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사)] ||<-2> '''{{{+1 馬令琮 | 마영종}}}''' || || '''성''' ||마(馬) || || '''이름''' ||영위(令威) → 영종(令琮) || || '''부친''' ||마전절(馬全節) || || '''출생''' ||925년 ~ 963년 || || '''출신''' ||대명부(大明府) || [목차] [clearfix] == 개요 == [[오대십국시대]], [[북송]]의 인물. == 생애 == 925년에 태어났으며 대명(大名) 출신으로, 마전절(馬全節)의 아들이었다. 마전절이 횡해군(橫海軍), 정원군(定遠軍), 소의군(昭義軍), 창덕군(彰德軍), 정무군(定武軍), 천웅군(天雄軍) 절도사를 역임하며 모두 마영종을 아교로 삼았고, 마영종은 아내도지휘사(牙內都指揮使), 검교상서좌복야(檢校尙書左僕射)로 제수되었으며 근주(勤州) 자사를 겸하였다. 마영종은 젊은 시절에 기마와 활쏘기를 잘하였고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안주(安州)를 평정하고 진주(鎭州)의 안중영(安重榮)과 싸울 때 모두 공적을 세워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알려졌다. [[후진]] 개운(開運) 2년(945년)에 아버지인 마전절이 죽자 상을 치르고 습주(隰州) 자사로 임명되었다. 후진이 멸망하고 [[유지원]]이 [[후한(오대십국시대)|후한]]을 세우자 마영종은 서경(西京) 순검사(巡檢使)가 되었다. 후한이 멸망하고 [[곽위]]가 [[후주]]를 세우자 진주(陳州) 자사로 전임되었다.[* 이때까지의 이름은 마영위(馬令威)였으나, 곽위가 즉위한 뒤에 이름을 마영종으로 고쳤다.] 마영종은 연주(兗州)를 정벌할 때 종군하여 경성사문외 순검이 되었다. [[시영]]이 후주의 황제로 즉위하자 수주(隨州) 자사로 옮겼고, 현덕(顯德) 2년(955년)에 입조하여 호첩좌제1군(虎捷左第一軍) 도지휘사(都指揮使)가 되었으며, 현덕(顯德) 6년(959년)에 건주(建州) 자사를 겸하였다. 조광윤이 [[진교의 변]]을 일으키고 [[시종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황제로 즉위하고 [[북송]]을 건국하였다. 이가 바로 북송의 초대 황제인 [[태조(송)|송태조]]였다. 태조가 즉위하자 마영종은 회주(懷州) 자사를 맡았다. [[이균]]이 반란을 일으키자 태조는 이균을 친정하려고 하였다. 마영종은 이균을 정벌할 때에 대비하여 군량을 비축하였는데, 태조가 이를 칭찬하여 마영종에게 단련사를 제수하려고 하였다. 재상이 불가능하다고 간언을 올리자 태조는 회주를 단련주로 삼고 마영종을 단련사로 삼았으며 선봉도지휘사로 임명하였다. 이균의 반란이 평정된 뒤 마영종은 소의군(昭義軍) 병마검할(兵馬鈐轄)이 되었다. 마영종은 병에 걸려 963년에 죽었다. 태조는 마영종의 죽음을 매우 불쌍히 여겨 마영종의 아들인 마연은(馬延恩)을 전직(殿直)으로 등용하였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925년 출생]][[분류:96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