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막 왕조 황제)] ||<-5> '''{{{#d4cd99 막조 6대 황제[br]{{{+1 閔宗 貞皇帝 | 민종 정황제}}}}}}''' || || '''[[묘호|{{{#d4cd99 묘호}}}]]''' ||<(> '''[[민종]](閔宗)''' || || '''[[시호|{{{#d4cd99 시호}}}]]''' ||<(> 회의명훈정황제(懷毅明訓貞皇帝) || || '''[[연호|{{{#d4cd99 연호}}}]]''' ||<(> 바오딘(寶定, 1592) 캉흐우(康佑, 1592 ~ 1593) || || '''[[성씨|{{{#d4cd99 성}}}]]''' ||<(> 막(Mạc / 莫) || || '''[[휘|{{{#d4cd99 휘}}}]]''' ||<(> 낀찌(Kính Chỉ / 敬止 / 경지) || || '''{{{#d4cd99 생몰 기간}}}''' ||<(> ? ~ 1593년 || || '''{{{#d4cd99 재위 기간}}}''' ||<(> 1592년 ~ 1593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막낀찌'''(Mạc Kính Chỉ / 莫敬止 / 막경지, ? ~ [[1593년]])는 [[대월]] [[막 왕조]]의 제6대 황제(재위: [[1592년]] ~ [[1593년]])로 막낀디엔(막경전)의 장남이었다. == 생애 == 당안왕(唐安王)에 봉해졌는데, 일설엔 단웅왕(端雄王)이었다고도 한다. [[1564년]], 부친 [[막낀디엔]]의 첩과 간통한 것이 드러나 병권을 빼앗기고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막 왕조는 병권을 막낀디엔의 둘째 아들인 단량공(端亮公), 일설엔 당안왕(唐安王)인 막낀푸(莫敬敷, 막경부)에게 주었다. 막낀디엔이 죽자 막 왕조는 막낀찌를 웅례공(雄禮公)에 봉했지만, 병권을 위임하지는 않았다. [[1592년]], 중흥 [[후 레 왕조]]의 [[찐뚱]]이 막 왕조를 쳐서 [[하노이|탕롱]]을 함락시키고 황제 [[막머우헙]]을 잡아 처형했다. 이때 막낀찌는 동조(東潮) 지역에 있었는데, 이를 듣고 나서 부(部)를 거느리고 지령현(至靈縣)에 이르러 자립하여 황제가 되었으며, 청림(靑林)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지켰고, '바오딘'으로 개원했다. 막 왕조의 종실인 막낀푸, 막낀타인(莫敬誠), 막낀턴(莫敬愼) 등이 분분히 귀부해 왔고, 해양(海陽), 고평(高平)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지켰으며, 병력이 70,000명이나 되었다. 전임 황제 막머우헙의 아들 [[막또안]]은 인심이 불복하자 막낀찌에게 몸을 의탁했다. 후 레 왕조의 찐뚱이 응우옌텃리(阮七里), 부이반쿠에(裴文奎), 쩐박니엔(陳百年), 응우옌응아(阮峨) 등을 보내 막낀찌를 쳐서 패배시켰다. [[1593년]], 찐뚱이 호앙딘아이(黃廷愛), 응우옌흐우리에우(阮有僚) 등 부를 이끌고 청림을 양면에서 협격하고, 막낀찌와 막 왕조의 많은 종실 및 대신들을 포로로 잡았다. 찐뚱은 초진(草津) 일대에서 막낀지를 참수했고, 탕롱으로 보내 민중에게 이를 보였다. 막 왕조의 유신인 [[막응옥리엔]]이 막낀찌의 동생인 돈후왕(敦厚王) [[막낀꿍]]을 찾아내 문란주(文蘭州)에서 황제로 옹립했다. == 가족 == 막낀찌의 황후는 [[1590년]]에 충의장홍군공(忠義將弘郡公)의 집에 숨었다가 훗날 일이 밝혀져서 둘 다 피살되었다. [[분류:대월 황제]][[분류:1593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