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김춘원}}}'''[br]'''金春園'''}}}}}}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김춘원.jpg|width=100%]]}}} || || '''본관''' ||[[김해 김씨]] || ||<|2> '''출생''' ||[[1891년]] [[2월 23일]] || ||[[한성부]] 동부 숭신방 숭신동계 대정동[br](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 || '''사망''' ||[[1933년]] [[6월 19일]] (향년 42세)||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891년 2월 23일 한성부 동부 숭신방 숭신동계 대정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서 군관을 지낸 아버지 김귀현(金貴鉉)과 독립유공자인 어머니 [[김점순]]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본래 가업이었던 [[철물점]]을 이어 받아 경영하고 있었는데, 1920년 6월 둘째 형 [[김상옥]]의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철물점을 [[담보]]로 하여 2,000원을 형에게 제공했다. 그해 10월 김상옥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상해에서 비밀리에 파견되는 인편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 뒤 1923년 1월 22일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현장에서 순국하자, 그해 3월 16일 일본 경찰에 연루자로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곧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어머니 김점순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막대한 부채로 1927년에는 끝내 파산하여 어렵게 경영하던 철물점마저 일본인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파산한 뒤에는 어렵게 생계를 잇다가 1933년 6월 19일 별세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김해 김씨]][[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1891년 출생]][[분류:193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독립유공자 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