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함경북도의 시군)] [[분류:함경북도]] ||<-2> {{{+2 무산군}}} [br] 茂山郡 / Musan County || || 국가 || [[북한]] || || 현재 면적 || 1,417㎢ || || [[광복]] 당시 면적 || '''6,164km²''' || || 광역시도 || [[함경북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9면 || || 시간대 || UTC+9 || ||<-3><:> [include(틀:지도, 장소=북한 무산군)]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o4Ca-eYCKD8)] [[함경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군이며 면적은 약 1,417km²다. == 상세 == 쪼갠 이유는 무산군이 지나치게 군역이 넓어 행정력이 닿지 않는 지역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울특별시]] 두 개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다. == 역사 == [[발해]] 멸망 이후 [[여진족]]에게 점거되었으나, [[세종대왕]] 때 [[조선]]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웃 [[회령시]]나 [[부령군]]과는 달리 [[4군 6진]]에 속하지 않아 여전히 여진족이 살고 있었으며, 조선의 행정력이 사실상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무산을 다스리는 만호진·첨사진이 2번이나 옮겨다녔고, 그 흔적이 지금도 [[고무산역]], [[폐무산역]]이라는 철도역 이름에 나타나 있다. 지금의 무산읍 지역인 삼봉평(三峯坪)에 첨사진이 들어온 건 200년 이상 세월이 지난 1674년([[현종(조선)|현종]] 15)이었지만, 워낙 위치가 변방의 외진 곳이라 본격적인 소도시로의 발전은 무산읍에서 노천 철광이 발견되는 [[일제강점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탈북]]이 상당히 늘어 회령과 더불어 가장 탈북민의 고향이 되는 비중이 높은 시·군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극심한 단속으로 탈북이 줄었다. == 기후 ==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에 속한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3.4℃로 매우 추운 곳이다. 무산군의 위도는 북위 42°13'39"로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보다 약간 낮다.[* 포드고리차의 위도는 대략 북위 42°26'이다.] 그러나 포드고리차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5.5℃로 북위 33°에 위치한 [[제주시]]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온도 차이가 무려 20℃ 가까이 나는 이유는, 무산군이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을 직격탄으로 받는 반면, 포드고리차는 [[지중해]]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1.4℃로, 생각보다 그렇게 낮지도 않다. 옆동네 [[대홍단군]]보다 3~4℃ 정도 더 높다. 즉, 여름은 좀 덥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운 동네다. 연교차는 35℃ 정도로 매우 큰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연 평균기온은 5.7℃이다. 연 평균 강수량은 536.5mm로 한반도 내 대표적인 [[소우지]] 중 한 곳이다. == 철광 산업 == [[파일:external/wildflower.kr/bd449b08d76a2cd81683ba9b856c939f.jpg]] 세계적인 규모의 [[철광석]] [[광산]]으로 유명하다. 무려 [[노천 광산]]으로 130km²이상의 면적에 5개 광구가 분포돼 있으며, 24%의 [[철(원소)|철]] 성분을 함유한 약 30~70억 톤의 철광석이 매장돼 있다. 실제로 위성사진으로 보면 상당히 거대하다. 유엔 대북 제재 이전에는 연간 생산량이 800만톤에 달했는데, 이를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약 400년간 써먹을 수 있는 방대한 양이다. 노천 광산인 만큼 채굴 비용은 극히 저렴하지만 광석의 품질이 40도 정도로 낮은 편이어서, 제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력선광을 통해 품위를 높여야 한다. [[2000년대]] 초중반, [[김정일]] 생전에 [[장성택]] 주도로 무산 철광산의 대한 [[중국]]과의 합작투자를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그 당시에도 [[중국]] 자본의 [[북한]] 침투에 대한 우려를 일으켰으며, 결국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의 빌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옌볜]](延邊)의 '티엔츠(天池) 공업ㆍ무역 유한회사'는 [[2003년]]부터 무산철광에 투자해 왔고 [[2004년]] 약 60만 톤의 광석을 가져간 이래 매년 꾸준히 45~50만 톤 수준[* 일설에는 100~300만톤도 있었으나 최대로 추정. 2013년 옌벤일보에 따르면 1~8월까지 수입량이 38만 6천 톤.]의 광석을 수입하고 있다. 