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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선수)] ---- ||
'''김용국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width=100]][br]'''KBO 리그[br]우승반지''' || || '''[[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우승|{{{#fecd00 1985}}}]]''' || ---- ||<-4>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width=50]][[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width=50]][[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7.svg|width=40]][[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8.svg|width=50]][br]'''KBO 리그 한국시리즈[br]우승코치''' || || '''[[2011년 한국시리즈|{{{#ffffff 2011}}}]]''' || '''[[2012년 한국시리즈|{{{#ffffff 2012}}}]]''' || '''[[2013년 한국시리즈|{{{#ffffff 2013}}}]]''' || '''[[2014년 한국시리즈|{{{#ffffff 2014}}}]]''' || ----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 주장)] ---- ||<-5> '''{{{#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 || || [[천보성]][br](1982~1984) || {{{+1 →}}} || '''{{{#008bd2 김용국[br](1985~1993)}}}''' || {{{+1 →}}} || [[이정훈(1963)|이정훈]][br](1995) || ||<-5> '''{{{#131B66 [[태평양 돌핀스|{{{#131B66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8번}}}''' || || 정영진[br](1986~1987) || {{{+1 →}}} || '''김용국[br](1994~1995)''' || {{{+1 →}}} || [[김인호(야구)|김인호]][br](1996~2001) || ||<-5> '''{{{#fff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8번}}}''' || || [[김용희]][br](1999~2000) || {{{+1 →}}} || '''{{{#074ca1 김용국[br](2006~2009)}}}''' || {{{+1 →}}} || 결번 || ||<-5> '''{{{#fff [[넥센 히어로즈|{{{#fff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5번}}}''' || || [[백인수|백인호]][br](2008~2009) || {{{+1 →}}} || '''김용국[br](2010)''' || {{{+1 →}}} || [[서한규]][br](2011~2014) || ||<-5> '''{{{#fff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8번}}}''' || || 결번 || {{{+1 →}}} || '''{{{#074ca1 김용국[br](2011~2016)}}}''' || {{{+1 →}}} || [[강봉규]][br](2017~) || ||<-5> '''{{{#ffffff [[kt wiz|{{{#ffffff kt wiz}}}]] 등번호 78번}}}''' || || [[김일경(야구)|김일경]][br](2016) || {{{+1 →}}} || '''김용국[br](2017~2018)''' || {{{+1 →}}} || [[박철영]][br](2019~2023) || }}} || }}} ||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김용국 삼성 코치.jpg|width=100%]]}}} || ||<-2> '''{{{+2 김용국}}}[br]金用國 | Yong-Gook Kim''' || ||<|2> '''출생''' ||[[1962년]] [[6월 21일]] ([age(1962-06-21)]세) || ||[[대구광역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대구수창초등학교|대구수창초]] - [[경상중학교|경상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53회 졸업생이며 [[김용국(야구)|김용국]], [[김성갑]], [[이강돈]], [[이종두]]가 동기다.]-[[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 || || '''포지션''' ||[[3루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s-2|1985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5~1993)''' [br][[태평양 돌핀스]] (1994~1995) || || '''지도자''' ||[[현대 피닉스]] 수비코치 (1996) [br]헬레나 브루어스[*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루키] 코치 (1997) [br]선 시티즈 솔라 삭스[* [[애리조나 가을리그]]] 수비·주루코치 (1997) [br][[스톡턴 포츠]][*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싱글A] 수비·주루코치 (1998~1999)[br][[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트리플A] 코치 (2000)[br][[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00)[br][[LG 트윈스/2군|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2001)[br][[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02~2003) [br] [[LG 트윈스/2군|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2004)[* ~7월 24일] [br]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04)[* 7월 25일~] [br] [[LG 트윈스]] 1군 수비·주루코치 (2005)[* ~5월 29일] [br] [[LG 트윈스/2군|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2005)[* 5월 30일~] [br] [[삼성 라이온즈/2군|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06~2008) [br]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09)[* ~9월 