鯰尾藤四郎 [목차] == [[일본도]] [[와키자시]]중 하나 == [[파일:NamazuoToushirouWakizashi.jpg]] ||<-4> '''{{{#white 나마즈오 토시로(鯰尾藤四郎)}}}''' || || '''도공''' ||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 || '''도파''' || [[아와타구치]](粟田口) || ||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 '''종류''' || [[나가마키]][* [[나기나타]]로 알려져있으나, 소유측에서는 이를 부정, [[나가마키]]를 재도하였다고 소개.] → [[와키자시]] || || '''길이''' || 39.1cm→38.5 ㎝ || '''현존 여부''' ||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 [[미토(일본)|미토]]에 있는 도쿠가와 뮤지엄과 헷갈릴 수 있으니 주의] || || '''명문''' || 吉光 || '''문화재 등록''' || - || 나가마키를 재도한 검(長巻直し刀)으로, 위쪽은 쇼우부즈쿠리(菖蒲造り)[* 일반적인 일본도의 형태에서 요코테(横手, 킷사키와 도신의 경계선)가 없는 것으로, 창포의 잎과 닮았다고 하여 창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래로는 나기나타히(薙刀樋)와 소에비[* 添え樋, 검 옆면의 긴 일직선의 선]가 있으며 무네는 미츠무네[* 三つ棟, 소슈계통의 도검에 자주 보이는 형태로 위쪽 면이 3면으로 꺾여있어 이렇게 부른다.], 지하다는 이타메하다[* 板目肌, 나무판같은 모양과 닮아 이렇게 부른다. 가장 흔히 보이는 지하다이며 소슈덴 계통의 도공에게 자주 보이는 지하다이다.]이며 하몬은 스구하(直刃)에 가까운 코미다레(小乱れ), 코아시(小足)가 약간 섞여있다. 보우시(鋩子)는 둥글며, 나마즈오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킷사키의 형태가 나마즈오즈쿠리[* 鯰尾造り, 킷사키(切先)부분이 메기의 꼬리와 닮았기에 이 이름이 되었다. 킷사키가 나기나타와 같은 형태가 된 것을 이르기도 한다. 이것을 쇼우부즈쿠리와 같은 것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로 되어있다. 나마즈오 토시로는 나기나타를 재도한 검이라는 설도 있으나, 명문의 위치[* 본래 나기나타라면 타치와 같이 하키오모테(佩き表)에 그 명문이 새겨져 있어야 하나 나마즈오토시로의 명문은 하키우라(佩き裏)에 새겨져 있다. 또한 명문의 위치도 현재의 위치가 아닌 좀더 아래쪽에 적혀있어야 한다.]와 시노기스지(鎬筋)의 길이[* 나기나타를 재도할 경우 나카고(茎)까지 시노기스지가 이어지게 된다. [[호네바미 토시로]]의 사진을 참고.]가 짧다는 점 그리고 재도 전의 하몬(刃文)을 참고할 시에 나기나타를 재도할 경우 보이기 힘든 모양새가 되는 점을 들어 나기나타를 재도한 것이 아니라는 설도 존재한다. 나마즈오즈쿠리와 비슷한 쇼우부즈쿠리나 칸무리오토시(冠落とし)의 경우 야마시로덴이나 야마토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라는 점도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소유측인 도쿠가와 미술관에서는 이 검이 [[나가마키]]를 재도한 검이라 정의하고 있다. 에도시대에 기록된 명검 목록인 '쿄호메이부츠초(享保名物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鯰尾藤四郎 裏ニ銘有長一尺二寸八分 無代 御物 > (나마즈오 토시로, 검 도신 뒤에는 2자의 명문이 새겨져있다, 길이 1척 2촌 8분(약 38.5 ㎝), 무대, 어물) > 長刀樋添樋コレ有、打チノケ多、大坂ノ御物ナリ > (나기나타히와 소에비가 있으며 우치노케가 많다. [[오사카]]의 어물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인 [[오다 노부카츠]]가 사용했던 적이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1614년 [[오사카 전투]] 당시 [[오사카성]]과 함께 불탔다. 이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두어 재도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 전투]]당시 요시미츠의 와키자시로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옆에 나마즈오가 있었다 혹은 배에 꽂혀있었다 하여 히데요리의 시신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 [[도검난무]]의 등장 캐릭터 == [[나마즈오 토시로(도검난무)]] [[분류:일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