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67f 0%, #005ba6 20%, #005ba6 80%, #00467f)"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ffc224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배우자}}}]][br]{{{+1 권양숙}}}[br]權良淑 | Kwon Yang-sook'''}}}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www.pa.go.kr/L_GYS_02.jpg|width=100%]]}}} || ||<|2> '''출생''' ||[[1948년]] [[2월 2일]][* 포털 인물정보에는 1947년생으로 나온다.] ([age(1948-02-02)]세) || ||[[경상남도]] [[창원시|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931|#]]] || || '''사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35 (본산리) || || '''현직'''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 이사장 || ||<|2> '''활동기간'''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안동 권씨]] (安東 權氏)[* 복야공파 응경(應慶)계 36세.] || || '''부모''' ||아버지 [[권오석(1921)|권오석]], 어머니 박덕남 || || '''배우자''' ||[[노무현]] || || '''자녀''' ||아들 [[노건호]], 딸 노정연 || || '''학력''' ||진영대창국민학교[* 現 진영대창초등학교] {{{-2 (37회 / [[졸업]])}}}[br][[혜화여자중학교]] {{{-2 ([[졸업]])}}}[br][[계성여자고등학교|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 {{{-2 ([[중퇴]])}}} || || '''경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2대 명예회장[br]대한암협회 제2대 명예회장[br][[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제2대 명예회장[br][[방송통신대학교]] 명예후원회장[br][[국립극장]]후원회 명예고문[br][[예술의전당]]후원회 명예후원회장[br][[국립암센터]] 명예후원회장[br] || || '''종교''' ||[[불교]] {{{-2 ([[법명]]: 대덕화)}}}[* [[박정희]]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와 법명이 같다.] ||}}}}}}}}} || [목차] [clearfix] == 개요 == [[노무현]]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배우자]]이자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영부인]].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인 2009년, 봉하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재직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에도 [[봉하마을]]에 계속 거주하였으나 2018년 5월 1일, 사저가 개방되면서 진영읍 내에 새로운 자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단 [[봉하마을]]에 정치인이 방문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전의 사저에서 접견을 하고 있다. == 생애 == 1948년 2월 2일 [[경상남도]] [[창원시|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에서 [[빨치산]]이자 [[비전향 장기수]]였던 아버지 [[권오석(1921)|권오석]][*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했을 당시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이에 노무현은 그 유명한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내용의 연설로 강경하게 대응했고, 이것이 오히려 득이 되어 순조롭게 정치인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참고로 노무현은 장인어른의 빨치산 경력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덕남(朴德南, 1920. ~ 2017.2.24.)[* 박희진(朴熙進)의 딸이다.] 사이의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진영대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혜화여자중학교를 졸업, [[계성여자고등학교|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현 [[계성여자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 학력 문제로 정치적 반대파 및 우익 세력들로부터 온갖 비하와 음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저 당시에는 여성이 고등학교까지(중퇴이긴 하지만) 갔다는 것만 해도 지금의 대졸자 급의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권양숙이 재학하던 1960년대 초반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계성여자고등학교)는 부산 서구 학교 밀집지역에 소재한 중위권 사립학교에 속했다. 정치적 반대파와 우익 세력들이 계성여자고등학교를 훗날의 실추된 이미지를 가져와서 똥통 학교라고 비하하지만,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가 지금의 수준으로 몰락한 것은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해 부산의 고등학교 서열이 완전히 뒤엎어진 이후였다. 1974년 이전에는 명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학교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권양숙 결혼.jpg|width=100%]]}}} || || {{{#ffc224 '''권양숙과 노무현의 결혼식 사진'''}}} || 노무현과는 1973년 결혼했으며, 노무현의 [[사법시험]] 준비를 뒷바라지했다. 노무현은 권양숙의 도움을 받고 19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76년 [[사법연수원]] 시절 꽤 준수한 성적[* 여기서 '꽤 준수한'이라는 말은 노무현 자신이 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법연수원 성적 순서대로 판사가 뽑혀나가고 그 다음으로 검사가 뽑혀나간다. 그래도 당시에는 사법시험 선발 인원 자체가 100명 미만으로 극히 적었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 자체가 [[먼치킨(클리셰)|먼치킨]]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특히 노무현이 합격한 17회 사법시험 합격 인원은 60명으로 다른 해보다도 유난히 적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300명으로 늘어난 23회 사법시험 (연수원 13기) 이전에는, 사법시험 합격자는 과거 민주화운동 전과등 결격사유가 없는 한 거의 100%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었다. 노무현이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보기 위해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도 그 자신을 포함해서 [[부산직할시]] 내 전체 변호사가 3명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을 올린 덕에 1977년, 1978년 두 해에 걸쳐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할 수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권양숙 젊은시절.jpg|width=100%]]}}} || || {{{#ffc224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 노무현과의 결혼 이후 슬하에 아들 [[노건호]]와 딸 노정연 1남 1녀를 두었다. 1997년부터 2003년 2월 24일까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1가]] 현대하이츠빌라에서 거주했으며 이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대통령 배우자]] 신분으로 [[청와대]]에서 생활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마지막 노무현 부부 사진.jpg|width=100%]]}}} || || {{{#ffc224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br]권양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 2008년 2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함께 봉하마을로 귀향해 거주하며 전원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권양숙 본인에게서 비롯된 [[박연차 게이트]]에 남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연루되었고 당시 [[이명박]]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 주도 하에 검찰 조사를 받던 남편 노무현이 조사 도중 끝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권양숙은 병원에서 두부외상으로 사망한 남편 노무현의 주검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권양숙 김대중.jpg|width=100%]]}}} || || {{{#ffc224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의[br]권양숙과 김대중 전 대통령'''}}} ||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부인 [[이희호]]와 함께 휠체어를 끌고 자리에 참석한 말년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양숙의 손을 붙잡고 위로를 했다. 