13일] [br][[삼성 라이온즈/2군|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09)[* 9월 14일~] [br] [[고양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2군]] 수비·작전·주루코치 (2010) [br]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11~2016) [br][[kt wiz]] 1군 수비코치 (2017) [br][[kt wiz]] 1군 수석코치 (2018)[* ~6월 17일] [br] [[kt wiz/2군|kt wiz 2군]] 야수총괄코치 (2018)[* 6월 18일~] [br] [[경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9~2020) || || '''해설위원''' ||[[TBC]] Dream FM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23~) || || '''병역''' ||[[예술체육요원]][* 1983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77&aid=0000126990|#]]] || || '''가족''' ||장남 [[김동영(1990)|김동영]], 차남 김동빈 || [목차] [clearfix] == 개요 == 前 [[삼성 라이온즈]], [[태평양 돌핀스]] 소속 내야수이자 前 [[kt wiz]]의 1군 수석코치. == 선수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4 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였으며,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학교]] 졸업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 [[삼성 라이온즈]] === 1985 시즌부터 1986년까지 꾸준히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류중일]]에게 유격수 자리를 넘겨준 [[오대석]]과 1987년 3루 자리를 번갈아 맡았으나 [[류중일]]이 1988년 팔꿈치 수술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유격수 자리로 가면서 1988년부터 3루 자리를 지켰다. [[KBO 플레이오프/1990년|1990년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를 이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차전에서 해태의 에이스 [[선동열]]을 상대로 홈런 1개, 9회 2타점 적시타까지 포함해서 팀의 4타점을 혼자 기록하며 맹활약한 것이 대표적.[* 이 경기 전날 선동열과 밤새 술을 마셨다는 전설과 같은 후문이 전해진다. 자신은 조금 먹고 선동열은 많이 먹였다고...][* 그해 패넌트레이스에서는 선동열한테 6타수 무안타였다.] (1990년 정규 시즌 홈런은 4개) 참고로 선동열은 다음날 2차전에서도 삼성 [[김용철(야구)|김용철]]에게 9회 동점 홈런을 맞고, 끝내 연장전에서 역전을 허용하면서,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팀의 5년째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을 실패로 이끈 원흉이라는 오명을 썼다.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던 시절에 선수로서 절정의 기량을 보였다. 삼성 1루수 [[신경식(야구)|신경식]],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김용국으로 이어지는 철벽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 당시에는 맨손으로 타구를 바로 잡아던지는(영어로 bare-handed catch) 능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3루수였지만, 이러한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보니[* 통산 11시즌 동안 한 번도 3할 타율이나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 본 적이 없고, 그러다 보니 주로 9번 타자로 출장하였다.][* 말 그대로 수비에 비해 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지 전성기엔 2할 후반대 타율도 여러 차례 기록한 만큼 타격이 크게 약점인 선수도 아니었다. 당대 삼성은 매 시즌 우승을 넘보던 전력을 가진 최고의 팀이었기에 9번에 주로 배치된 것이지 중하위권 팀에서 뛰었다면 그보다 높은 타선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의 [[한대화]]에게 밀려 3루수 골든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당연하겠지만 이 당시 타격 능력 등 모두 한대화가 압도적으로 위였다. 더군다나 해태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해본 한대화와 다르게 김용국은 현역 시절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점도 있다.] === [[태평양 돌핀스]] === 1993 시즌이 끝나고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의 3루수 자리는 후배 [[김한수]]에게 물려주었다. 1994~1995 시즌 [[태평양 돌핀스]]의 주전 3루수로 뛰었으나 1994년에는 풀타임으로 121경기에 출장해 무려 타율 '''0.189'''로 태평양 물방망이의 일원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6 시즌을 앞두고 태평양을 인수하여 새로 출범한 [[현대 유니콘스]]가 기존의 선수단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세대교체의 명분 아래 [[김성갑]]과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 지도자 경력 == 1996년 실업 야구 팀 [[현대 피닉스]]의 코치로 활동하며 [[현대 유니콘스]]에서 불러 주기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가족들을 데리고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 1997년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루키, [[애리조나 가을리그]], 1998년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싱글A팀에서 수비, 주루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양 팀 모두 무보수 방문코치 자격으로 있었다. 