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국의 정부수립 이전 정당)] [include(틀:대한민국의 진보정당(제1공화국-노태우 정부))] [목차] == 개요 == [[1946년]],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유림(독립운동가)|유림]]을 중심으로 조직된 [[아나키즘]] 성향의 정당. == 활동 == 광복 이후 아나키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과 시민들은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하여 [[1946년]] [[7월 7일]] [[서울]]에서 '독립노농당'을 창당했다. 이 정당의 당수는 유림으로 [[일제강점기]] 무장독립투쟁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아나키스트였다. 이러한 배경이었기에 독립노농당은 광복 직후 나름대로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독립노농당에서는 창당 3개월 후 발생한 [[대구 10.1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상세하고도 중립적인 해석[* [[박헌영]]계는 사건을 지나치게 칭찬했고, [[우익]]과 경찰에서는 사건을 지나치게 폄훼하였다. 하지만 이와 달리 독립노농당은 이 사건의 원인이 '① 독립이 지연되는 데 대한 민중의 반발심, ② 저질의 경찰관과 악질적 모리배의 횡행에 대한 반발, ③ 양곡수집에 있어서 졸렬한 방법에 대한 반발, ④ 수집된 양곡의 처리에 대한 의혹, ⑤ 공산당 계열의 선동'에 있다고 보았으며, 그에 대한 대책도 상세하게 내놓았다. 한편 [[김규식]]과 [[여운형]] 등의 좌우합작세력도 독립노농당과 비슷한 견해였다.]을 내놓았고, [[미군정]]이 실시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또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지지하며 단독선거인 [[5.10 총선거]]를 보이콧하기도 했으며, 1947년에는 '노농청년총연맹'이라는 청년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터지자 독립노농당은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 등지로 피난을 가 정치활동을 계속했고, 그곳에서 [[이승만]]이 저지른 [[발췌 개헌|부산정치파동]]에 대항하였다. 이후 [[4.19 혁명]]이 터지고 이승만이 하야하자 옛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을 모아 '[[혁신동지총연맹]]'을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이 터지고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해산되면서, 독립노농당 또한 강제로 해산당하고 만다. [[분류:대한민국의 진보정당]][[분류:1946년 정당]][[분류:한국의 없어진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