당시 권양숙 앞에서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들에게도 대단히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2009년]] [[9월 1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이 분리되면서, 봉하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재직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며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의 싱크탱크 역할도 겸하는 노무현재단과 달리 봉하재단은 순수히 봉하마을 시설관리와 농작물 사업 등 민간 차원의 사업에 집중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건희와 권양숙 사진.jpg|width=100%]]}}} || || {{{#ffc224 '''권양숙과 김건희'''}}} || 2022년,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취임 직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배우자가 된 [[김건희]]가 대선배 격인 권양숙을 예방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자신을 만나러 온 김건희와 90분 가까이 환담을 나눴고 함께 봉하마을에 자리한 노묘역(노무현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기도 했다. == 논란 == *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인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씨는 권양숙이 건넨 13억 원을 불법적인 환치기를 통해 송금했으며, 이에 대해 노정연 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권양숙은 입건 유예되었다. 노정연 씨는 13억 원은 어머니가 보내준 돈이라고 밝혔으며, 권양숙 이 13억 원의 출처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때 청와대를 방문한 지인들과 퇴임 이후 봉하마을 사저로 찾아 온 지인들이 준 돈을 모아서 보관해 오던 것”, "‘지인’에 대해서는 “인간적 정리상 구체적 신원을 밝힐 수 없다” 라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개된 재산 규모를 감안할 때 13억 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개한 전 재산의 1.4배나 되는 규모[* 2008년 2월 말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산규모는 [[노건호]](예금 5,400만 원), 손녀 노서은(2,700만 원)의 예금까지 다 더해도 9억 7,200만 원이었다.]이기 때문에 재임 중 지인에게 돈을 받았고, 그게 누구인지 공개할 수 없다는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금전을 받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도 인정한 사실이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575841|#]] == 여담 == * 영화 [[변호인(영화)|변호인]]에서는 장수경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이항나]]가 연기했다.[* 작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아닌 송우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듯이 권양숙은 장수경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2월]] 안검하수 증세로 쌍커풀 수술을 받았을 때 같이 수술을 받았다. [[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0502281800531/amp|#]] * 권양숙의 모친이자 [[노무현]]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장모인 박덕남이 2017년 2월 24일에 사망했다. 향년 96세.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최상위권이자 민주당계에서 작은 어른으로 대우받는 [[노무현]]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배우자지만, 남편과는 달리 이미지가 전혀 좋지 않은 편이다. 보수 진영에게는 영원한 정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며 부친 [[권오석]]의 [[빨치산]] 활동 논란과 부패 논란으로 인해 찍혀 있고, 민주당계 진영에게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남편인 노무현이 자살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여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에서는 10대~20대에게 인지도가 가장 높다.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노무현 비하 밈에 의한 것이라 좋은 이미지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역대 대통령 영향력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박정희]]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가 보수 진영에서 가졌던 이미지, [[육영수]] 사후 대통령 배우자 직무 수행을 한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올라선 점, [[김대중]]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배우자 [[이희호]][* 이희호는 이미 김대중과의 결혼 이전부터 여성계에서 꽤 지명도가 높았고, 대통령 배우자 치고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인물이었다. 오히려 김대중과의 결혼 및 내조로 인해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았으면 여성계의 더 큰 거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마지막까지 진보의 큰어른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과 비교하면, 권양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언론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처신하고 있다. 현재는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 [[진영읍]] 내의 다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고, 사저가 개방된 이후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예방할 때 얼굴을 비추는 것 말고는 공개적인 활동은 피하고 있다. * 갑론을박을 떠나 국정원에 의한 미행 피해자이다. [[원세훈(1951)|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이 건으로 관련하여 재판을 받고 있으며 대법원에서 국정원 직원에게 박 전 시장과 권양숙을 미행하게 한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1/03/235379/|#]]). * 이름 때문에 [[양수기]]라는 별명이 있다. 비슷한 경우로 [[김정숙]]의 별명은 [[정수기]]이다. * 도전 골든벨 300회, 독서골든벨에 나와서 문제를 직접 낸 적이 있었다. * [[불교]] 신자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노무현)] ---- [include(틀:무궁화대훈장)] [include(틀:노무현 가문)] [[분류: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분류:1948년 출생]][[분류:안동 권씨 복야공파]][[분류:마산합포구 출신 인물]][[분류:무궁화대훈장 수훈자]][[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