마침내 1998년 말 3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되며 한국인 최초로 유급 코치가 됨과 동시에 트리플A 코치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코치를 하려면 영어에 더 능숙해야 했기에 결국 귀국을 결정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PS15040700152g_99_20150407121503.jpg|width=100%]]}}} || ||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image/109/2007/01/15/200701151239101103_1.jpg|width=100%]]}}} || || 2007년 1월 [[이승엽]]과 함께. || 2000년 [[LG 트윈스]]를 시작으로 2006년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2010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가 이듬해에 다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선동열]] 감독의 용퇴와 [[류중일]] 작전코치의 감독 승격으로 인해 삼성의 수비코치 자리가 비었고, 아직 넥센과 재계약하지 않았던 김용국 코치를 [[류중일]] 감독이 다시 불러들여서 영입한 것. 그리고 이 선택은 본인에게 있어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V5)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수비코치로서의 평은 무난한 편. 삼성이 원체 수비 조직력은 좋은 팀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능하다고 마구 씹히는 [[김태한]]에 비하면야 확실히 별 언급이 없는 자체가 이미 수비코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다만, 2009 시즌에 1군 수비코치를 맡아 팀 실책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었고, 이는 해임으로 이어졌다. 갈수록 능력이 발전한다고 이해하면 편할 듯.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20161122_1142272_99_20161122134903.jpg|width=100%]]}}} || || [[kt wiz]] 코치 시절 || 찬바람이 몰아친 2016 시즌 후 삼성이 코치진까지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삼성은 그와 재계약하지 않고, [[kt wiz/2군|kt 2군]]에서 수비코치를 맡고 있었던 [[박재현(야구)|박재현]]을 새로운 수비코치로 영입했다. 그 후 새로 부임한 [[김진욱(1960)|김진욱]] [[kt wiz]] 감독의 부름을 받아 [[강성우]] 배터리코치와 함께 [[kt wiz]]에 합류했다. 2017시즌을 수비코치로 재임한 뒤 2018년에는 수석코치로 승격했다. 2018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8년 12월 12일 [[정경훈(야구선수)|정경훈]]의 후임으로 [[경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가 2020년 시즌을 끝으로 물러났다. 2023년 7월 20일부터 [[강동우]]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중계하는 [[TBC 드림FM]]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었다. 영입 자체는 7월 9일 발표되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7월 11일부터 전반기 종료까지는 [[배대웅]]이 임시 해설위원을 맡았다. == 연도별 성적 == ||<-15> {{{#ffffff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85 ||<|9> [[삼성 라이온즈|삼성]] || 99 || 306 || .239 || 73 || 14 || 1 || 7 || 37 || 46 || 3 || 36 || .359 || .319 || || 1986 || 108 || 278 || .216 || 60 || 10 || 2 || 0 || 31 || 20 || 6 || 20 || .266 || .261 || || 1987 || 75 || 182 || .264 || 48 || 6 || 1 || 4 || 27 || 18 || 6 || 17 || .374 || .319 || || 1988 || 101 || 333 || .285 || 95 || 11 || 1 || 3 || 42 || 40 || 8 || 35 || .351 || .349 || || 1989 || 98 || 333 || .288 || 96 || 15 || 1 || 9 || 44 || 53 || 8 || 33 || .420 || .348 || || 1990 || 91 || 255 || .220 || 56 || 11 || 0 || 4 || 29 || 29 || 2 || 14 || .310 || .256 || || 1991 || 126 || 403 || .295 || 119 || 21 || 1 || 7 || 58 || 55 || 4 || 56 || .404 || .380 || || 1992 || 121 || 311 || .264 || 82 || 14 || 1 || 6 || 35 || 39 || 4 || 43 || .373 || .353 || || 1993 || 90 || 202 || .208 || 42 || 5 || 0 || 2 || 13 || 22 || 3 || 29 || .262 || .30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94 ||<|2>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 121 || 280 || .189 || 53 || 12 || 0 || 4 || 34 || 26 || 3 || 48 || .275 || .302 || || 1995 || 62 || 135 || .215 || 29 || 4 || 1 || 0 || 8 || 11 || 3 || 13 || .259 || .282 || ||<-2> '''[[KBO 리그|KBO]] 통산'''[br](11시즌) || 1092 || 3018 || .250 || 753 || 123 || 9 || 46 || 358 || 359 || 50 || 344 || .342 || .323 || == 기타 == * 2010 시즌 7월, 올스타전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러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김용국이 레전드 3루수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의 고전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상당히 없었다. 