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서양 철학사/중세 철학)] [[파일:img689979.jpg]] 1135 ~1204 [목차] == 개요 == [[중세]] [[유대교]] [[철학자]], [[신학자]], [[의학자]]. 유대인 사회에서는 람밤(히브리어: רמב״ם)이라고 불린다.[* 영어로는 Maimonides (마이모니데스), 아랍어로는 موسى بن ميمون(무사 빈 마이문), 히브리어로는 משה בן מימון (모세 벤 마이몬)이다.] == 생애 == [[12세기]]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스페인)|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13살이 되던 해에 [[무와히드 왕조|알모하드(Almohad) 왕조]]의 종교적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오르며, 10여년을 돌아다니다가 20대 중반에 [[이집트]] [[카이로]]로 넘어가서, 후에 카이로 유대교도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47살에 이집트를 다스리던 [[아이유브 왕조]]의 2인자였던 알파딜(Al-Fadil)의 주치의로 편안한 궁정생활을 하면서 [[연구]]과 [[집필]]에 매진하였고, 이러한 [[성실]]함으로 그는 유대교를 넘어 기독교 세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신학자로 거듭났다. == 사상 == 초기 교부 철학이 [[테르툴리아누스]] 이래 지속된 ‘[[아테네]]와 [[예루살렘]]’이라는 구분, 즉 ‘[[이성(철학)|이성]]’을 대변하는 그리스 철학과 ‘계시’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긴장에 포커스를 둔 것에 비해서, 마이모니데스는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이 ‘신앙’이나 ‘교리’가 아니라 ‘율법’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법과 철학은 필연적으로 [[융합]]되어야 하는 것이며, 철학의 고유한 목적은 율법에 합리적인 확증을 주는 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믿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근거하여 구약성서와 쿠란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하였다. 마이모니데스는 한편으로는 ‘[[계명]]’에 대한 이성적 ‘[[추론]]’으로 ‘율법’의 법적 지위를 확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전된 ‘율법’의 타당성을 ‘계시’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으로부터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이성적 판단'으로 성경의 말을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성경 속 '계시'의 불명확한 점을 '이성적 판단'으로 채워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는 [[경전]]에 표현된 [[신]]에 대한 묘사가 인간의 언어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해석을 하려는 시도 때문에, 한 때 유대교 신학자들로부터 [[이단]]으로 몰렸었다. 하지만 계시를 이성으로 해석한 방법론은, '이성'을 통하여 성경을 진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후대의 유대인 역사가들은 중세 철학에 끼친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을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와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 저서 == * 《미쉬네 토라 (Mishneh Torah)》 *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The Guide for the Perplexed)》 * 《기질론》 == 여담 == * 한 때 [[셰켈|이스라엘 지폐]]에 마이모니데스를 넣었을 정도로, 유대 사회에서 그가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 그는 [[치질]]은 [[변비]]에서부터 생긴다고 하여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채소]]를 [[주식(식품)|주식]]으로 하는 가벼운 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각주] [[분류:철학자]][[분류:신학자]][[분류:의사]][[분류:1135년 출생]][[분류:1204년 사망]][[분류:화폐의 인물]][[분류:코르도바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