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로마 제국의 기독교 신자]][[분류:가톨릭 성인]][[분류:212년 사망]][[분류:기독교 순교자]] ||<-2><#FFFFFF>[[파일:Santa_Mustiola_col_Santo_Anello.jpg|width=100%]] || ||<-2> 무스티올라[* 왼손에 거룩한 반지를 가지고 있다.] || ||[[라틴어]]||Mustiola Clusiensis|| ||[[영어]]||Mustiola|| ||[[러시아어]]||Мустиола|| ||[[한국어]]||무스티올라 / 물시나|| == 전승 ==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성모 마리아]]의 유품과 함께 '''거룩한 반지''', [[나자렛의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결혼 반지를 가지고 95년에 로마로 가져 왔다고 전해진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하여 기독교도들은 지하의 [[카타콤]]에 숨어서 신앙 생활을 했었고, 거룩한 반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친척 무스티올라가 비밀리에 기독교를 믿으며 부적으로 사용했다. 서기 212년, 당시 [[사도 요한]]의 손제자[* 제자의 제자]로서 초대 교회의 대표적인 고위 성직자 중의 한 명인 성 이레네우스(Irenaeus)와 수트리(Sutri) 교회의 [[사제]]이던 성 펠릭스(Felix)가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펠릭스가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천사의 발현 기적이 일어나, 모든 우상을 파괴해라는 지시를 받고 천사의 권능으로 해방되어 [[헤르메스]], [[포세이돈]], 그리고 [[제우스]] 상의 목을 치고 다녔다. 결국 로마의 행정관이면서 기독교들을 사냥다니던 박해자 투르키우스 알마치우스가 그를 체포해, 다시 탈옥하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트리고, 바퀴 형틀에서 고문을 하다 이 모든 고통에서 살아남은 그를 참수했다. 시체는 다른 기독교 신자들을 잡으려는 함정 수사를 위해 버려졌고 이레네우스는 그 유해를 장사 지내려다 체포된다. 이리하여 그와 다른 동료 신자들이 투옥되자, 이 소식을 듣게 된 귀부인인 무스티올라가 전 황제의 친적이라는 영향력으로 그들의 뒤를 보살폈다. 모든 상황을 주시하던 투르키우스는 그녀가 너무나 예뻤으므로 그녀의 환심을 사려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 그 여파로 이레네우스는 곧바로 [[십자가형]]으로 순교한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무스티올라는 키우시(Chiusi])로 도망 쳤다. 하지만 그곳에서 투르키우스에게 체포되었다. 성녀 무스티올라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이교 신전에 절하라"는 강요를 거절하여, 모진 고문 끝에 동정녀로써 [[순교]]하였다. 당시 그녀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시신 훼손없이 착용하고 있던 반지와 함께 장사지내졌고, 그곳에서 나중에 그녀를 기리는 성 무스티올라 성당을 지을 때 발견되었다. == 거룩한 반지 전쟁 == [[파일:heiliger ring.jpg|width=30%]] 1473년 교황 [[식스토 4세]](Sixtus IV)의 통치 중에 키우시에서 거룩한 반지가 도난당해 [[페루자]]로 흘러 들어갔다. 이에 대항하여 교황이 단죄를 하여 [[교황청]]이 몰수했으나,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다시 페루자로 돌아갔다. 거룩한 반지는 페루자에 남아 성당에서 여전히 보존되어있다. 무스티올라는 동정 순교자로서 이탈리아 페자로(Pesaro) 지방에서 공경을 받는다. 축일은 7월 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