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을 [[한일전|상대로]] [[도쿄도|도쿄]]에서 극적인 [[승리]]나 대승을 거둘 경우 붙여지는 [[별명]]. == 축구 == ===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 === [youtube(FRxCimAmo3A)] '''역사상 최초의 한일전.''' 1945년 [[8.15 광복]] 이후, 1954년에 있었던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전을 말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출정식을 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일본에게 지면 현해탄[* 당시 [[대한해협]]을 부르던 명칭.]에 빠져 죽으라고 말했다는 썰은 유명하다.[* 사실 이 말은 이승만이 아닌 [[장택상]]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한 말이라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078880|#]]] 결국 일본에서 열린 첫 한일전은 '''5:1로 압도적으로 대승'''했고, 이어서 일본에서 또 열린[* 원래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에 따라 한국에서 열렸어야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를 침략했던 왜놈들이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오는 꼴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2차전도 일본에서 치러야 했다.] 2차전에서는 2:2로 무승부를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 아시아 독립국가 최초이자 아시아 두번째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해방된 지 채 10년도 안됐던 시점이라 국민들은 승전보에 매우 기뻐했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에 35년간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축구경기에서 압승했다는 것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 2022년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첫 경기 후반전 득점 선수 3명이 각 신문사랑 한일 양국이 죄다 뒤죽박죽인 사실이 밝혀졌다. 양국 축구협회에 의하면 남아있는 자료가 없고 당시 선수들도 전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057&aid=0001647270|#]] 어쨌든 이겼다는 사실 자체는 확실하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한일전,version=1033)]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도쿄 대첩(축구))] '''도쿄 대첩 2탄.''' 보통 도쿄대첩이라고 하면 이 경기를 의미한다. [[1997년]] [[9월 28일]] 일본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벌어진 [[한일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홈팀이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1로 뒤지던 경기를 후반전에 2:1로 뒤집은 명승부를 말한다. [[송재익]] 캐스터의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명언이 나온 바로 그 경기이다. ===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2010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제 6경기 === ||<-3> [[파일:East Asian Football Championship 2010.gif||height=50]][br]'''{{{#000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제 6경기[br]2010. 02. 14.(일) 19:15(UTC+9)}}}''' || ||<-3> '''[[도쿄 국립경기장|{{{#fff 도쿄 국립경기장}}}]] [[도쿄도|{{{#fff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 ||<-3> '''{{{#000 주심: 스트레버 델로프스키 (호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10%, #000080 10%), linear-gradient(to right, #000080 45%, #fe0000 45%, #fe0000 55%, #000080 55%)" [[파일:800px-JFA_Logo.svg.png|height=100]]}}} ||<|2> '''{{{+5 {{{#000 1 : 3}}}}}}'''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1%, #E92B21 1%, #E92B21 99%, #fff 99%)"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height=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0.5%, #1E2136 0.5%, #1E2136 1.0%, #fff 1.0%, #fff 1.5%, #1E2136 1.5%, #1E2136 2.0%, #fff 2.0%, #fff 2.5%, #1E2136 2.5%, #1E2136 3.0%, #fff 3.0%, #fff 97.0%, #1E2136 97.0%, #1E2136 97.5%, #fff 97.5%, #fff 98.0%, #1E2136 98.0%, #1E2136 98.5%, #fff 98.5%, #fff 99.0%, #1E2136 99.0%, #1E2136 99.5%, #fff 99.5%)"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1E2136 '''일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250E77 '''대한민국'''}}}]] || || '''{{{#000 23' [[페널티킥|{{{#000 (P)}}}]] [[엔도 야스히토|{{{#000 엔도}}}]]}}}''' || [[파일:득점 아이콘.svg|height=20]] || '''{{{#000 33' [[페널티킥|{{{#000 (P)}}}]] [[이동국|{{{#000 이동국}}}]]}}}[br]{{{#000 39' [[이승렬|{{{#000 이승렬}}}]]}}}[br]{{{#000 70' [[김재성(축구)|{{{#000 김재성}}}]]}}}''' || ||<-3> {{{#000 '''[[https://youtu.be/Y2jMiEnUWiU|{{{#000 경기 영상}}}]]'''}}} || 최종전인 [[한일전]]은 그전부터 꾸준히 까임게이지를 축적한 일본의 [[오카다 다케시|오카다]] 감독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중국전에서 한방에 까임권을 벌어버린 허정무 감독의 '''[[단두대 매치]]'''가 되었다. 