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촉서)] 來敏 생몰년도 미상[* 단 경요 연간에 내민이 97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것이 적혀있다. 162년과 167년 사이에 태어나, 258년과 263년 사이에 죽었다. 즉 '''[[관우]], [[장비]]랑 비슷한 연배인데 고작 촉한 멸망 수 년전에 죽었다.'''] [목차] == 개요 == [[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경달(敬達)로 [[내염]]의 아들. '''97세'''에 죽은 매우 장수한 인물.[* 촉한이 멸망하기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인물인데 무려 [[환제(후한)|후한 환제]] 시기에 태어났다. [[순욱]]과 동년배이다.] == 생애 == 형주 남양군 신야현 사람으로 정강절후 [[내흡]]의 6세손이다. 매부 [[황완]]이 [[유장(삼국지)|유장]]의 당숙[* 할머니의 조카다.]이라 함께 형주로 피난한 내민의 누이를 유장이 불러들였고, 내민도 누이를 따라 유장의 빈객으로 들어간다. 독서폭이 상당히 넓었는데, 특히 [[춘추좌씨전]]에 뛰어나 창힐편과 이아에 정통하면서 문자 교정하는 일을 좋아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민에 대한 참소가 있어, 유비에게 홀대받는다. 하지만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준 것은 아니고 달리 예우하지 않는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전학교위가 되었고 유선이 태자로 정해질 무렵에는 가령으로 임명되었다. [[유선(삼국지)|유선]]이 즉위할 때 호분중랑장이 되었다가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할 때는 군좨주, 보군장군이 될 것을 요청받았는데,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관직을 떠나게 되었다. 제갈량집에 따르면 내민은 입을 함부로 놀려 여러번 면직되었다고 한다. 대개는 노골적으로 [[동윤]] 등 신입상관의 공이나 덕행을 폄하하였고, 이에 주변인들에게서 미움을 받자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었으며, 끝내는 나이를 앞세우는 등 추태를 부렸다고 한다. 그래서 제갈량은 내민을 공융보다 더한 혼란을 불러올거라고 하며 그를 파직시켰다. 제갈량이 사망한 후 성도로 돌아와 대장추가 되었다가 다시 면직되고, 후에 여러 차례 승진해 광록대부가 되었지만 또 다시 잘못을 범해 쫓겨났다. 이런 식으로 파직과 재등용을 반복하다가 집신장군에 오른 후 경요 연간[* 258 ~ 263년이다.]에 '''97세'''로 사망했다. 나이가 많고 박학한 학자라 제법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그가 여러 번 면직되거나 강등된 것을 보면 학문적 능력과 별개로 사회성이 몹시 떨어졌던 것으로 내민이 앞뒤로 여러 번 면직되거나 강등된 것은 모두 말에 절도가 없고 행동이 일상적인 규범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맹광(촉한)|맹광]](孟光) 또한 중대한 일에 있어서 신중한 태도가 없이 시정에 간여하는 의론을 발표하는데, 내민보다 더 심했다. 그들은 모두 나이가 많고 박학한 학자로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내민은 형초의 명가이며 태자의 노신이었으므로 특별히 우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면직된 후에 또 기용되었다. 아들 내충(來忠) 역시 유가경전을 광범위하게 읽었고, 내민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으며, 상서 상충 등과 함께 대장군 [[강유]]를 보좌했다. 강유는 그를 평가하여 참군으로 임명했다. == 창작물에서 == || [[파일:내민.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38, 무력 34, 지력 66, 정치 60, 매력 31이며 일러스트는 찡그린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다. 개성은 인맥, 학자, 오만, 주의는 명리, 정책은 본초학 Lv 2, 진형은 충차, 전법 역시 충차, 친애무장은 [[비의]], [[유선(삼국지)|유선]], 혐오무장은 [[맹광(촉한)|맹광]]이다. [[분류:몰년 미상]][[분류:후한의 인물]][[분류:촉한의 인물]][[분류:난양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