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제서)] [include(틀:북사)] ||<-2> {{{#ece5b6 '''{{{+1 동위의 장수[br]{{{+1 万俟普 | 묵기보}}}}}}'''}}} || || '''{{{#fff 작호}}}''' ||하서공(河西公) || || '''{{{#fff 성}}}''' ||묵기(万俟)[* 만사로 읽기도 하지만 성씨로는 묵기로 읽는 것이 맞다.] || || '''{{{#fff 이름}}}''' ||보(普) || || '''{{{#fff 자}}}''' ||보발(普撥) || || '''{{{#fff 출생}}}''' ||생몰연대 미상 || || '''{{{#fff 본관}}}''' ||태평군(太平郡) || || '''{{{#fff 국적}}}''' ||북위(北魏) → 동위(東魏)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위]], [[동위]]의 장수로 자는 보발(普撥). == 상세 == 묵기보의 조상은 흉노라고 전해지며 용맹함과 과단함이 있었고 남다른 힘이 있었다. [[북위]] 정광 5년(524년)에 옥야진(沃野鎭)에서 파륙한발릉(破六韓拔陵)[* 파륙한이 성씨이고 한릉이 이름이다.]이라는 장수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북위 정권에 전면으로 도전한다. 파륙한발릉의 반란은 북위라는 국가 자체를 붕괴로 몰아넣은 [[육진의 난]]의 스타트를 끊은 사건이었다. 이때 묵기보는 파륙한발릉의 휘하에서 태위로 제수되었다. 그러나 파륙한발릉의 기세가 점점 약해지자, 묵기보는 부하들을 이끌고 북위 조정에 항복하여 후장군, 제2영민추장(第二領民酋長)[* 북위 시기에 설치된 관직으로 중앙관직이 아니다.]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531년 [[고환(남북조시대)|고환]]이 이주씨에 대항하여 거병하자, 묵기보는 고환에게 가담하게 된다. 고환은 묵기보의 귀순을 매우 기뻐하여 묵기보를 매우 예우해주었다. 이후 [[효무제(북위)|효무제]]가 즉위하고 고환이 북위의 실권자가 되었지만, 조정의 지분은 대부분 곡사춘(斛斯椿)에게 있었다. 곡사춘이 효무제를 협박하여 장안으로 천도한 뒤, 묵기보는 사공(司空), 진주(秦州) 자사로 임명되었고, 복말성(覆靺城)에 진수하였다. 북위가 동서로 분열한 이후인 536년, 묵기보는 고환이 하주(夏州)를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을 이끌고 동위로 귀순한다. 고환은 이전에 묵기보가 자신에게 귀순했을 때처럼 직접 마중을 나와 묵기보를 맞이하였고 하서공(河西公)으로 봉하였으며, 태위, 삭주(朔州) 자사로 삼았다. 묵기보는 동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분류:남북조시대/인물]][[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