일단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양준혁]] 등의 대단한 인기와 위의 내야진 3명([[강기웅]], [[김성래]], [[류중일]])에 비해 네임 밸류가 떨어진다는 점. 같은 3루수였던 [[김한수]]의 인지도가 상당했던 탓에 존재감이 미비했던 선수. 어쩌면 [[이영우]]나 [[김태균(1971)|김태균]]의 원조격이었을지도 모른다. * 김용국의 누나는 [[체육교사]]라고 한다."예전에 김천 농남중학교(現율곡중학교) 체육교사를 지냈음" *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둘 다 프로 야구선수였지만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몇년 안되어 '''방출당했다'''. 장남 [[김동영(1990)|김동영]]은 2009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는데 [[2013년]] 시즌 중 방출되었고, 차남 김동빈은 2010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고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으나 2012년 방출되었다. * LG 주루코치로 활동하던 2002년 [[LG 트윈스]]의 KS 준우승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고 한다. >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도]]는 이건 여러분들이 심각하게 들어야 되는 문제라고 보는데, > [[LG 트윈스|LG]]가 8회 초에 2점 놓고, 4점 리드했어요, 그때. 4점 리드면 이기는 거예요, 거의 다, > 8회니까. 그런데 4점 들어온 다음에 내가 번트 지시를 했다고. 그럼 번트를 하면, > 보내기 '''번트를 시켰는데 써드 코치가 사인을 놓쳐버렸어요.''' > 근데 거기서 번트를 성공했다, 한 점 들어왔으면 세상의 비난 무지 받았을 거예요. > 근데 내가 냈다고, 냈는데, 코치가 사인을 놓쳐버렸어요. 놓치는 순간에 졌다 싶었다고, > 나는. 이건 거짓말이 아니고, 내가 직감이 왔다고, 졌다 싶었어요. > 아니나 다를까 9회에 뒤집어졌잖아요. 그 문제는, 그게 나한테 좋은 경험이 됐는데, > 그때 그 [[200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한국시리즈는 우승하는 게 목표지, 준우승이 목표 아니에요. > 6차전에서 지든, 5차전이 되든 그런 건 별 문제가 아니에요. > 7차를 어떻게 이기냐 하는 문제였지. 그때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이라고 하는 피처가 클로저였는데, > 이상훈이를 내가 6차전에 써버리면 7차전에 쓸 토막이 안돼요. > 그럼 7차전 못 이기는 거예요. > 물론 흐름이 있으니까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지만, 승부라고 하는 것은. > 그러니까 거기서 번트를 대면 이상훈이 안 쓰고 7차에 갔으면 가능성이 있은 거예요. > 번트 하나 실패하니까 졌다 싶은 거예요 > 마, 그때는 아쉬움이라고 하는 것은 큰 역전패, 마지막에. > 그리고 혼신의 힘이라고 하는 걸 아이들에게서 봤고, > 그때는 KBO 준플레이오프, [[KBO 플레이오프/2002년|KBO 플레이오프]], 코리안시리즈, 3단계를 올라왔으니까, > 지칠 대로 지친 한없이 지친 상태였어도 애들은 잘했지 않나 싶은데, > 내가 야구장에서 눈물을 흘린 게 그때가 처음이에요. > 뒤에 기대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 사장은 지니까 기분 좋아서 [[김성근|김 감독]] 수고했어, 그러더라고, > 그리고 결국은 자르더라고요. > > ㅡ 한 강연에서 [[김성근]]이 [[2002년]] [[2002년 한국시리즈|비화]]를 이야기하며. 이 때 번트 사인을 놓친 서드 코치(3루코치)가 바로 김용국. * 2015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야마이코 나바로]] 대신 나와서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167549&redirect=true|나는 현역 때 후보에만 올랐었는데, 이렇게 대리 수상이라니... 나바로가 꿈에 나와서 수상 소감을 전해 줬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유머가 넘치는 수상 소감으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올림픽]] 야구 사상 최초의 퇴장 선수다. 야구가 시범 종목이던 [[1984 LA 올림픽]]에서 [[미국]]과의 4강전에서 퇴장당했다.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팀에서 영어가 되는 사람이 자신 뿐이어서 항의할 사람이 자기 뿐이었다고 한다.[* 팀 통역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뭐 그 당시에 영어 실력이 얼마나 됐겠나만 야구 선수들 중에서는 좋은 편이었던 듯. 이후 [[미국]] 유학에서도 이런 점이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루 태그가 되기도 전에 아웃콜을 부르는 2루심을 보고 2루까지 가서 항의했는데 이것이 묵살당하며 2루심이 무시하며 뒤돌아서자, 돌아보라면서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이게 빌미가 되어 퇴장당한 것. 결국 경기는 2:2로 팽팽하던 승부에서 5:2로 역전패당하고 만다. * [[김상엽]]의 데뷔 첫 승 시 훌륭한 조연이었다. 김용국의 다이빙캐치에 힘입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었다.[[https://m.cafe.daum.net/seoulfan/I7Y/883?q=%EB%B0%95%EC%B6%A9%EC%8B%9D&|'만딩고' 김상엽, 포스트시즌의 추억]] * 류중일과 함께 수비코치 실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있다. 꼼꼼하게 선수들의 기본기, 사전동작, 연속동작 들을 지도하며 경기 중 야수들의 수비위치도 전체적으로 잘 만진다. 야수들의 수비 훈련 시 [[펑고]]의 세기, 방향 등을 조절하며 펑고를 날려 야수들의 수비력을 끌어올린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코치]][[분류:1962년 출생]][[분류:1985년 데뷔]][[분류:1996년 은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출신]][[분류:한양대학교 출신]][[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삼성 라이온즈/은퇴, 이적]][[분류: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4 LA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야구 해설자]][[분류:병역특례자/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