이는 '''북중 육로 국경[[세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2005년]]에는 무산광산에서 난핑의 제련공장까지 13km의 철광 운송용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도 했다. 합작사업은 [[2006년]]에 본격화되었다. 다만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은 무산철광을 놓고 [[중국]] 유수의 철강그룹과 여러 개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실질적인 투자계약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중국]] 측이 광산권을 비롯한 실질적인 운영권을 요구하는 반면, [[북한]] 측은 '[[중국]]이 투자는 하되 실질적인 운영권은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고, "[[중국]]은 단순 (저렴한) 철광석 정광만을 가져갈 생각을 하고 있지만, [[북한]]은 제철 과정을 거친 뒤 가져가라고 요구한다"면서 "이는 [[중국]]이 [[북한]]의 광산뿐만 아니라 제철소까지 정상화를 시켜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런 투자는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는 성사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결국 직접적인 의미의 개방은 하지 않고 소규모 수출만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무산에도 동쪽으로 청진에서부터 북쪽으로 [[중국]]의 [[허룽]](화룡, 和龍)-[[난핑]](남평, 南坪)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놓일 계획이었다. 도로는 [[중국]] 측 구간이 14km, 북한 측 구간이 98km. [[중국]] 측 구간의 건설비만 8억 위안(약 1,316억원). 완공목표는 [[2015년]]이었다. 또 무산-[[난핑]]-[[허룽]] 구간 53.5km [[철도]]도 [[난핑]]-[[허룽]]이 [[2009년]] 8월 착공해 [[2012년]] 12월 완공되었고, 무산구간까지는 2015년까지 신설될 계획이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713082722|# 프레시안 기사]] 그러나 [[장성택]]의 숙청으로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어찌어찌 했는지 허룽변경경제합작구를 추진 중이다.[[http://m.news.naver.com/read.nhn?oid=001&aid=0008752998&sid1=104&mode=LSD|#]] 한마디로 북한의 국제적 고립 상황을 중국이 이용해서 헐값에 삥땅치려 하다가 북한이 파토내서 자원 개발이 유야무야 되고 있다. 사실 북한이 지하자원의 보고이면서도 개발 안 된 곳이 많은 게 대부분 이런 이유다. == 북한 기준 하위 행정구역 == 2008년경 기준 다음과 같다. * 읍: 무산읍 * [[로동자구]]: 창렬(彰烈)·강선(降仙)·마양(馬養)·남산(南山)·삼봉(三峰)·주초 * 리: 서호(西湖)·지초(芝草)·새골·칠성(七星)·독소(篤所)·풍산(豊山)·차유(車踰)·오봉(五峰)·허언(虛彦)·온천(溫泉)·박천(朴川)·상창(上倉)·문암(文岩)·홍암(興岩)·림강(臨江) 2008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 매체에서 새로운 행정구역이 보도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이북5도위원회|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함경북도의 하위행정구역)] ||<-4> '''[[파일:함경북도(이북5도위원회) 휘장.svg|height=15]] [[함경북도|{{{#000000,#dddddd 함경북도}}}]]의 [[|{{{#000000,#dddddd 미수복 행정구역}}}]]'''[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파일:함경북도 무산군 휘장.svg|height=65]]}}}||{{{#!wiki style="margin: -5px 0;" '''{{{+1 무산군}}}'''[br]茂山郡[br]{{{-1 Musan-gun}}}}}} ||}}}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무산군, 너비=100%, 높이=100%)]}}} || ||<-2> '''군청 소재지''' ||<-2> 무산읍 성천동 || ||<-2> '''상위 행정구역''' ||<-2> [[함경북도]] || ||<-2> '''하위 행정구역''' ||<-2> 1[[읍]] 9[[면]] || ||<-2> '''면적''' ||<-2> 6,163.91km² || ||<-2> '''인구''' ||<-2> 113,540명[* 1944년 인구총조사] || ||<-2> '''인구밀도''' ||<-2> 18.42/㎢ || [[파일:함경북도 무산군 군기.svg|width=50%]] [[파일:무산군.jpg|width=800]] [[8.15 광복]] 당시 1읍 9면으로 대부분 두만강 유역에 자리잡았다. * '''무산읍'''(茂山邑) * 관할 동 : __성천(城川)__, 남산(南山), 독소(篤所), 창렬(彰烈), 칠성(七星) * 읍사무소와 군청이 성천동에 있었다. [[국경]]도시이자 [[광업]]도시로 유명하며, 창렬동에는 [[한반도]] 유일의 노천[[철(원소)|철]]광이 있다. 