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국의 성씨)] [목차] == 한국의 내씨 == 한국의 성씨. 본디 한국에 없었고 중국에도 없는 성씨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매우 희귀한 성씨다.''' 한자는 이에 [[乃]]와 어찌 [[奈]]로 나뉜다. === 乃 === 개성, 송도 단본이다.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2가구, 368명(개성), 1가구 1명(송도)로 조사되었다. 2015년 조사에는 352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개성(송도, 송악, 개경 모두 동일)을 본관으로 하는 내(乃)씨는 고려가 망한 뒤 박해를 피하여 성을 바꾼 왕씨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전해지는 일설에 따르면 어느 나루에서 강을 건너가기 위하여 기다리는데, 검문관이 성이 무엇이냐 묻자 괜시리 당황하여 '''"네?"'''라고 되물은 것을 포졸이 성씨로 알아듣고 문서에 내(乃)라고 작성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다만 만약 저런 상황이면 되물을 때의 어조 등이 그냥 대답할 때와 달랐을 테니 그냥 모른 척 보낸 것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기를 쓰고 고려 왕가를 몰살시키고자 했던 당시 [[신진사대부]]층의 경우와는 달리 일반 평민들 및 찬탈을 한 당사자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경우 고려 왕가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이 상당했다.] 참고로 위 어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당시의 한국어인 [[중세 한국어]]에서 긍정 감탄사로 '네'는 거의 쓰여지지 않았고, 당시의 ㅔ와 ㅐ의 발음이 이중모음으로 발음되어 현대 한국어의 ㅔ와 ㅐ의 발음보다 더 큰 차이가 있어 쉽게 변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간어원|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인 인물로는 1894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뒤 1895년 3월 2일 재판을 받고 석방된 [[http://www.cdpr.go.kr/commit/?menu=231&pno=57&limit=0&mode=view&no=2806|내석겸]](乃錫謙, 1876 ~ ?)이 있다. === 奈 === 나주 단본이다.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7가구 36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가족|한 가구당 21명?]]-- 위의 개성 내씨와 인구수가 겹치는걸로 보아 개성 내씨 인구수가 와전되어 잘못 기록된 걸로 추정 == 중국의 내씨 == === 來 === 한국에는 없는 중국의 성씨. 본관으로는 [[주나라]] 개국공신 호공만(胡公滿)의 자손이 래읍(徠邑)을 하사받고 성을 '래(徠)'로 바꿨다가 훗날 이를 간소화하여 '내(來)'가 되었다는 하남 내씨, [[금나라]]의 [[완안종필]]이 중국을 침공하자 남하하여 소산(蕭山)[* 지금의 [[샤오산구]]]에 자리를 잡고 성을 '수(壽)'에서 '내(來)'로 바꿨다는 소산 내씨 등등 여러 개가 존재한다. 역사적 인물로는 [[후한]]의 개국공신 [[내흡]]과 [[촉한]]의 대신 [[내민]], [[명나라]] 시기 정치인인 내종도(來宗道) 등이 있다. [각주] [[분류:성씨/한국]][[분류:희귀성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