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29호}}}]]''' || ||<-2> {{{#fff {{{+1 '''금동보살입상'''}}}[br]{{{-1 金銅菩薩立像}}}}}}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fff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보살상 || || '''{{{#fff 수량/면적}}}''' || 1구 || || '''{{{#fff 지정연도}}}''' || 1968년 12월 19일 || || '''{{{#fff 제작시기}}}''' || [[통일신라]] || [[파일:금동보살입상(국보 제129호)3.jpg|width=430]] [목차] == 개요 == 金銅菩薩立像. 8세기 후반, [[통일신라]] 시기의 [[금동보살입상]]. 근대 이전 제작된 [[한국]]의 '소형 금동제 불상' 중 현존하는 최대 크기의 불상으로 유명하다. 금동보살입상은 1968년에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며,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 내용 == [[파일:금동보살입상(국보 제129호)1.jpg]] 불상 높이 54.5cm.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소유하여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 중인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으로, 근대 이전 [[한국]]에서 제작된 소형 금동불상 중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문화재로 유명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형 금동불상에 한해서 가장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크기는 93.5cm로 본 불상보다 2배 정도 더 크다.] [[http://www.artinf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아트인포 : [삼성가 보물창고-⑦] 이건희 소유 국보 제129호 '금동보살입상']]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보살상의 양식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 중인 삼성家의 유물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불상 또한 명확한 제작연대 및 제작 장소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저 일종의 [[도굴]]품으로 추정되며, 어떠한 지역의 한 폐사지(廢寺址)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전하고 있다. 일단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보에 따르면 민간 유물시장을 떠돌아다니다 해외로 유출될 뻔한 걸 당시 [[이병철]] 회장이 한국 문화재 보호를 위해 거금을 들여 사들였다고 주장하고 있다.[[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2/04/10/2012041000012.html|뉴데일리 : 이건희 회장이 박수 받아야 할 이유]] 아무래도 [[장물]] 매입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인지 최대한 자세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불상 [[머리]] 부분에 둥근 구멍 하나와 그 아래로 상하에 타원형의 긴 구멍이 각 1개씩 뚫려 있으며 [[못(도구)|못]] 또한 1개씩 남아있어 원래는 불신 뿐만 아니라 아래 쪽의 대좌(臺座) 및 머리에 씌웠던 보관(寶冠), [[광배]] 등이 모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떳떳치 못한 출토 과정에서 파손되었는지 왼손 또한 팔뚝에서부터 떨어져 나갔으며, 그 외에도 군데군데 조금씩 파손되어 있는 상태다. [[파일:금동보살입상(국보 제129호)2.jpg]] 원래는 전체적으로 [[도금]]이 되어 있었으나 오랜 세월로 인해 대부분이 벗겨져 현재는 [[구리]]를 바탕으로 한 적갈색을 드러내고 있다. 보관이 없기 때문에 보발만 우뚝 드러나 있으며, 넓은 얼굴의 가늘게 뜬 두눈과 코, 작은 입에 비하여 두 귀는 길고 귓부리가 가늘다. 목에는 [[신라]] 특유의 삼도, 즉 3줄의 각선이 보이며, 넓은 가슴에는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조백 1줄이 주름을 잡고 있는 것 이외에는 나체를 드러내고 있다. 천의는 몸 양쪽을 따라 흘러내렸는데, 한 가닥은 아래위에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으로 잡았으며, 다른 한가닥은 직각으로 꺾인 왼손에 걸쳐 있었으나 지금은 끝에서 부러져 버린 상태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 이 불상은 원래 총 3구의 삼존불 중, 본존의 양 옆에 세워놓는 2구의 협시불(脇侍佛)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형제]]격인 나머지 2구의 삼존불상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고, 오직 이 불상만이 외로이 남아 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삼존불을 조성할 때 중앙의 본존불은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만들고, 양 옆의 협시불은 그보다 작고 소박하게 만든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만약 중앙 본존불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이 국보 제129호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웠을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본 불상의 조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단 학계에서는 719년에 제작된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81호)이나 8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121호)의 보살상과 거의 유사한 양식을 하고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금동보살입상]]으로, 신라시대 금속공예술 및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에 현존하는 고중세 소형 금동불상 중 가장 큰 크기를 한 불상이라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높다. 이에 1968년 12월 19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더 큰 크기의 금동 불상 발견? == [[파일:금동보살입상(국보 제129호)4.jpg]]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8&aid=0004847976|사진 출처 : 이데일리 - "1000년전 장인과 만난듯...현존하는 최고의 중소형 보살상"]] || [youtube(RJvNtUgNOx4)] || || [youtube(wJ6lA8S3KuI)] || 지금까지 국보 제129호 '금동보살입상'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소형 금동 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크기의 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2015년 신라시대 절터로 알려진 선림원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보다 더 큰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9세기 경 신라 선림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은 국보 제129호보다 훨씬 화려하고 세련된 양식을 하고 있으며, 크기도 더 크고 제작 장소도 선림원으로 명확하며 무엇보다 금동보살이란 명칭답게 대부분의 [[황금]]이 온전히 남아있어 국보 제129호보다 문화재적 가치가 훨씬 더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을 처음 발견하고 보존처리한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21년 2월 8일, 이 불상을 공개한 후 바로 국가보물 이상의 문화재 지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보존 상태나 조형성 등이 워낙 빼어난 유물이라 여러 국립박물관에서 벌써 인수 관련 문의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발견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된 불상 크기의 경우,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은 현재 대좌가 온전히 남아있는 관계로 불상의 크기를 잴 때 대좌와 불신 높이를 모두 합친 반면 국보 제129호는 대좌 및 광배, 보관 등이 모두 소실된 상태라 단순 부처의 크기만을 비교하자면 국보 제129호가 더 크다. 만약 대좌 및 광배가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여전히 국보 제129호가 한국 최대 크기의 소형 금동 불상 타이틀을 지켰을 것이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0829&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보살입상]]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3954&cid=40942&categoryId=33380|두산백과 : 금동보살입상]] * [[https://ko.wikipedia.org/wiki/금동보살입상_(국보_제129호)|한국어 위키백과 : 금동보살입상 (국보 제129호)]] == 국보 제129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290000,11&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금동보살입상 (金銅菩薩立像)]] >높이가 54.5㎝인 금동보살입상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던 보살상의 양식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보살이 서 있던 대좌(臺座)와 머리에 쓰고 있던 관(冠)이 없으며, 왼손은 팔뚝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 >몸에 비하여 머리가 약간 큰 편이고,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눈 위쪽보다 눈 아래쪽이 유난히 길어 보여 어딘지 모르게 경직된 인상을 풍긴다. 넓은 가슴에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입은 천의(天衣)는 등으로 돌아 양 팔 위로 흘러 내렸는데, 오른손으로 그 가운데 한 가닥을 잡고 있다. 허리 부분에서 한번 접힌 치마는 무릎 위에 드리워지고 나머지는 길게 발목 위에까지 내려오고 있다. 치마의 주름은 U자형의 도드라진 선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 >통일신라시대의 불상들 가운데서 흔히 이런 양식의 보살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록 재료는 다르지만 성덕왕 18년(719)에 만들어진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이나 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제121호)과 비슷한 유형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고 몸의 형태도 유연한 편이지만 얼굴이나 신체의 표현에서 다소 경직된 느낌을 주는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서울특별시의 불상]][[분류:금동 불상]][[분류:입불상]][[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