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논산시 출신 인물]][[분류:1891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ffffff {{{+1 김말출}}}[br]金末出}}}'''}}} || ||<|2> '''출생''' ||[[1891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 || ||<|2>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봉백 의진에 소속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며 활동한 의병 독립운동가.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생애 == [[1891년]] [[충청남도]] [[논산시]]의 연산에서 태어났다. [[1909년]]에 이봉백(李鳳白)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순흥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제국]]이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고종(대한제국)|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 7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 군대 해산|군대를 해산시켰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김말출도 무장투쟁을 통해 일본의 [[제국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려고 [[1909년]] 3월경 이봉백 의진에 투신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총 2정을 휴대하고 의병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경북 순흥군 화천면 신흥리에서 모집하였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190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는다. 이에 김말출은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고 수감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