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려의 대장군[br]{{{+1 김순웅}}}''' || || '''본관''' ||[[경주 김씨]](慶州 金氏) || || '''이름''' ||순웅(順雄)[* 족보에서]/신웅(信雄)[* 금석문에서] || || '''아버지''' ||삼한공신 삼중대광 김인윤[br](三韓功臣 三重大匡 金仁允) || || '''자녀''' ||아들 [[김인위]](金因渭) || || '''생몰년도''' ||? ~ ?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초기의 무신으로, [[경주 김씨]] 계림군파의 파시조이다. 금석문에는 김신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경주 김씨]] 족보에는 김순웅으로 나와 있다. == 생애 == 아버지는 삼한공신 삼중대광 김인윤이며, 김순웅은 [[호족(한국사)|호족]]/미래의 [[문벌귀족]] 가의 자제였다. 그는 좌우위[* 왕 및 외국 사절단 호위], 금오위[* [[개경]] 치안 담당], 천문위와 감문위[* 궁성 경비] 등 육위 장군[* 비슷한 관직에 있었다고 추정되는데, 고려의 관직 제도는 [[성종(고려)|성종]] 때 정비된다.]을 거친 뒤 안서홀성주([[황해도]] 병마사)까지 지냈다. 태자태보 좌복야라는 일종의 명예직 역시 맡았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경순왕]] 후예라고도 한다. 단순히 [[김알지]]의 후예라고도, 반대로 구체적으로 경순왕의 아들로 기록된 대안군 김은열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근현대에 발견된 묘지명(금석문)에는 김신웅(김순웅)의 조부인 대광 김례가 [[원성왕]]의 자식[* 두 인물이 시기상으로는 자식일 수 없으므로 단순히 조상-후손 관계였다고 보기도 한다.]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 후손 == 김순웅의 아들 김인위는 대표적인 고려시대 문벌귀족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1300년대에 계림군파 파시조인 김균 때 개경에서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후 1600년대 김성진이 한양에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금의 전북 임실 삼계면에 정착하였고, 이후 400여 년 넘게 여러 전란을 피하며 종족이 크게 번성하여 종가를 계속 이어왔다. 김성진의 아들인 김원중은 계림군파의 적장손으로 부친의 뜻에 따라 고향을 지키고, 둘째 김원립은 관직에 진출하여 그 후손들은 용인지역에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아울러 김균의 막내아들인 김계성의 후손들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크게 번성하였다. 이렇듯 김순웅의 후손들 중 가장 번창한 파가 계림군파인데, 계림군 김균은 김순웅의 12대손이다. 그런데 1980년대 계림군파 족보에 입보한 종원 일부가 이후 장군공파를 만들어 나갔고, 이후 태자파를 만들었는데 이들은 김순웅을 [[마의태자]]의 아들로 기재함으로써 다른 [[경주 김씨]] 분파들 및 일부 분적된 성씨들과 논란을 야기했다. 태자파의 족보가 계림군파의 족보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크게 두 군데인데, 하나는 김순웅의 아버지이고, 다른 하나는 계림군의 장남 김맹성의 후손이다. 태자파는 김순웅의 형이 김선웅(善雄)이며 아버지가 [[마의태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림군파 측은 해당 기록이 근거가 없는 출처불명의 기재라고 보고 김선웅만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정사에는 마의태자의 생년이나 후손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태자파가 근거로 제시한 『신라삼성연원보』는 족보 조작이 횡행하던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서 실제 역사와 배치되는 내용이 상당하기에 근거로 삼을 수 없다.[[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502100056| ]] 또한 계림군파 최초의 족보는 1772년에 나왔고, 이 족보의 가장 위 상계조상은 김순웅이었다. 경순왕이 조상이었다면 상계를 기록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족보에서 김순웅의 아들이라고 전하는 [[김인위]]는 금석문에 따르면 아버지가 김신웅이며 할아버지는 마의태자가 아니라 김인윤이라는 문관이었다. 다음으로, 김맹성의 후손에 관하여 두 파의 족보에 차이가 있다. 태자파의 족보에 따르면 김맹성에게 영부(榮富)와 영길(榮吉) 두 아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후손이 현대에도 이어진다. 그러나 계림군파는 김맹성의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http://sillok.history.go.kr/id/kda_13108027_004|김맹성의 졸기]]에 김맹성은 아들이 없었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록에 실린 졸기에서 관료들의 아들에 관해 서술할 때 서자를 제외하고 적자만 기록했다면, 영부 · 영길 형제가 김맹성의 아들이되 적자는 아니었을 수 있다. [[정안왕후]]의 오라비인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0908029_002|김수의 졸기]]에서도 아들로 김겸 하나만 있었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족보에는 다른 아들로 김충원(忠源)과 김첨(添)이 실려 있다. == 가족관계 == === 조상 === * 조상: [[신라]] [[원성왕]] * 조부: 대광 김례(金禮) * 부: 삼한공신(三韓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김인윤(金仁允) === 자녀 === * 아들: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김인위]](金因渭) * 손녀: [[원순숙비]] 김씨[* 『고려사』 권88, 후비열전]/손녀사위: 고려 [[현종(고려)|현종]] * 외증손녀: [[경성왕후]] * 손녀: 계림국대부인 김씨[* 『이정 묘지명』]/손녀사위: [[이자연(고려)|이자연]] * 손자: [[김원황]][* 『김지우 묘지명』] * 증손자: [[김경용(고려)|김경용]] * 현손자: [[김인규(고려)|김인규]] * 증손녀: 낙랑군대부인 김씨/증손녀사위: 최유서[* [[최사위]]의 손자] * 손자: [[김원정]] * 증손녀: 경주 김씨/증손녀사위: 서정[* [[서필]]의 후손] * 손자: [[김원충]] * 증손녀: 용절덕비 김씨 * 증손녀: 인목덕비 김씨 [[분류:경주 김씨]][[분류:경주 김씨 장군공파]][[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