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김사량(金史良) [[평양]] 출신의 소설가. [[희곡]] 작가로 재일 한인 문학의 효시로 여겨지는 작가이다. 1939년 '빛 속에'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빛 속에'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고심하며 민족 해방에 대한 관심과 어두운 식민지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때는 종군기자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나갔다가 탈출, [[옌안]]의 조선의용군에 합류하였다. 이 때의 후기를 소설 <노마만리>에 남기기도 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시정부]] 요인들을 대놓고 '''[[장제스]]의 창녀들'''이라고 맹비난하는 글을 실기도 했다.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 본부 선발대로 귀국한 그는 북한에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펼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전선에 나섰다. [[북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1950년대 초반 연안파의 숙청과 함께 그 이름이 사라졌다가 1987년 복권된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그는 사회주의 건설기에 활약한 양심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 생애 == 1914년 3월 3일: 평양에서 출생. 1931년: [[고등보통학교|평양고등보통학교]] 퇴학[* 1947년 명예 졸업장 획득] 1933년: [[구제고등학교|사가고등학교]] 입학. 1939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 졸업[* 졸업논문 주제는 [[하인리히 하이네]]] 1941년: [[도쿄제국대학]] 대학원 독일어문학과 문학석사 졸업 1950년 10월: [[원주]] 부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북한의 작가]][[분류:도쿄대학 출신]][[분류:1914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월북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