건 보도]] === 사건 경위 === 범인 이봉안은 1972년부터 [[금호고속|광주고속]]의 [[운전 기사|운전기사]]로 일했지만 회사 [[공금]]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1975년 [[해고]]당했고 아내인 우영숙은 [[대구광역시|대구]]와 [[진주시|진주]] 등지에서 약 10년 정도 [[여관]] 종업원으로 일했으며 1959년 부산과 서부 경남지역을 오가는 [[경전여객]]의 [[시외버스]] [[안내양]]으로 근무하다가 같은 회사의 운전사였던 이봉안과 눈이 맞아 [[혼전 동거|동거]] 생활에 들어가면서 두 아이를 낳았다. 광주고속에서 쫓겨난 후 부산의 월 6천원 짜리 [[사글세]] 방에 네 식구가 살면서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던 이봉안은 직장을 구하려고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크게 한탕해서 집이라도 장만해야겠다"'''며 범행을 결심했고 아내 우영숙과 공모하여 사건 전날인 1월 17일 [[범일동]] [[시장(경제)|시장]]에서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만 한 대형 [[알루미늄]] 트렁크를 4천원을 주고 사들여 터미널 근처의 [[여관|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안에서 뚜껑이 여닫히게 개조한 후 사건 당일인 1월 18일 아침 짐꾼을 불러 이봉안이 숨어 있는 트렁크를[* 이봉안은 키 165cm, 몸무게 60kg으로 당시 [[대한민국]] 남성으로서는 제법 건장한 체격이었기 때문에 아내 혼자서는 절대로 그 트렁크를 옮길 수 없었다.] 터미널까지 갖고 가서 고속버스 화물칸에 적재하고 우영숙은 그 버스에 탑승하였다. 버스가 [[부산TG|동래 톨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트렁크 밖으로 기어나온 이봉안은 성냥불을 켜서[*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만약 범인이 성냥 대신 [[손전등]]을 사용했다면 단서를 찾지 못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을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고 범인 이봉안도 화물칸에서 성냥을 사용하고 무심결에 담배를 피운 것이 꼬투리를 잡혔다며 후회했다고 한다.] 송금함을 찾았는데 그 송금함 자물쇠를 [[스크루드라이버|드라이버]]로 뜯어내 안에 든 현금 2백 22만 4천원 중 12만 4천원만 남기고[* 현금을 전부 가져가면 서울영업소에서 바로 수상하게 여길 것으로 생각하여 일부러 돈을 조금 남겨 부산영업소의 수입금이 그것뿐인 것으로 위장하려는 의도였다.] 2백 10만원을 챙겨서 다시 트렁크 안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이후 버스가 동대문 터미널에 도착하자 우영숙은 트렁크를 받아서 짐꾼으로 하여금 [[관악구]] [[봉천동]] 소재 [[여관|여인숙]]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이봉안이 훔친 현금을 정리한 뒤 트렁크를 버린 채 그날 [[야간열차]]로 부산에 돌아와 [[전세|전세방]]을 얻어 세간도구를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우영숙은 [[반지]]와 [[손목시계]],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을 샀다고 한다. == 결과 == 이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방검찰청|부산지검]]은 범인 이봉안과 우영숙에게 [[특수절도]]죄를 적용하여 각각 징역 5년을 [[구형#s-1|구형]]하였고 최종 재판에서 몇년형이 [[선고]]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아래에 기재된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 300회 특집에서는 남편은 [[징역]] 2년, 아내는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 극화 == ||