매장량 17억t의 거대광산이지만 품위가 낮은 자철광(磁鐵鑛)산이라는 게 단점이라~~품질이 창렬~~, 1916년에 발견되어 무산이 읍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상기 이유로 사실상 오랫동안 방치해 두다가 일제 말기 전시정책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44년 당시 인구는 20,687명이었으며 읍내에 [[백무선]]과 [[무산선]] 철도가 지나가며 [[무산역]]과 [[독소역]]이 있다. * '''동면'''(東面) * 관할 동 : __풍산(豊山)__, 강선(降仙), 차유(車踰) * 동쪽 부령군과의 경계에 차유령이 있다. [[무산선]] [[신참역]]과 [[서풍산역]], [[주초역]], [[철송역]]이 지난다. * '''삼사면'''(三社面) * 관할 동 : __유평(楡坪)__, 연암(延巖), 창평(倉坪), 호평(芦坪) *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면(2,254.39km²)'''이지만 동이 겨우 4개밖에 없다. 그나마도 면소재지인 유평동부터 시작해서 호평동, 창평동이 삼사면의 북쪽 절반을 형성하며 '''연암동 홀로 삼사면의 남쪽 절반을 차지한다.''' 서두수(西頭水) 자락을 [[백무선]] 철도가 지나가는데, 삼사면 관할구역 내에 있는 철도역이 [[북계수역]]부터 [[유곡역]]까지 무려 '''16개'''가 있다. 북한 행정구역상 [[백암군]] 소재지. * '''삼장면'''(三長面) * 관할 동 : __삼상(三上)__, 농사(農事), 삼하(三下) * [[백두산]] 정상, [[삼지연]], 신무성마을이 위치한다. 단 [[천지(백두산)|천지]]는 [[함경남도]] [[혜산시|혜산군]] 보천면(이북 5도 행정구역상)/[[량강도]] [[삼지연시]](북한 행정구역상) 관할. 함경북도의 최서단 지역이었다. 삼하동과 면소재지인 삼상동이 면의 동쪽 끝 [[두만강]]과 서두수의 합류지점에 모여 있다면, 농사동은 두만강과 소홍단수의 합류지점에 있다(이곳은 현재 [[대홍단군]] 대홍단읍이기도 하다). 거기다, 소홍단수 합류지점부터 [[백두산]]까지 죄다 농사동 관할이다. * '''서하면'''(西下面) * 관할 동 : __삼천(三川)__, 임강(臨江), 흥암(興巖) * '''어하면'''(漁下面) * 관할 동 : __허언(虛彦)__, 오봉(五峯) 온천(溫川) * '''연사면'''(延社面) * 관할 동 : __사지(四芝)__, 광양(廣陽), 서안(栖安), 석포(石浦), 수침(水砧), 신장(新章) * 면내에 [[백무선]] [[연사역]]과 [[신장역]]이 있다. 현재는 연사군이다. * '''연상면'''(延上面) * 관할 동 : __상창(上倉)__, 문암(文巖), 박천(朴川), 연수(延水) * [[백무선]] [[연상역]]과 [[연수역]], [[두암역(백무선)|두암역]](구 함북문암역)이 있다. * '''영북면'''(永北面) * 관할 동 : __지초(芝草)__, 노덕(鹵德), 서호(西湖), 양영(梁永) * '''풍계면'''(豊溪面) * 관할 동 : __명신(明臣)__, 계상(溪上), 계하(溪下), 송학(松鶴), 용천(龍川) 예전에는 무산군에 해면(海面)([[부령군]] 삼해면 가진.내포동 인근)이라는 월경지가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바다에 접한'''것이 특징이다. [[https://arca.live/b/city/387490|#]] [[파일:무산군 vs 충청북도.png]] [[광복]] 이전의 무산군과 [[충청북도]]의 크기 비교. 왼쪽이 무산군이며 오른쪽은 충청북도이고 회색 선은 무산군에서는 읍면 경계, 충청북도에서는 시군 경계를 나타낸다.[* 1945년 광복 당시 기준의 지도라, [[증평군]]이 없고 [[충주시]] [[수안보면]](당시 상모면) 일대가 [[괴산군]] 관할인 등 오늘날과는 다소 다르다.] 보면 알겠지만 무산군의 몇몇 '''면'''은 충청북도의 '''시군''' 하나 크기를 아득히 능가한다. 원래 면적은 '''6,163.91km²'''로 한국 기초자치단체 중 제일 면적이 큰 [[홍천군]]의 '''3.4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군'''이었으며[* [[대한민국]]의 [[이북 5도]]청 체계로는 지금도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 [[경기도]] 면적의 절반보다도 크며, [[충청북도]] 전체 면적의 80%를 넘는다.], 이곳에 속한 삼사면(三社面) 역시 '''[[한국]]에서 가장 넓은 면'''이었으며, '''면'''임에도 면적이 2,254.39km²로 '''[[제주특별자치도]]보다 더 넓었다.''' 참고로 [[8.15 광복]] 당시 삼사면의 인구가 27,333명이였으니, 인구밀도는 '''12 명/km²'''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인제군]](19.3명/km²)와 비교해보자. 더구나 이 때는 물론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연사면은 읍면 단위 행정구역상 전국에서 4번째(1,030.95km²)[* [[전라남도]] [[해남군]]과 넓이가 비슷하다.], 삼장면은 5번째(1,014.23km²)[* [[경상북도]] [[김천시]]와 넓이가 비슷하다.]로 넓었다. 참고로 군 최남단에 위치한 [[백무선]] [[북계수역]]은 해발 1,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무산읍에서 북계수역까지의 거리는 110km 정도가 되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남한 지역에서 이 정도 거리가 나오는 구간으로는 [[서울특별시]] ~ [[홍성군]](110km), 서울 ~ [[청주시]](111km), [[광주광역시]] ~ [[진주시]](114km) 등이 있다. 원래 무산읍, 동면, 삼사면, 삼장면, 서하면, 어하면, 연사면, 연상면, 영북면, 풍계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삼사면은 [[한국]] 최대의 면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철도로 연결된 [[길주군]] 양사면 서부(백암, 대택 일대)를 합쳐 삼사군(현 [[백암군]]), 연사면 일대를 [[연사군]] 등으로 분리시키며 군역이 크게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