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이라크 다후크.jpg|width=520]]||[[파일:다후크 이라크.jpg|width=338]]|| || 시가지와 다후크 댐 || 쿠르디스탄 아메리칸 대학교 캠퍼스 || [목차] == 개요 == [[아랍어]] {{{+1 دهوك }}} [[쿠르드어]] {{{+1 دهۆک }}} [[시리아어]] ܒܝܬ ܢܘܗܕܪܐ [[영어]] Duhok / Dihok [[이라크]] 북부의 도시. [[모술]]에서 서북쪽으로 40km 떨어진 협곡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35만명으로,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야]]에 이어 [[이라크 쿠르디스탄]] 제3의 도시이자 다후크 주의 주도이다. 속한 지역의 특성상 주민들의 민족과 종교는 [[쿠르드]], [[아시리아인]], [[야지디]] 등으로 다양하다. 다사다난한 이라크 현대사에서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며, 2010년대 [[다에시]]의 준동 후 [[신자르]] 등지에서 3만이 넘는 난민들이 유입되었다. 시가지 서부에는 1992년 설립된 두호크 대학을 비롯하여 두호크 폴리텍 대학과 2014년 설립된 쿠르디스탄 아메리칸 대학 등으로 구성된 대학 도시가 조성되어 있다. == 역사 == ||[[파일:다후크 이라크 1.jpg|width=334]]||[[파일:이라크 다후크 1.jpg|width=503]]|| |||| 기원전 700년경 신[[아시리아]] 군주 [[센나케립]]이 남긴 말타이 부조 |||| 역사적으로 상부 [[메소포타미아]], 즉 [[자지라]]에 속하여 역사 자체는 매우 오래되었다. 시가지 서남쪽 산 기슭의 할라마타 동굴에는 아시리아 국왕 센나케립이 [[니네베]]로 향하는 수로를 세우며 남긴 말타이 석조 부조 있고, 서쪽 10km 지점 발유즈 언덕에는 [[셀레우코스 왕조]] 국왕 [[데메트리오스 1세]]를 언급한 [[그리스어]] 석판이 출토되었다. 중세 시기에는 아시리아 교회의 거점인 베트 노드리였으나 1400년경 [[티무르]]의 학살로 쇠락하였다. 이후 [[야지디]] 계열 다스니 부족과 [[쿠르드]] 계열 도스키 부족이 정착하였고, 1929년 기준 550 가구의 3천 5백명이 사는 작은 도시였다. 그중 65 가구는 기독교도, 30 가구는 유대교도였다. 한편 [[1차 대전]] 중인 1918년 11월 영국군이 진주한 후 [[이라크 왕국]] 하에 학교와 도서관 등이 세워졌다. 공화국 시절인 1970년에는 축구 구단 두호크 SC가 설립되었고 1988년에는 다후크 댐이 세워졌다. [[걸프전]] 후 1991년 3월에는 다른 쿠르디스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반 [[사담 후세인]] 봉기가 일어 자립하였다. 2017년 화재로 바자르 (전통시장)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 [[분류:이라크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