[[파일:수사반장300회.jpg|width=100%]] || || 범행을 위해 트렁크를 개조하려는 이봉식([[강계식]])과 아내 구혜숙([[김혜자]]) ||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문화방송|MBC]]의 수사 드라마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에서 '''300회 특집'''을 이 사건을 소재로 제작하여 사건이 벌어진 지 약 3개월 후인 1977년 5월 1일 '''[[남편]]은 [[화물]](貨物) [[아내]]는 화주(貨主)'''라는 타이틀의 90분짜리 와이드 드라마로 방송하였다. 범인 '''이봉식'''은 [[강계식]]이, 그의 아내이자 공범 '''구혜숙'''은 [[김혜자]]가 맡았고[* 김혜자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악역을 맡아 흥분된다'''며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 외 주요 출연진은 아래와 같다. * [[이수나]] : 부산 대성여인숙 주인[* 이봉식 부부가 돈을 아낀답시고 여인숙 방에서 소형 [[석유풍로|곤로]]로 밥을 해먹는 것을 보고 "방에서 [[냄새|냄시]] 피우고 불낼라꼬 작정했능교?!" 라며 길길이 화를 냈다. 그래서 이봉식 부부는 태광여인숙으로 방을 옮겨야 했다.] * [[김용림]] : 부산 태광여인숙 주인 * [[김영옥(배우)|김영옥]] : 부산 태광여인숙 주인 딸[* [[아이러니|우스운 사실]] 하나. 김영옥은 어머니 역할 김용림보다 2살 [[언니]]다(...).] * [[국정환]] : 광주고속 서울영업소 영업이사 * [[변희봉]] : 광주고속 서울영업소 [[과장(직위)|과장]] * 박경현, [[임채무]], 이운우 : 광주고속 서울영업소 직원 * [[신충식]] : 광주고속 부산영업소 소장 * [[강인덕]] : 광주고속 부산영업소 [[대리(직위)|대리]] * 유판웅 : 광주고속 부산영업소 직원 * 김유선 : 광주고속 버스 [[안내양]] * [[김기일]] : 트렁크를 부산터미널로 옮겨준 짐꾼 * [[이숙(배우)|이숙]] : 안양 불고기집 종업원 * [[박상조]] : [[마도로스]], 김주임([[김상순]])의 친구 * [[김영애]] : 조형사([[조경환]])의 [[썸|썸녀]] * [[박은수(배우)|박은수]] : 서형사([[김호정(남배우)|김호정]])의 정보원 * [[박규채]] : [[보육원|고아원]] 원장, 구혜숙의 [[오빠]][* 여동생의 두 아들을 거둬주고 있었으며 수사 차 찾아온 박반장([[최불암]])에게 대놓고 "나는 그 사람이 싫다"고 할 정도로 평소 이봉식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다.] * 박종범,[* [[파일:박종범.jpg]][br] 1970년대 [[손창민]], [[강수연]], [[윤유선]], [[황치훈]] 등과 더불어 인기를 끌던 [[아역 배우|아역배우]]. 성인이 된 이후의 행적은 불명이다.] 차훈 : 이봉식 부부의 아들 * [[추송웅]] : [[택시 기사]] * [[이영후]] : 광주고속 대구영업소 소장 * [[홍성민(배우)|홍성민]] : 이봉식의 지인[* [[이영후]]가 연기한 광주고속 대구영업소장의 [[조카]]이며 광주고속에서 해고된 후 [[택시]] 사업을 하겠다는 이봉식에게 3백만원을 빌려줬다가 떼이면서 큰 손해를 봤다.] * [[박원숙]] : 진해 만경여관 종업원 * [[나문희]] : 진해 임다방 주인 * [[김애경]] : 진해 임다방 종업원 * [[박종관(배우)|박종관]] : [[반송동(부산)|반송동]][* 이봉식 부부가 범행 후 이사간 동네.] [[반장#s-2|반장]] * [[김영배(성우)|김영배]] : 해설 ||
[[파일:수사반장300회2.jpg|width=100%]] || ||[[파일:수사반장300회3.jpg|width=100%]] ||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이봉식 부부가 범행 후 [[안양시|안양]]으로 도주하여 어느 식당에서 [[불고기]]와 [[맥주]]를 [[먹방|실컷 맛있게 먹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