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파르마 공작)]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8b003 0%, #fcd116 20%, #fcd116 80%, #d8b003)" '''[[파르마 공국|{{{#0072c6 파르마 공작}}}]][br]{{{+1 로베르토 1세}}}[br]Roberto I, Duca di Parma'''}}}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Roberto I.Duke of Parma.jpg|width=100%]]}}} || || '''이름''' ||로베르토 카를로 루이지 마리아[br](Roberto Carlo Luigi Maria) || ||<|2> '''출생''' ||[[1848년]] [[7월 9일]] ||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 ||<|2> '''사망''' ||[[1907년]] [[11월 16일]] (향년 59세) || ||[[이탈리아 왕국]] [[비아레조]] || ||<|2> '''재위기간''' ||[[파르마 공국|파르마 공작]] || ||[[1854년]] [[3월 27일]] ~ [[1859년]] [[6월 9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부모''' ||아버지 [[카를로 3세(파르마)|카를로 3세]][br]어머니 루이즈 마리 테레즈 다르투아 || ||<|2> '''배우자''' ||||양시칠리아의 마리아 피아 공주[br],,(1869년 결혼 / 1882년 사망),, ||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토니아 공주 ,,(1884년 결혼),, || || '''자녀''' ||마리아 루이사, 페르디난도, 루이사 마리아, 엔리코, 마리아 이마콜라타, 주세페, 마리아 테레사, 마리아 피아, 베아트리체, 엘리아, 마리아 아나스타시아, 아우구스토, 마리아 아델라이데, 시스토, 사베리오, 마리아 프란체스카, [[부르봉파르마의 치타|치타]], 펠리체, 레나토, 마리아 안토니아, 이사벨라, 루이지, 엔리체타, 가에타노 || || '''형제자매''' ||마르게리타, 알리체, 엔리코 || || '''가문''' ||[[부르봉 왕조#s-2.4.1|부르봉파르마 가문]] || || '''종교''' ||[[로마 가톨릭]] ||}}}}}}}}}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베르토 1세는 [[부르봉 왕조#s-2.4.1|부르봉파르마 가문]] 출신으로 [[파르마 공국]]의 마지막 [[공작(작위)|공작]]이다. == 생애 == [[토스카나 대공국]]의 수도 [[피렌체]]에서 파르마 공작 [[카를로 3세(파르마)|카를로 3세]]와 루이즈 다르투아(Louise d'Artois 1819~1864)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산책 나간 사이에 암살당하면서 불과 6세의 나이로 파르마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11세에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군대가 입성하면서 파르마 공국을 잃고 폐위당했다. 파르마 공국은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레조 공국]], [[교황청]] [[볼로냐]] 일대와 연합하여 중부 이탈리아 연합주(Province Unite del Centro Italia)를 형성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합병되었고,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을 선포했다. 비록 파르마 공국을 잃었으나 로베르토 1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 제국]] [[빈(오스트리아)|빈]] 근처 슈바르차우 암 슈타인펠트(Schwarzau am Steinfeld)에 있는 성에서 여생을 보냈고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샹보르 성에 이르는 12채의 성을 소유하면서 잘먹고 잘 살았다. 1869년 4월, [[로마]]에 망명중이던 [[양시칠리아 왕국]]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딸 마리아 피아(Maria Pia di Borbone-Due Sicilie 1849~1882)와 결혼했다. 둘은 같은 [[보르본 왕조]] 출신으로 가까운 친척 사이였고[* 가장 가까운 공통조상은 [[양시칠리아 왕국|양시칠리아]] 국왕 [[프란체스코 1세]]로, 프란체스코 1세 기준으로 하면 5촌간이다. 로베르토 1세의 외할머니 마리아 카롤리나가 마리아 피아의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의 이복누나다. [[카를로스 4세]] 기준으로는 7촌으로, 로베르토 1세의 증조할머니 [[마리아 루이사]]가 마리아 피아의 할머니인 [[마리아 이사벨]]의 언니다.] 12명의 자녀를 얻었으나 대부분 일찍 죽거나 지적 장애를 앓았다. 맏딸 마리아 루이사는 [[불가리아 왕국]]의 초대 [[차르]] [[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페르디난트 1세]]와 결혼해 [[보리스 3세]]를 비롯한 2남 2녀를 두었다. 마리아 피아가 1882년 출산 중 사망하자 1884년 10월, 전 [[포르투갈 왕국]] 국왕 [[미겔 1세]]의 딸 마리아 안토니아(Maria Antónia de Bragança 1862~1959)와 결혼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와 결혼한 [[부르봉파르마의 치타|부르봉파르마의 지타 공녀]]가 바로 로베르토 1세와 마리아 안토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펠릭스는 [[룩셈부르크]] 대공녀 [[샤를로트(룩셈부르크)|샤를로트]]와 결혼해 [[장(룩셈부르크)|장 대공]][* 다만 장 대공은 아들들의 결혼을 [[귀천상혼]]이라고 이의제기한 부르봉파르마 가문과 싸우고 관계를 끊어버리면서 어머니의 성씨인 나사우바일부르크를 계속 쓰기로 했다. 나중에 화해하긴 했지만 어쨌든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나사우 가문|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을 뿌리로 여기고 있다.]을 얻었다. [[분류:1848년 출생]][[분류:1907년 사망]][[분류:파르마 공작]][[분류:부르봉파르마 가문]][[분류:피렌체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의 가톨릭 신자]][[분류:폐위된 군주]][[분류:망국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