저 유명한 [[도쿄 대첩]]의 무대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전반 일찌감치 [[강민수(축구선수)|강민수]]가 내준 페널티킥을 PK 마스터 [[엔도 야스히토]]가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은 0:1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잠시 후 대한민국도 [[김보경(축구선수)|김보경]]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영리한 플레이로 페널티킥을 유도해냈고 이를 [[이동국]]이 성공시키며 동점이 되었다. 승부의 저울추는 예상치 못한 선수에 의해 기울어졌는데 당시 신예에 불과했지만 선발 출전한 [[이승렬]]이 먼 거리에서 뜬금없이 기습적인 중거리슛을 때린 것이 일본 수비수 맞고 붕 뜨면서 골키퍼 키를 넘어가 '''만세골'''이 된 것이다. 전반을 2:1로 앞선 채 마친 대한민국은 후반전 초반 [[김정우(축구인)|김정우]]가 경고누적 퇴장당하면서 수세에 몰리기도 했으나 일본 공격수들은 번갈아 가면서 삽질을 반복했고, 결국 후반 25분에 찾아온 역습 찬스에서 [[김재성(축구)|김재성]]이 깔끔하게 감아찬 슈팅으로 쐐기골을 박았다. '''3:1 시원한 역전승'''을 거뒀다. 일본은 대한민국 상대로 이길 경우 점수차에 따라 대회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이 고춧가루를 뿌리며 중국에 우승을 내준 것은 물론 대한민국한테도 밀려나 3위에 그쳤다. 후일담이지만, 이 때 단두대 매치를 벌인 두 감독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4개월 후 남아공]]에서 나란히 반전을 보여준다.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일본]] 항목 각각 참고. 대회 MVP는 [[두웨이]][* [[셀틱 FC]]에서 전반전만 뛰고 방출된 그 선수다(...)]가 수상했고 [[이동국]]과 [[이승렬]]은 중국의 취보, 일본의 [[다마다 게이지]]와 함께 공동 득점왕을 수상했다. ===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제 6경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신태용호/2017년/EAFF E-1 풋볼 챔피언십/일본전)] [[파일:2017일본동아시안컵 한국 대승.gif|width=500]] [[파일:Screenshot_20220809-013940_Gallery.jpg|width=500]] 7년 만에 재현된 도쿄 대첩. 당시 일본은 2018월드컵 '''아시아 예선 2위[* 1위는 이란(승점 22점, A조 1위), 2위 일본은 승점 20점](B조 1위)로 통과'''했으며, 일본의 우승이 예상되었으나, 경기가 시작된 지 1분 만에 골대 앞에서 [[장현수]]가 파울[* 원래 일본의 오프사이드 반칙이었으나 오심으로 장현수가 막다가 페널티킥을 선언한것이다.]을 범해 [[페널티 킥]]을 얻은 일본에 선취골을 내줬으나, 이후 [[김신욱]]의 2골과 [[정우영(1989)|정우영]], [[염기훈]]의 [[프리킥]] 추가골로 '''4-1'''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상대로 4:1로 [[신태용호]]가 승리하였다. 이 경기의 승리로 2006우승감독 [[마르첼로 리피]]의 중국까지 제치고 대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으며, 일본 입장에선 그것도 [[알제리 쇼크]] [[할릴호지치]] 감독임에도 홈 도쿄에서 한국에 4실점 이상을 한 것은 전술된 1954년의 한일전 이후 무려 63년 만이었던지라 충격이 매우 컸다. == 야구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을 맞아 [[도쿄 돔]]에서 거둔 두차례 극적인 역전승을 말한다. 2015 프리미어 12가 열린 이후에는 주로 후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아시아 예선 1경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본선 1라운드/A조 6경기)] 야구판 원조 도쿄 대첩. 선발 투수 [[김선우(1977)|김선우]]가 3이닝동안 안타 7개를 얻어 맞으며 2점을 내주었지만 4회 [[이진영]]의 슈퍼캐치 이후 분위기가 넘어가더니 [[약속의 8회]]에 [[이승엽]]의 투런이 터지며 [[도쿄 돔]]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버린 그 경기다. === [[2015 WBSC 프리미어 12]] 4강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2015 WBSC 프리미어 12/결선 토너먼트/준결승 2경기)] 일본에서 열린 첫 [[WBSC 프리미어 12]] 대회 4강에서 나온 도쿄 대첩. 일본의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공략하지 못해 8회 말까지 스코어 0:3, 안타수 1:5로 매우 고전하고 있었으나, 9회초 [[오재원]]을 시작으로 무려 5개의 안타와 2개의 사사구를 묶어서 4점을 뽑아내는데 성공,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 때문에 홈에서 프리미어 12 초대 우승팀이 되겠다는 일본의 목표는 물거품이 돼버렸으며, 해당 대회는 한국이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 관련 문서 == * [[한일전]] * [[한일전/축구]] * [[한일전/야구]]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15 WBSC 프리미어 12]] * [[EAFF E-1 챔피언십/2017년]] [[분류:도쿄도]][[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분류:한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