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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 || {{{+5 '''[[杜]]'''}}} || {{{+5 '''[[門]]'''}}} || {{{+5 '''[[不]]'''}}} || {{{+5 '''[[出]]'''}}} || || 막을 '''두''' || 문 '''문''' || 아니 '''불''' || 나가다 '''출''' || [목차] == 개요 == ||[명사] 1. 집에만 있고 바깥출입을 아니함. 2. 집에서 은거하면서 관직에 나가지 아니하거나 사회의 일을 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두문불출이라는 [[사자성어]]의 첫 출전은 중국 [[춘추시대]] [[좌구명]]의 역사서 [[국어(역사책)|국어]](國語)[* 이 당시 '국어'는 여러나라의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이다. 이 당시 두문(杜門)은 문을 닫아 걸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마천]]이 [[사기]] 상군열전에서도 사용했으며, [[당태종]] 대의 역사서인 [[진서]]에서도 사용되었다. 결정적으로 [[고려]]의 문신 [[이규보]]가 "두문불출"이란 단어를 편지에 실제로 사용했으므로, 최소한 13세기 초반부터는 익히 사용되었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이성계]]가 [[고려]]의 공양왕을 폐위[*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이성계였다.]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절대로 두 임금은 섬길 수 없다며 충성을 다짐한 일부 유생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두문동(杜門洞)[* 현재 [[북한]]의 개풍군 광덕산 서부 지역.]에 거주하며 속세나 사회와의 접촉을 일절 끊고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문동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이 '두문불출'에서 유래된 것이며'''[* [[조선왕조실록]] 영조 16년 9월 1일 기사 중에는 본도의 대족 50여 집이 문을 꽉 닫고 나오지 않아서 그 동리를 두문동이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문동 72현 중에 실제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은 단 3명 뿐인데, 그나마 한 명은 '맹가'로, 성씨만 전해진다. 다 자세한 것은 [[두문동 72현 전설]] 문서로... 현재에는 주로 집에만 있고 [[외출]]을 일체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2020년대 초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난 2003년 경의 사스와 2009년 경의 인플루엔자, 메르스 사태 등을 비롯한 그 이전에 유행했던 [[전염병]] 시즌에도 시행한 적이 없는 초강수의 케이스가 되었다. == 관련 문서 == * [[두문동 72현 전설]] * [[보이콧]] * [[카우치 포테이토]] * [[히키코모리]] *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 [[집콕]] [[분류:고사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