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유사한 이름을 가진 이 정당의 후신, rd1=대한독립촉성국민회)] ||<-5><:>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70C8, #0070C8)" [[대한민국 보수정당|{{{#FFF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FFF '''독립촉성중앙협의회'''}}}||<|2><:>{{{+1 →}}}||<|2><:>''[[대한독립촉성국민회]]''||<|2><:>{{{+1 →}}}||<:>해산||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자유당]]|| [목차] == 개요 == [[이승만]]이 환국한 직후, 그는 다음과 같은 기자회견으로 이미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모스크바 3상 회의]] 전부터 우선 각자의 노선이 어떻든지간에 독립부터 해서 국제 사회에 합법적이고, 승인된, 정당한 발언권과 교섭권, 외교권을 가져서 한인들의 주권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는 취지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어떤 정치적 전망도 아직 없지만, 다만 국내에 여러분과 합동하여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우리 일을 할 수 있는, 우리 국가를 하루 빨리 세워야 하겠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만 잘 단결되면 내일이라도 우리의 국가를 세워 우리에게 산적한 모든 문제를 의논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8월 15일]] 후 우리 국내에는 50이 넘는 [[정당]]이 난립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한 문제 중 가장 긴급한 문제는 완전 독립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면 하루 빨리 뭉쳐야할 줄 압니다. 헌데 뭉치어 우리 국가를 찾자면 [[총선거]]를 단행하여 새 국가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서로 한 자리에 앉아 흉금을 터놓고 여러가지를 논의할 수 있으며 논의한 후 인민의 총의(總意)에 의하여 어떻게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연합국|연합군]]도 우리 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결정되면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李元淳, 《人間 李承晩》, 1965, 新太陽社, p. 262] [[1945년]] [[10월 20일]], [[미국 국무부]] 극동국장 존 카터 빈센트(John Carter Vincent)가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할 가능성에 대하여 [[미국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시사한 이후, [[이승만]]은 [[강대국]]의 이러한 [[식민지]] 정책을 저지하기 위하여 [[한민족|민족]] 전체가 하나로 대동 단결할 것을 호소했고, 모든 민족 진영이 단합할 수 있는 그릇으로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구성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1945년]] [[10월 23일]], [[조선호텔]]에서 65개 단체 대표들과 여러 정당 대표 200명[* [[박헌영]]의 [[조선공산당]]도 그 중 하나였다. 이승만은 [[10월 31일]]에 [[돈암장]]에서 박헌영을 만나 장장 4시간에 걸친 대화를 나눈 끝에 박헌영의 독촉 참여를 이끌어냈다.]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되었다.[*a 許政, 《雩南 李承晩》, 1970, 太極出版社, p. 214] 약칭 독촉. 신탁 통치에 대한 여론이 [[미국]] 정계를 주름잡게 되자, [[이승만]]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로 하여금 1945년 [[11월 2일]], [[미국]]과 [[소련]]에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발송하게 하였다.[*a] >1. [[총선거]]를 통한 즉시 [[독립]] >2. [[38선]]의 철폐 >3. 신탁 통치 반대 그러나 갈등 끝에 [[11월 16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은 독촉에서 탈퇴했다. 그 결과 독촉의 좌우대통합 이미지는 타격을 입었고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익들도 사람들에게 분열세력이라는 인식이 생김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이 우익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성원들의 1차 서울 귀환을 계기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을 시작했는데, [[11월 28일]]부터 시도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에서 갈등을 드러냈다. [[여운형]]은 위원 7명 중 5명이 [[한국민주당]]의 당원이라면서 퇴장했다. [[이승만]]은 독촉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세력도 흡수하려고 했으나 임시정부 세력들이 이에 반발하였고 이들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좌·우익을 망라하여 통합 조직을 이룬다는 처음 계획에는 실패했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이승만]]이 부각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1946년]] [[2월 8일]],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되었다. == 관련 문서 ==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의 정부수립 이전 정당)] [[분류:대한민국의 정치]][[분류:미군정]][[분류:정치 조직 단체]][[분류:한국의 없어진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