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소련/인물]][[분류:러시아의 소설가]][[분류:소련의 정치인]][[분류:노벨문학상 수상자]][[분류:1905년 출생]][[분류:1984년 사망]][[분류:로스토프주 출신 인물]][[분류:후두암으로 죽은 인물]][[분류:사회주의노력영웅]] [include(틀:소련 관련 문서)] [include(틀: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 '''{{{#fff {{{+1 Михаил Шолохов}}}[br]미하일 숄로호프|Mikhail Sholokhov}}}'''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hello_html_1ed00252.jpg|width=1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30]] '''[[노벨문학상|{{{#fff 196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 '''{{{#fff 본명}}}'''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숄로호프 {{{-1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олохов}}}|| || '''{{{#fff 국적}}}''' ||[[파일:소련 국기.svg|width=28]] [[소련]]|| ||<|2> '''{{{#fff 출생}}}''' ||1905년 5월 24일|| ||[[러시아 제국]] 돈스코고 주 돈 카자크 지역 뵤셴스카야 크루질린스키 마을|| ||<|2> '''{{{#fff 사망}}}''' ||1984년 2월 21일 (향년 78세)|| ||[[소련]] [[러시아 SFSR]] [[로스토프 주]] 뵤셴스카야 || || '''{{{#fff 직업}}}''' ||소설가, 정치인|| || '''{{{#fff 장르}}}''' ||[[소설]]|| || '''{{{#fff 사조}}}''' ||[[사회주의 리얼리즘]]|| || '''{{{#fff 서명}}}''' ||[[파일:미하일 숄로호프 서명.png|width=75&bgcolor=#fff]]|| || '''{{{#fff 부모}}}''' ||부 : 알렉산드르 숄로호프 모 : 아나스타샤 체르니코바 || || '''{{{#fff 배우자}}}''' ||마리야 그로모슬랍스키야|| || '''{{{#fff 자녀}}}''' ||2남 2녀|| || '''{{{#fff 대표작}}}''' ||배냇점 고요한 돈강 개척되는 처녀지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인간의 운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소련의 소설가. [[러시아 혁명]] 시기 돈 [[카자크]]족의 삶을 묘사한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으로 유명하다. == 생애 == 1905년 러시아 제국 [[돈강]] 중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카자크 혼혈로 어렸을 때부터 돈 카자크들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 1922년 모스크바로 가서 석공, 하역인부 등의 일을 하다 1924년 첫 단편 소설인 《배냇점》을 통해 19살의 나이에 등단했다. 1926년에는 고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집 《돈강 이야기》를 출판했고 이후 1940년까지 14년 동안 《고요한 돈강》을 쓰기 시작한다. 《고요한 돈강》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분야의 걸작으로 알려지며 공산권 국가에서 널리 읽혔다. 이후 1940년에는 스탈린상을 수상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보도원으로 참전한다. 1965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여담으로 소련 개방 이전까지 당국으로부터 유일하게 대접받은 러시아어 노벨문학상 수상 문학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초의 러시아어 수상자인 [[이반 부닌]]은 혁명 당시 망명해 무국적으로 상을 받았고, [[파스테르나크]]는 당국의 압력으로 상을 거부했다가 사후 아들이 받아왔고, 숄로호프 이후의 수상자인 [[솔제니친]]은 수상하는 김에 아예 망명까지 해버렸고, 브로드스키는 미국 국적으로 상을 받았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에 이어 레닌상도 받는다. 그 후 《고요한 돈강》의 후속작격인 《개척되는 처녀지》를 발표한다. === 표절 의혹 === 숄로호프의 표절 의혹은 《고요한 돈강》의 제1권을 발표한 [[1928년]]부터 제기되었다. 죽은 [[백군]] 장교의 원고를 훔쳤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이듬 해 특별 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증거가 없고 이전 작품들과 작풍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표절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 숄로호프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혹평하자 솔제니친은 숄로호프의 표절 의혹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몇몇 인물들이《고요한 돈강》의 원작자로 지목되었지만 백군으로 참전했다가 사망한 표도르 크루코프가 《고요한 돈강》의 가장 유력한 원작자로 제기되었다. [[1999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는 흩어져 있던《고요한 돈강》의 원고들을 모두 모아서 분석한 결과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 정치 활동 == [[스탈린]]에게 쓴소리를 하고도 큰 피해를 보지 않은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1930년]] [[집단농장]]과 [[국유농장]]의 농민들의 요청으로 스탈린에게 경고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1933년]]에 보낸 편지에 언급된 수감자들을 고문한 장교 두 명은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937년에는 [[소련 최고회의]] 의원이 되었다. 1959년 그는 [[니키타 흐루쇼프]]와 함께 유럽과 미국을 여행했다. 그는 1961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그는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두 번 받았고 나중에 소비에트 작가 연합의 부회장이 되었다. == 말년 == [[1969년]] 이후로는 은퇴하여 고향에서 지냈다. 이후 [[1984년]]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 국내 번역 == 노벨문학상 수상자임에도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다. 소련 체제에 충실했던 작가라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절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금서였던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1980년대]] 후반에 소련이 개방된 이후 공산주의 서적은 대부분 해금되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 분야의 문학 작품들은 소련문학 번역 최전성기였던 90년대 반짝한걸 제외하면 많이 번역되지 않았다. 때문에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오래 전 절판 상태이거나 일본어 중역본만 시중에 널린 경우가 많다. 현재로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8번에 《숄로호프 단편선》과 백석 역 《고요한 돈》이 새책으로 구할수 있는 유일한 러시아어 직역본이다. 민음사의 단편선은 러시아어 1세대 김학수 선생의 제자로 [[투르게네프]] 전공자인 이항재 교수의 번역으로 유명 단편 《[[인간의 운명]]》과 단편집 《돈강 이야기》(돈 지방 이야기)에서 뽑아낸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돈강 이야기》는 90년대 중앙일보사에서 출간한 소련동구 현대문학 전집 제3권에 돈 지방 이야기란 제목으로 '이삭 바벨'의 연작소설 《붉은 기병대》와 함께 수록된 것이 유일한 완역이다. 《고요한 돈강》은 시인 [[백석(시인)|백석]]의 번역이 가장 유명하다. 백석의 문학성이 가감없이 발휘되어 최민순의 을유문화사판 《신곡》, 김진만의 정음사판 《캔터베리 이야기》와 함께 한국 문학사에서 예술 번역을 꼽으라면 반드시 거론되는 명역이다. 사람 이름만 가리고 보면 [[평안도]] 배경의 한국 소설이라 부를 정도로 유려하고 다채로운 한국어 사용이 일품. 안타깝게도 전체 8부 중 5부까지만 번역된 미완성 번역이다. 완역본은 일본 일월서각 출판사의 일본어 중역을 표절해 문장만 다듬은 중역판이 유일하다.[* 이 중역본은 일월서각에서 처음 내놓고 이후 학원출판공사, 문화예술사, 동서문화사 등에서 돌려 먹기 하다 현재는 동서문화사에서 판매중이다.] 그외에 중국에서 연환화로 나온 축약본이 90년대에 번역된 적이 있다. 인물묘사는 영화에서 따온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