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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fb591 0%, #c0a935 20%, #bfb591 80%, #c0a935)" {{{#white '''{{{+2 김창열}}}[br]{{{-1 金昌烈 | Kim Tschang-Yeul}}}'''}}}}}}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F22A57B-6A4E-4486-9E11-281C3C33F715.jpg|width=100%]]}}}|| ||<|2> '''{{{#white 출생}}}''' ||[[1929년]] [[12월 24일]] || ||[[평안남도]] [[맹산군]][* 평안남도 맹산군 지덕면 송암리.] || || '''{{{#white 사망}}}''' ||[[2021년]] [[1월 5일]] (향년 91세)|| || '''{{{#white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 '''{{{#white 직업}}}''' ||[[화가]]|| || '''{{{#white 학력}}}''' ||[[광성고등학교(서울)|광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술학과 (중퇴) || || '''{{{#white 배우자}}}''' ||마르틴 질롱 || || '''{{{#white 홈페이지}}}''' ||[[http://kimtschang-yeul.jeju.go.kr/|공식 홈페이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vH6jnnavW5Y)]}}} || ||<#bfb591> '''{{{#fff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김창열}}}''' || [[대한민국]]의 화가. '물방울 화가'라고 불린다. 한국 예술사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술계의 거장이자 원로 화가이다. == 생애 == ||
<#bfb591><-2> '''{{{#fff 주요 작품}}}''' || || [[파일:108070_62583_5056.jpg|width=100%]] || [[파일:22H51AXJ7G_2.jpg|width=100%]] || ||<#ddd> '''회귀''' ||<#ddd> '''물방울''' ||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맹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사사해서 [[서예]]를 익힌 그는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광성고보 시절 외삼촌으로부터 [[데생]]을 배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때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1949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전쟁 후 서울대학교에 다시 등록하려고 했으나 [[월북]]한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등록이 거부된다. 이후 군 복무를 대신 했던 경찰직에 눌러앉았고 [[부평]] 경찰전문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1955년]] [[고등학교]] [[교사]]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한 후, 경찰에서 나와 [[서울]]과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의 고등학교에서 짧은 기간 동안 [[미술교사]]로 일했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후에 [[박서보]]를 협회에 가입시켰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 동인전의 이름을 "현대전"이라고 약칭하고 제 2회부터 함께 해나갔다. "현대전"을 통해 한국의 앵포르멜[*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운동을 이끌었으며 [[1961년]] [[파리(프랑스)|파리]] [[비엔날레]]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청년화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 [[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여기서 그는 다시 [[백남준]]의 눈에 띄어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였고, 이를 계기로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당시 [[박서보]]의 [[추천]]으로 [[1971년]] 제7회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온 [[이우환]]과도 이 때 만난다. 김창열은 파리 남쪽 팔레조(Palaiseau)의 [[마굿간]]을 [[공방]]으로 쓰던 [[독일]]의 한 젊은 [[조각가]]에게 작업실을 이어 받아, 여기서 부인 마르틴 질롱(Martine Jillon)을 만나 [[동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재료 살 돈을 아끼려 [[캔버스]] 뒷면을 물에 적셔 묵힌 후 [[물감]]을 떼어 또 그리는 식으로 재활용하던 어느 날,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마침내 [[1972년]] 물방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몇몇 [[신문]]에 이렇게 나오긴 하지만 그전부터 물방울 그림을 그리긴 했다.] 근처 [[골동품]] 가구점에서 연 첫 개인전이 우연히 길을 지나던 파리의 일간지 <콩바(Combat)>의 선임기자 알랭 보스케의 눈에 들어 기사화되고, 이후 다른 신문사에서도 앞다투어 취재를 해가면서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물방울들은 우리를 일종의 자기 변형으로 끌고 간다." >"그 물방울들은 보기 드문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 >---- >[[프랑스]] 일간지 Combat에 실린 알랭 보스케의 평문 중. 이를 계기로 1972년 파리의 권위있는 전위미술 전시회 '살롱 드 메(Salon de Mai)'전에 초대받아, 검은 바탕에 오롯한 물방울 하나와 그 그림자를 그린 〈Event of Night, 1972〉을 출품하며 [[유럽]]에서 데뷔했다. 1973년에는 놀 인터내셔널 프랑스에서 물방울 회화만을 모은 첫 프랑스 개인전을 개최하여 '물방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재료 연구를 하던 중, 1975년 다락방에서 묵은 [[신문]] 더미를 발견하고 ‘르 피가로’ 1면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렸으며, 이 때 처음으로 문자와 물방울의 조합이 시작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캔버스가 아닌 마대의 거친 표면에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친 표면이라는 마대 재질의 특징을 잘 살리는 한편, 이러한 표면에 맺힐 수 없는 영롱한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마대 자체를 여백으로 남겼던 초기와 달리 한자 체나 색점, 색면 등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동양의 정서를 끌어들였다. 물방울 역시 70년대의 투명한 물방울과 달리 색채가 들어가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1990년대]]에 선보인 ‘[[회귀]]’ 연작은 인쇄체로 또박또박 쓰인 [[천자문]]을 배경으로 투명한 물방울이 무리 지어 화면 전반에 흩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두고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서양 [[평론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한자]] 위에 물방울이 그려진 그 구성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2021년]] [[1월 5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족으로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 수상 == ||
<#bfb591> '''{{{#fff 년도}}}''' ||<#bfb591> '''{{{#fff 나라}}}''' ||<#bfb591> '''{{{#fff 수상 내역}}}''' ||<#bfb591> '''{{{#fff 부문}}}''' ||<#bfb591> '''{{{#fff 비고}}}''' || || 1996년 || 프랑스 || 문화예술공로훈장 || [[슈발리에]] || || || 2013년 || 대한민국 || [[은관문화훈장]] || || || || 2017년 || 프랑스 || 문화예술공로훈장 || 오피시에 || || == 여담 == * 2016년에 [[제주시]]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4/0200000000AKR20160924050100056.HTML|#]] *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아들 김오안이 어느날 문득 자신이 부친인 김창열 화백으로부터 받은 예술적 영향이 지대하다는 생각이 들어, 틈틈이 부친을 담은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영상이 모여 김창열의 작품세계와 일생을 탐구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다. [youtube(WUjQoVR2GG8)] * 그의 사후인 2022년에 [[BANG & OLUFSEN]]에서 서울옥션과의 협업으로 베오플레이 A9 김창열 에디션 한정판을 출시했다. [[분류:1929년 출생]][[분류:2021년 사망]][[분류:맹산군 출신 인물]][[분류:실향민]][[분류:은관문화훈장]][[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프랑스 문예공로훈장]][[분류:광성고등학교(서울)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